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출범한 ‘KBS 공적책임 수행을 위한 공론조사위원회’가 존폐 기로에 놓였다.

박민 사장 등 KBS 경영진은 29일 정기이사회에서 현재 진행 중인 공론조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전하며 이에 대한 이사회 결단을 요청했다.

이춘호 KBS 전략기획실장은 이날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이 이미 개정되었고 7억 원이 소요되는 공론조사를 하는 것이 효율성이 있느냐는 입장”이라며 “주요 설문 항목 가운데 회사 지배구조, 거버넌스 관련 방송법 개정이나 임명동의제 등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논란과 이슈를 불러일으켜서 수신료 공론화를 오히려 저해하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버넌스 관련 방송법 개정’은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거라 전망되는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취재 관련 5개 부서 국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는 현 경영진이 무효화를 추진해 교섭대표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이다.

▲KBS 이사회. 사진=KBS
▲KBS 이사회. 사진=KBS

이 실장은 이어 “설문조사 항목 가운데 공정성, 신뢰도, 콘텐츠 선호도, 공영방송 재원 등은 공영미디어연구소가 정기적으로 하는 신뢰도 조사나 국민 패널 조사를 참조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회사 입장을 참조해서 이사회에서 결정해주시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 실장에 따르면 7월 공론조사위원회가 구성된 이래 5차례 회의가 진행됐고 7억여원의 예산 가운데 2500여만 원이 집행됐다. 다음 단계로 공론조사에 참여할 300명의 국민 패널 구성, 대면 조사 등이 남아 있다.

KBS 공론조사는 지난 6월 대통령실이 권고한 사안 중 수신료 분리징수만 이뤄지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영방송 위상과 공적 책임 이행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추진됐다. 남영진 당시 이사장이 KBS의 공적책임 수행 방안과 바람직한 재원 등에 대해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닌 공론조사가 필요하다며 제안한 안건이 당시 다수였던 야권 이사 7명 찬성으로 의결됐다. 이후 남 이사장 등 해임에 따라 여야 6대5 구도로 재편된 이사회에서 공론조사 지속 여부를 재논의하게 된 것이다.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재권 이사는 이날 “비용 지출하는 측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는 사장, 실장이 설명을 충분히 한 상황이니 이해는 됐다”며 “지속할 것이냐 혹은 다른 형태의 의사결정을 할 것이냐는 심도 있는 토론과 이사회 자체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고 이사회 결정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제안했다.

야권 이상요 이사의 경우 “수신료는 가장 안정적인 (공영방송의) 재원이다. 지속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반이다. 독일은 독립적인 수신료 평가 기구가 따로 있다”며 “장기적인 포석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추진을 하되 조건을 ‘재원 안정성 문제’ 하나만 집중적으로 한다고 수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진=KBS

반면 여권 성향의 권순범 이사는 “(공론조사위원을 추천한) 3대 학회가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환경 변화에 따라 KBS 재정 구조를 어떻게 할 거냐는 당연히 필요한데, 구성 방법도 고민을 해야 되기 때문에 다음 이사회 회의가 열리면 이걸 중단시킬 것을 의견으로 낸다”고 했다.

여권 황근 이사는 “기시감이 있다. 2009년도 야당이 계속 주장했던 게 공론조사”라며 “사업을 해왔는데 지연하고 있다면 조속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날 이사회엔 공론조사에 관한 ‘의결’ 안건이 아닌 KBS 경영진의 ‘보고’ 안건이 상정됐기에 성향을 막론한 이사들 다수가 절차상 문제를 들어 후속 논의를 요구했다.

이에 서기석 이사장(여권)도 “(공론조사위) 위원장님은, 적어도 말씀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다음에 정식으로 안건을 올려서 (논의하자)”고 마무리했다. 이사회는 향후 운영이사를 중심으로 공론조사위원회 관련 논의 방식과 일정 등을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KBS 공적책임 공론화위원회는 위원장인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비롯해 하주용 인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정영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중점연구소 사업단 선임 연구원, 이헌율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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