▲박민 KBS사장. ⓒKBS
▲박민 KBS사장. ⓒKBS

TV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 진행자 교체에 편성 삭제까지. 13일 박민 KBS 사장 취임 첫 날은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고 편성규약·방송법 등을 위반했다는 비판으로 얼룩졌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박민 사장은 일요일 심야 시간대에 주요 보직 인사를 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이 박민 사장 임명 소식을 알린 시간은 12일 오후 4시46분께, 박 사장은 이로부터 4시간여가 지난 밤 9시께 본부장급 인사를,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실·국장 및 일부 부장급 인사를 냈다.

KBS ‘뉴스9’ 방송 3시간 전에…주요 뉴스 앵커 ‘전면 교체’ 발표

애초 KBS 안팎에선 13일이면 주요 보도·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전면 교체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오전 6시대 방송되는 ‘뉴스광장’ 앵커들의 경우 지난 9일 하차 계획을 통보 받아 10일 마지막 클로징 멘트를 한 상태였다. 오후 4시 ‘사사건건’의 이재석 앵커도 같은 날을 끝으로 하차했다. 이에 사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권한 없는 인사들이 제작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불거진 바 있다.

▲2019년 11월 기자간담회 당시 이소정 '뉴스9' 앵커. 사진=KBS
▲2019년 11월 기자간담회 당시 이소정 '뉴스9' 앵커. 사진=KBS

문제는 인사 발령 전후로 본격화했다. KBS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9’ 이소정 앵커가 12일 저녁 하차 통보를 받아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 없이 내려오게 됐다. 한편으로는 이미 며칠 전 앵커들이 하차 당한 ‘뉴스광장’ 후임자가 준비되지 않아 13일 아침 진행을 정연욱 기자가 임시로 맡는 일도 있었다.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자 솎아내기가 이뤄진 배경에 의심이 높이진 대목이다.

KBS는 이후 새 앵커가 진행하게 될 ‘뉴스9’ 방송이 2시간30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이르러서야 “주요 뉴스 앵커 전면 교체”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뉴스광장(최문종·홍주연, 임지웅) △뉴스9(박장범·박지원, 김현경·박소현) △뉴스라인W(이승기) △뉴스12(이윤희·이광엽) △뉴스6(김재홍·박지현) △뉴스타임(장수연) △사사건건(송영석) △일요진단(김대홍) △남북의창(양지우) 등이다.

▲2023년 11월13일부터 KBS '뉴스9'을 진행하게 된 박장범 앵커. 사진=KBS
▲2023년 11월13일부터 KBS '뉴스9'을 진행하게 된 박장범 앵커. 사진=KBS

이는 과거 정권교체기 KBS 사장이 바뀌었던 때와 비교해도 급박한 인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 11개월 만에 취임했던 양승동 전 KBS 사장(전임 고대영 사장은 해임)의 경우, 2018년 4월6일 임명돼 같은 달 11일에 16일자로 앵커들을 교체했다. 그보다 앞선 2008년, 이명박 정부 6개월 차인 8월 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된 뒤로도 11월 개편이 이뤄지기까지 기존 앵커가 메인 뉴스를 진행했다. 박민 현 사장 체제에선 KBS 뉴스룸을 관할하는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 인사도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앵커 교체가 이뤄졌다. 통합뉴스룸 국장은 소속 직원 과반이 참여한 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해야 임명될 수 있다.

박민 체제 KBS의 첫 ‘뉴스9’ 앵커로 낙점된 박장범 기자는 고대영 전 사장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지난 7월 ‘일요진단 라이브’ 클로징 멘트에서 돌연 고 전 사장의 해임무효소송 승소 판결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13일 첫 오프닝 멘트에서 박 앵커는 “그동안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흔들었던 정파성 논란을 극복하고 앞으로 공영성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KBS 보도가 편파적·정파적이라고 주장해온 여권, 박민 신임 사장이 강조했던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이다.

‘주진우 라이브’ 폐지, ‘더 라이브’ 편성삭제…“편성규약·방송법 위반”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홈페이지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홈페이지

KBS 시사라디오(1라디오) 부문에서도 진행자 교체가 강행됐다. 퇴근 시간대 ‘주진우 라이브’의 경우 12일 본부장급 인사가 나기도 전에 라디오센터장 내정자로 거론된 인물이 제작진에게 진행자를 하차시키라는 지시를 했다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소속 라디오 PD들이 밝혔다. 이들은 “KBS 라디오 역사상 전무후무한 제작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명백한 월권행위”라며 “부당한 지시를 철회하고 라디오 구성원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사실상 폐지됐다. 진행자인 주진우 프리랜서 기자는 13일 오전 하차가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이날부터 김용준 KBS 기자의 ‘특집 1라디오 저녁’이 편성됐다.

전임 진행자 퇴사로 출근 시간대 ‘최경영의 최강시사’를 진행해온 김기화 KBS 기자도 하차 통보를 받았다. 이에 14일부터는 기존 프로그램 대신 전종철 KBS 기자가 진행하는 ‘특집 KBS 1라디오 오늘’이 편성됐다. 사라진 프로그램과 진행자들은 모두 국민의힘이 진행자 교체를 요구했던 대상들이다. 전종철 기자는 2009년 이병순 사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할 당시 KBS 비정규직 노조 피켓 시위를 취재하는 타사 기자를 방해하고, 2010년 국회에 출석한 김인규 사장이 KBS 기자 등을 “사병처럼” 부린다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에게 욕설을 해 논란을 부른 바 있다.

KBS 2TV에선 방송인 최욱씨가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 편성이 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간 삭제됐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기 전 확정되는 편성표에서 매일 같은 시간대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들어내고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개그 콘서트 스페셜’ ‘골든 걸스 스페셜’ 등 재방송을 편성한 것이다. 이 결정은 전날 밤 10시30분경에야 제작진에게 통보됐고, 방송이 예정돼있던 당일 KBS 사내 게시판에 공지됐다. 비정규직 스태프가 많은 제작 프로그램 특성상 갑작스러운 프로그램 중단은 생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시청자를 상대로 한 사과나 양해도 이뤄지지 않아 ‘더 라이브’ 시청자 게시판에도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더 라이브’ 제작진 측은 “새로 런칭된 프로그램 ‘붐 업’ 차원에서 그런 프로그램들이 편성될 것이라는 정도로 이야기를 들었다”며 “기획이 되어 있는 것들은 미리 소통(협의)이 되고 대형 사건 사고 같은 것들은 불시에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미리 협의할 수는 없지만 최소 하루 이틀 전에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번 경우는 특이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작 업무를 맡아 온 동료들도 이번 결정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을 넘어 폭력적인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KBS 2TV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 첫 페이지
▲KBS 2TV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 첫 페이지

KBS 내부에선 일련의 사태가 단체협약과 편성규약, 방송법 등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BS 단체협약 제22조 3항에 따르면 편성·제작·보도 책임자는 실무자 의견을 존중해 합리적 절차·방식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31조에 따라 공사(KBS)는 프로그램 개편 전에 제작진과 협의하고 프로그램 긴급 편성 시 교섭대표노조에게 통보해야 한다. KBS 편성규약의 경우 취재·제작 책임자의 권한·의무로 방송의 적합성 판단 및 수정 관련해 실무자와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법 제4조는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 어떠한 규제·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날 “편성규약과 단체협약을 파괴하는 박민 사장 체제와 그 보직자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며 “해당 행위를 한 보직자들에 대해서는 방송법 위반 및 단체협약 위반 등 혐의로 고발 조치할 계획이다. 또한 이번 편성 삭제 조치와 진행자 교체와 관련해 KBS본부는 사측에 긴급 공방위를 정식으로 요청한다”고 밝혔다.

KBS 사측은 시사 및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앵커)들에게 하차 결정을 통보하고 ‘더 라이브’ 편성 삭제를 결정한 이유와 관련 원칙, 이 같은 행위가 방송법 및 편성규약 위반이라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14일 현재까지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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