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영향’ 등을 이유로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방영을 무산시킨 KBS 사측이 이번 사안을 다루기로 한 제작 실무진과의 TV편성위원회도 파행시켰다.

KBS 내부 공지 등에 따르면 27일 오후 진행될 예정이었던 TV편성위원회가 무산됐다. ‘다큐 인사이트 세월호 10주기 방송 건’이라는 안건명에서 ‘세월호 10주기’를 빼야 한다고 요구해온 이제원 제작본부장 등 제작 등이 끝내 회의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편성위 실무자 측은 회의가 예정된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약 3시간 동안 기다렸다고 전했다.

앞서 KBS 사측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22일 윤수희 시청자센터장 대화, 26일 공문 등을 통해 이날 편성위원회에서 다큐 관련 논의가 이뤄질 거라고 설명해왔다. KBS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사장 면담 요청을 거절하면서 보낸 공문에는 “27일 편성 제작 책임자와 실무자 대표가 동수로 참여하는 TV편성위원회에서 ‘다큐인사이트’ 관련 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 회의에서 KBS 제작본부 책임자인 제작본부장은 ‘다큐인사이트’ 방송 편성 등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며 실무자 대표와도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게 됨을 설명드린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그러나 정작 사측은 이날 TV편성위에 불참했고, ‘방송시기는 TV편성위 안건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TV편성위원회 제작책임자 명의로 “정규 방송의 기본계획·세부지침 수립·세부실시 내용과 방송시기에 관한 사항은 방송법과 위임규정에 따라 방송사업자 즉 사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본부장·국장·부장이 결정할 사항으로 TV편성위 안건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이 입장문에서 사측은 이번 논란을 “불방이 아니고 연기”이며 “제작중단이 아니고 확대 제작”이라 표현했다. 또한 “세월호 10주기 특집이 아니라 정규방송”이고 “세월호 10주기 방송이 아니라 대형재난사고 생존자 PTSD 극복기 방송”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주간인 4월18일에 맞춰서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가제로 제작되어온 아이템을, 대형참사 생존자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극복기로 만들어 6월 이후 방영하라고 지시한 것이 ‘세월호 다큐 불방’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TV편성위 무산에 KBS PD협회는 긴급 성명을 내고 “PD협회 시사교양 PD들은 제작 책임자와 실무자의 최소한의 대화 장치인 TV편성위원회마저 파행을 낳게 한 이제원 제작본부장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또래의 비극을 접한 그 동년배들이 KBS PD가 됐다”며 “KBS 시사교양 PD 221명을 비롯해 PD협회 732명의 구성원은 이번 세월호 10주기 방송 파행 사태에 강하게 항의하고, 방송 일정에 맞춰 제작되기를 수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제작 실무자들의 간곡한 요구를 이제원 제작본부장은 결국 묵살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0~2023년 KBS에 입사한 시사교양 평PD들은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며 릴레이 성명을 내고 있다.

▲2024년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주최로 KBS의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진과 언론시민단체 관계자, 4·16 세월호 참사 및  10·29 이태원 참사 등 유족 등이 참여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주최로 KBS의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진과 언론시민단체 관계자, 4·16 세월호 참사 및  10·29 이태원 참사 등 유족 등이 참여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박민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던 세월호 참사 유족과 단체들은 이날 “KBS의 면담 거부는 결국 KBS로 향하는 세월호참사 피해자의 항의와 분노를 피하려는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며 “우리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일말의 양심과 지난 10년 전 언론 참사에 대한 반성이 있기를 바랐기에 사장 면담에 대한 대답을 기다린 것이었다”고 실망감을 전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은 관련 성명에서 “세월호참사 피해자와의 면담을 거부하는 이유로 방송법을 운운한 것은 더 어불성설”이라며 “이미 윤석열 정권의 대리인이자 하수인이 되어버린 KBS 박민 사장과 경영진을 보며 모든 국민들은 공영방송의 퇴행과 방송의 독립성 침해에 대해 우려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KBS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편성위 무산에 따라 임시 공방위를 요청할 방침이다. KBS 단체협약은 긴급한 현안이 있을 경우 공사(KBS) 혹은 교섭대표노조 요청 후 24시간 이내에 임시 공방위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KBS본부 비대위는 “낙하산 박 사장 당신은 책임이 없는가. 지금 이 모든 사태를 불러온 이제원 본부장은 당신이 임명한 본부장 아닌가. 아니면, 사내에 흉흉히 도는 소문처럼 이제원 본부장 임명은 낙하산 박 사장의 뜻이 아닌 누군가의 의지인가”라고 물으며 “자신의 의무를 해태한 낙하산 박민은 더이상 공영방송 수장으로 자격이 없다.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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