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을 ‘피고발인’으로 한 고발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박 사장 취임을 전후로 이뤄진 KBS 시사·보도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 프로그램 편성 삭제 등에 대한 내부 반발이 이어진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박 사장 등에 대한 고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박 사장을 방송법, 편성규약, 단체협약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오는 21일 서울 남부지검에 박 사장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22일엔 고용노동부 서울 남부지청에 박 사장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특별근로감독을 청원한다는 계획이다.

강성원 KBS본부장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에 위치한 노동조합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 편의성이 아니라 정말로 최소한의 공정방송을 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만든 마지막 보루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며 “여러 법률전문가들과 함께 공정방송을 위협하고 해체시키려는 동시다발적인 폭거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거쳤다”고 밝혔다.

▲2023년 11월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박민 KBS 사장 고발 건에 대한 긴급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2023년 11월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박민 KBS 사장 고발 건에 대한 긴급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KBS본부는 먼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의 하차 과정이 법적 권한 없는 자의 방송편성 규제나 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제4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박 사장이 앞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주진우 라이브’를 문제 삼는 여당 국회의원에게 “조치하겠다”고 밝힌 뒤, 박 사장 취임식 전날인 12일 임명되기도 전인 현 라디오센터장이 프로그램 PD에게 진행자를 하차시키라고 지시한 사례다.

박 사장 취임 첫날인 13일엔 방송을 앞두고 있던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더 라이브’가 편성삭제됐고, ‘뉴스9’ 메인 앵커 등이 교체됐다. KBS본부는 이런 사례들이 취재·제작 책임자가 방송 적합성 판단 및 수정에 관해 실무자와 협의해야 하고, 실무자는 편성·보도·제작 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편성규약을 위배했다고 밝혔다. 편성규약 준수 의무, 사측이 프로그램 개편 전에 제작진과 협의해야 하고 이에 대한 교섭대표노조 요구 시 설명할 의무를 둔 단체협약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KBS본부는 또한 지난 14일 ‘뉴스9’에서 박장범 앵커가 특정 보도들을 ‘보도 공정성 훼손 사례’로 언급하면서 사과한 보도에 대해 ‘정상적 발제 과정’이 없었고, 통합뉴스룸이 아닌 다른 국 소속의 부장이 기사를 작성했다고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보도 내용에 대해서도 내부적 함의나 공정성 훼손 여부에 대한 검증, 취재 당사자 반론 등이 없었으며, 여당 고발에 따라 무혐의 처분된 보도가 포함됐다고 했다.

KBS PD협회, 기자협회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법적 대응을 시작한 KBS본부는 고발, 근로감독 청원 등에 이어 단체협약을 이행하라는 가처분을 제기하는 한편 KBS 내 제작시스템 붕괴와 절차 위반, 사규 위반 등에 대해 국민감사를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KBS본부는 “부당노동행위와 방송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는 5년”이라며 “공영방송에 대한 일체의 고민도 없이 점령군처럼 권한을 무법하게 행사한 박민 사장과 그 체제 하의 간부들은 그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임된 김의철 전 사장 잔여임기를 수행 중인 박민 사장은 내년 12월까지 1년여의 임기가 남아 있다.

▲2023년 11월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박민 KBS 사장 고발 건에 대한 긴급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2023년 11월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박민 KBS 사장 고발 건에 대한 긴급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성구 KBS본부 사무처장은 “라디오센터장이 주진우 MC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박민 사장이 지시했다’라고 본인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박민은 누구에게 지시를 받았는지를 검찰에서 규명해야 할 것 같다. 법률적으로 검토했을 때 다수 여당 의원이 ‘주진우 조치하라’고 한 것도 방송법 위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면서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지시를 내린 분을 ‘성명불상’으로 고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변호사)는 “주요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거나 그와 관련해 교체된 프로그램 앵커나 대상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박민 사장의 국회 인사청문회라든지 여러 질의응답을 보면 언론노조 KBS본부에 대해 상당히 편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노조원에 대한 불이익 처분, 조합 활동에 대한 지배 개입으로 볼 수 있어 노조법 81조가 규정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명아 노무사(새날)는 공정방송 확보 방안 요구가 쟁의행위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지난해 대법원 판례를 들어 “(대법원은)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 결과가 아니라 제작 편성 과정에서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하에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시했다”며 “노조법 및 단체협약 위반이 다수 발생한 것은 특별근로감독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군사작전’도 이렇게 안 한다. 군사작전도 명분과 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에 호응하는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언론노조가 왜 공영방송 싸움에 매진하나. 35년을 싸워도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백’(back, 후퇴)한다. 공영방송 하나 지키지 못하는 데 신문과 자회사를 지킬 수 있겠나”라면서 “현재 거버넌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권이 바뀐 다음에도 이런 싸움이 없으리란 법이 없다. 대통령은 ‘공영방송 독립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제발 수용하고 공포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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