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 전부터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던 박민 KBS 사장이 주요 취재, 제작 부서의 국장들을 열흘 가까이 공석으로 방치하고 있다.

박 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 임명을 재가한 12일, 첫 출근을 하기 전부터 인사 교체에 속도를 내왔다. 저녁에서 심야에 이르는 시간 본부장급 인사와 실·국장 및 일부 부장급 인사를 냈고, 취임식이 있었던 13일엔 메인 뉴스프로그램인 ‘뉴스9’를 비롯해 주요 뉴스 앵커들을 전면 교체했다. 14일 일부 부장, 팀장급 인사까지 이뤄진 가운데 조만간 이뤄질 사원급 인사를 위한 내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KBS 뉴스룸 수장인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을 비롯해 시사제작국장, 시사교양1국장, 시사교양2국장, 라디오제작국장 등 시사·보도, 라디오 취재·제작을 총괄해야 할 자리는 비워져 있다. 전임 국장들이 타 부서나 보직 없는 사원 등으로 발령된 뒤 후속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 부서는 인사권자 없이 사원 인사가 마무리될 상황에 처한 셈이다.

▲박민 KBS 사장. 사진=KBS
▲박민 KBS 사장. 사진=KBS

이는 주요 국장직이 임명동의제 대상이기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KBS는 노사간 단체협약에 따라 사장이 해당 부서의 국장을 지명해도 구성원(소속 부서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과반이 찬성하지 않으면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 박 사장의 경우 취임과 동시에 프로그램 폐지 등 제작 자율성 침해와 더불어 인사 문제에 있어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KBS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으로부터 이미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박 사장이 주요 국장직 인사에 실패하면 사장 리더십에 타격이 될 거라는 해석도 있다.

이에 KBS 안팎에선 박 사장이 지금처럼 임명동의제 대상을 공석으로 비워둔 채 단체협약 ‘해태’를 이어가거나, 부서의 구성원들을 수적으로 조정해 임명동의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방안 등을 시도할 가능성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박 사장 임기 중에 임명동의제 등을 규정한 단체협약을 무력화하는 시도가 이뤄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KBS의 4개 노동조합 중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KBS노동조합, KBS공영노조 등이 임명동의제에 대한 비판을 높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출범한 공정언론국민연대의 경우 14일 “KBS 대표 노조인 민노총 언론노조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어떤 사장이라도 방송 분야 핵심 국장 인사를 하지 못 하도록 ‘대못’을 박아놓은 것은 불법”이라며 “단협 무효 소송을 추진해 제도 개선을 완결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사측이 임명동의제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단협 위반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KBS본부는 21일 서울남부지법에 KBS 사측을 상대로 단체협약을 이행하라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강성원 KBS본부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사측이 임명동의제가 인사권의 과도한 침해라며 부정적 의견을 계속 피력해오고 있어서 조합에선 여러 가지 대응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며 “지금 단협이 유효한 상태이고, 공정방송 실천을 위해선 임명동의제가 언론사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근로 조건이라는 것이 이미 판시되어 있기 때문에 후속으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면 계속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KBS본부 측 자문을 맡고 있는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는 21일 매일노동뉴스 기고를 통해 “KBS 방송 편성규약은 일부 취재 및 제작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를 둬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있는데(16조), 오늘 KBS에서는 이와 관련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며 “KBS에서 공정방송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그 결과가 공정방송에 관한 단체협약이고, 방송 편성규약이다. 그래서 편성규약을 위반한 사측의 행위는 교섭대표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부당노동행위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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