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측이 공정방송 및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을 없애고 노동조합 가입 자격을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단체협약 개정안을 제시했다. KBS 교섭대표노동조합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윤석열 정권 공영방송파괴 하수인 낙하산 박민이 KBS 전체 직원들에게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사실상 형해화하기 위한 본색을 드러냈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4일 언론노조 KBS본부는 KBS 사측이 3·1절 공휴일 전날인 지난달 29일 저녁에 ‘2024년 단체협약 개정 회사(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이를 실무회의를 통해 받겠다고 했지만, 사측이 막무가내로 회사안을 보냈다면서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KBS본부에 따르면 사측 안은 기존 단체협약에서 공정방송과 관련해 ‘공영방송 KBS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자 핵심적인 근로조건 중 하나’라고 표현한 부분을 삭제했다. 신문·방송사 등 대다수 언론이 보도 관련 부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시행하고 있는 국장 임명동의제 및 중간평가 조항도 없앴다.

방송 제작·편성 등에 대해 제작 실무자 권한을 보장하는 제도가 약화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일례로 노사 한 쪽이 요구하면 24시간 내에 개최해야 하는 임시공정방송위원회를 ‘안건 협의’를 전제로 3일 내에 열도록 바꾸는 내용이다. 개편 관련해 조합 요구 시 설명하도록 규정하는 단협 조항은 ‘일방 통보’로 바꾸고, 긴급 편성 시 노조에 통보하게 돼 있는 규정은 삭제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연합뉴스

사측 안은 박민 사장 취임 후 KBS에서 불거진 논란과 맞닿는다. KBS는 국장 임명동의제는 위법하며 사장 인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해 왔고, 지난 1월 임명동의 대상 5개 부서(통합뉴스룸·시사제작국·시사교양1국 및 2국·라디오제작국) 국장을 절차 없이 임명했다. 최근에는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다큐인사이트’, 가제 <바람과 함께 살아낼게>) 4월 불방 사태를 두고 KBS본부가 요구한 임시공방위가 사측 불참으로 무산됐다. 

또한 사측 안에는 편성·제작·보도 공정성·독립 관련 부분에서의 ‘제작자’ 범위에 실무자를 넘어 책임자를 포함시키고, 실무자들이 책임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구절도 추가됐다. KBS본부는 이를 두고 “지난번 ‘건국전쟁’ 보도처럼 국장이 직접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는 인터뷰를 하고 제작을 해도 제작 자율성이므로 문제 삼지 말라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나아가 사측은 노조가 부당노동행위 행위자에 대한 징계 또는 인사조치를 요구할 근거를 삭제한 개정안을 내놨다. 조합원 지위 유보 대상인 부장급 이상 직위자와 전략기획국·예산국·대외협력국의 특정 직급(G1, 약 15년차) 등에 대해 ‘조합원 자격 제한’ 즉 노조 가입을 막는 방안도 제시됐다. 노조법이 규정하는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 채용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조합원 교육 시간을 대폭 삭제하는 내용도 있다고 전해진다.

KBS본부는 사측 안이 “대놓고 조합활동을 하지 말라는 식의 선전포고에 가깝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밀어붙일 구조조정과 관련한 포석인지 노동자로서 당연한 권리인 조합 가입과 관련해 가입을 제한하는 업무 범위를 확대했다”고 반발했다.

이어 “KBS 구성원들의 지위를 단순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개악”이라며 “이번 사측안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며 즉각 실무 협의 개시를 사측에 요청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KBS를 풍비박산 내려는 낙하산 박 사장과 경영진, 나아가 모든 수뇌부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KBS 일각에선 이번 사측 단협안이 과거 MBC에서 벌어진 ‘노조 파괴’ ‘노조 없애기’ 시도를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 2011년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은 노조(언론노조 MBC본부)와 단체협약 개정 협상을 하다 단협 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2017년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 3월 작성)> 문건에 노조의 보도 및 인사권 관여를 막기 위한 단체협약 개정 방안이 명시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KBS 사측은 “단체협약 갱신 시 노사안을 서로 통보 또는 교환하는 것은 단체교섭에서 당연한 절차”라는 입장이다. KBS는 “기존 KBS 단체협약은 4일이 만료일이므로 단협 만료 전 회사안을 조합에 전달했다”라며 “현재 단체협약 조합안을 기다리고 있으며, 성실히 교섭에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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