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27일 이례적인 ‘사보 특보’를 내며 취재·제작부서 국장에 대한 임명동의제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KBS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사측 주장을 반박하며 임명동의 없는 인사 강행에 나설 경우 법적대응하겠다고 맞섰다.

KBS는 노사 단체협약으로 2019년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시사제작국장·시사교양2국장, 2022년 시사교양1국장·라디오제작국장 등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도입했다. 관련 부서의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과반이 참여한 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한 임명동의 대상자에 대해선 사장이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 주요 신문·방송사들이 사주나 경영진 등으로부터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도입한 편집·보도국장 임명동의제, 불신임제 등과 같은 취지이다.

[관련기사: 임명동의제 무력화 논란 KBS 사장 “법 위반… 법률자문 받은 건 아니고”]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연합뉴스

국장 임명동의제, 방송법 위반?

KBS 사측은 국장 임명동의제가 직원에 대한 사장의 임면권을 규정한 인사규정, 정관, 방송법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법에 따라 KBS 직원은 정관에 따라 사장이 임면하고, 정관 관련 사항은 인사규정으로 정하게 돼 있으며, 인사규정에 따라 상위 직위로의 승격 임용은 ‘적격자를 사장이 임용한다’는 것이다.

반면 KBS본부는 “임명동의제 이행은 방송법 위반이 아닌 ‘방송법 준수’”라고 반박한다. 국장 임명동의제는 취재·제작종사자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공표해야 한다는 방송법(제4조)을 근거로 만들어진 ‘KBS 방송편성규약’상 제도이며, 2019년 법률검토·이사회 보고·경영회의 의결을 거쳐 국장 임명동의제 등을 반영한 편성규약 개정을 이뤘다는 것이다. KBS 편성규약은 임명동의 대상·방법 등을 단체협약으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임명동의제는 인사권 침해’ 판례 있다?

▲KBS 사측 및 언론노조 KBS본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KBS 사측 및 언론노조 KBS본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KBS 사측은 특보에서 “(임명동의제가) 사장의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만큼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과거 연합뉴스의 단체협약상 임명동의제가 사용자의 인사권을 지나치게 제한해서 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지난 1994년 해고 절차 관련 사건에 대해 단체협약상 ‘합의’는 노조에 의견 제시 기회를 주는 취지라 해석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KBS본부는 “임명동의제는 사용자의 인사권 박탈이 아닌 방송법과 근로기준법에 따른 ‘공영방송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해 대법원이 확정한 2012년 MBC 파업 관련 판결이 ‘방송 공정성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준수는 사용자가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항(의무적 교섭 사항)’이라고 판시한 대목을 인용했다. 사측이 인용한 연합뉴스 사례는 “공정방송과 단체교섭 법리를 반영하지 않은 과거의 하급심 판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 사례는 2015년 박노황 당시 사장이 임면동의 대상인 편집총국장 대신 편집국장 직무대행 등을 임명해 문제가 된 사례다. 당시 노조(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가 제기한 주요 간부 직무 집행정지, 단체협약 이행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이후 노조가 ‘노사간 대화’로 사태를 풀겠다는 취지로 가처분에 대한 항고, 임면동의제 자체에 대한 법적 다툼을 이어가지 않기로 하면서 관련 판례가 나오지 않았다. 박 전 사장 시절 무력화됐던 연합뉴스 편집총국장제(임면동의제)는 2018년 복원돼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관련기사: 연합뉴스 노조, 단협 가처분 기각 항고 않기로]

이사회 보고하지 않아 효력 없다?

KBS 사측은 또한 “임명동의제가 사용자 경영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근로자의 전보·승진·발령 등 인사 사항을 대상으로 하므로 KBS 경영에 관한 최고 의결기관인 이사회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거치지 아니한 절차적 하자로 인해 유효성이 문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행정법원이 김의철 전 사장의 해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김 전 사장이 이사회 심의·의결·보고를 거치지 않았다고 언급한 대목을 제시했다.

KBS본부는 2019년 편성규약 개정 시 사측이 이사회 간담회에 임명동의제 관련 보고를 했다면서 관련 보고서 내용을 제시했다. 이어 “김의철 전 사장 해임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사건은 해임사유가 타당한지 여부, 본안 판결 전까지 해임의 효력을 중단시켜야 하는지 여부에 관해서 판단했을 뿐 임명동의제 자체가 무효하다 법적인 판단을 한 적은 없다”며 “임명동의제 폐지를 주장하려면 항고심 결과 뿐 아니라 본안 소송까지 진행된 후 완결된 판결을 근거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KBS 사보 특보 및 언론노조 KBS본부 보도자료
▲KBS 사보 특보 및 언론노조 KBS본부 보도자료

KBS의 국장 임명동의제를 규정한 단체협약은 내년 3월까지 효력이 남아 있다. 사측은 지난 24일 KBS본부 측에 임명동의제 관련 보충협약을 요구하며 28일까지 회신을 요구한 상태다. KBS본부는 향후 임명동의제 대상인 국장이나 국장 직무를 대행할 인사가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행되면 임명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 추가적인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난 13일 취임한 박민 사장은 KBS 일부 프로그램의 진행자 하차 및 폐지, 방송개입 의혹 등 관련해 KBS본부로부터 고발(방송법, 노동조합법 등 위반 혐의)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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