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는 지난해 1월 KBS와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KBS가 2018년 7월9일 자 <“조선일보 사장 아들, 장자연과 수차례 통화”> 등 보도를 통해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 리포트는 방 전 대표를 겨냥해 고(故) 배우 장자연씨 접대 의혹을 제기한 보도로 KBS는 ‘단독’ 문패를 박아 보도했다.

▲ 2018년 7월9일 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2018년 7월9일 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허위 판단하면서도 “위법성 없다” 판단한 法 왜?

KBS는 보도에서 장씨 사건을 재조사 중인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방(정오)씨와 장씨가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는 조선일보 측 핵심 관계자(이하 A씨) 진술을 확보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듬해 5월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나 ‘방정오-KBS’ 재판에서나, A씨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방정오가 장자연과 수차례 통화했다’는 사실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허위보도에 대한 대가로 KBS에 거액의 위자료를 물려야 할 재판부는 도리어 KBS 손을 들어줬다. 방 전 대표가 장씨로부터 술 접대나 성 상납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의 KBS 보도가 방 전 대표 명예를 훼손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도에 공익성이 있고 KBS 기자가 취재물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방 전 대표가 항소하지 않아 재판은 지난해 2월 원고 패소 판결로 확정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재판부는 △방 전 대표가 공적 존재라는 점 △장자연 사건은 술 접대나 성 상납 등 연예계 구조적 병폐에 관한 것으로 공공·사회적 의미를 가진 공적 관심 사안이라는 점 △2009년 장자연 사건이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10여년 만에 재조사가 이뤄졌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보도 공익성을 인정했다.

또 KBS 기자가 A씨 진술뿐 아니라 재수사를 담당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나 진상조사단 관련자, 방정오, 장자연 지인 등 여러 사람을 취재해 진술을 듣는 등 사실 확인을 위한 여러 시도를 했다는 것도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언론기관의 의무와 책임’에 관해 다음과 같이 판결문에 썼다.

“KBS 보도는 장자연 사건이 최초로 알려진 때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재수사 과정에서 이뤄졌고 시간 경과와 증거 오염 등 이유로 의혹을 밝힐 수 있는 객관적 자료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확실한 자료를 확보한 이후에야 적시 사실(‘방정오가 장자연과 수차례 통화했다’)을 진실이라고 믿고 관련 보도를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사회 부조리에 관한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기관의 의무와 책임 회피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 KBS 뉴스9은 지난 14일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사진=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KBS 뉴스9은 지난 14일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사진=KBS 뉴스9 화면 갈무리.

KBS가 말하는 ‘사실 확인 원칙’이란 무엇인가

지난해 있던 ‘방정오-KBS’ 재판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KBS 메인뉴스 ‘뉴스9’이 지난 14일 “사실 확인 원칙을 충실히 지키지 않는 보도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면서 사과 방송을 내서다. 이날 오전 박민 KBS 신임 사장은 △‘검언유착’ 관련 보도 △고 장자연씨 사건 관련 후원금 사기 혐의를 받고 도피한 윤지오씨 뉴스9 출연 △‘오세훈 시장 생태탕 의혹’ 관련 보도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 등을 ‘불공정 보도’ 사례로 꼽고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고, 뉴스9 앵커도 이날 오후 해당 보도를 열거한 뒤 “정치적 중립이 의심되고 사실 확인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는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시청자들께 약속하겠다”고 밝혔다.

KBS가 생각하는 ‘불공정 보도’ 기준은 무엇인지, 불공정 사례로 제시한 4가지 보도는 어떤 기준으로 누가 선정한 것인지 여러 의문이 남지만, 특히나 앵커가 말한 ‘사실 확인 원칙’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참 궁금했다.

100% 사실로 확인되기 전에는 보도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확실하지 않은 의혹 제기는 스스로 차단하고 재갈을 물겠다는 것인가. ‘방정오-KBS’ 재판에서 법원은 KBS가 적시한 사실이 허위라고 판단하면서도 “사회 부조리에 관한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기관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며 위법성을 조각했다.

저널리즘은 진실만을 전하지 않는다. 취재는 사실과 진실을 좇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결과물인 보도는 오보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보도가 사회적 물의를 빚을 때, 언론사 스스로 오보와 실수를 막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내부 점검과 조사가 이뤄지고, 조사 결과를 대중에 공개하는 것이다. KBS 사과 방송은 앞으로 논란이 될 만한 보도는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려 우려스럽다. 이 걱정이 기우이길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