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낙하산, 세월호 다큐 불방, 박민은 사퇴하라!”
“KBS 구성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힘내십시오!”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로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서울 여의도 KBS 앞, 다소 이질적 구호들이 한 자리에서 나왔다. 참사 유가족들이 10주기 다큐를 불방시킨 KBS 사측을 비판하면서, 예정대로 다큐가 방영되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는 KBS 구성원을 응원하는 목소리다.

KBS는 지난해 제작이 확정돼 4월18일 방영 예정이었던 세월호 10주기 다큐를 불방시켰다. 최근 취임한 이제원 제작본부장이 총선 8일 뒤 방영될 다큐를 두고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6~8월경 다른 참사와 엮은 PTSD 시리즈를 만들라 지시했다.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씨 책 제목이기도 한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가제로, 생존자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기획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제작본부는 “불방 아니고 연기” “제작중단 아니고 확대제작”이라는 입장이다.

이를 제작해온 이인건 PD가 문제를 공론화한 지 3주, 사측은 방송시기가 안건이 될 수 없다며 불방 사태에 대한 TV편성위원회, 공정방송위원회 개최에 불응하고 있다. KBS 앞에선 유족, 시민단체, KBS 구성원을 비롯한 언론인 등이 매주 수요일 다큐 방영을 촉구하며 촛불을 켜고 있다. 6일엔 4·16연대, 4·16재단,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의 3차 촛불 집회가 진행됐다.

▲2024년 3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4·16연대, 4·16재단,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3차 촛불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3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4·16연대, 4·16재단,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3차 촛불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날 집회에는 10년 전 참사 당시 희생자 수습이 이뤄진 진도 팽목항을 취재했던 강나루 KBS 기자가 공개 발언에 나섰다. 강 기자는 ‘오보 참사’로 ‘기레기’ 멸칭이 확산됐던 때를 떠올리면서 “PD 동료들이 세월호 10주기 다큐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무엇보다 고마웠다”며 “하지만 총선 일주일 후 예정된 방송이 총선에 영향을 준다는 해괴한 논리로 4월 방송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 화가 났고 또 동료들이 걱정됐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선 불방이 아니고 방송 연기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방송에 있어서 시의성을 잃은 ‘연기’는 불방이나 다름없거나 때로는 불방보다 못할 때도 있다. 우리가 기념일이나 기일을 정하는 이유는 그날을 계기로 사회 구성원들이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기고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라며 “그걸 모르는 사람은 방송을 전혀 안 만들어봤거나 어떤 이유로든 이 방송이 싫은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강 기자는 “(KBS에) 입사하고 대통령이 네 번 바뀌고 세 번의 파업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라며 “혹자는 KBS가 이모양 이꼴인데 왜 안에서 싸우지 않느냐고 묻는다. 꼭 그렇진 않다. 제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가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행여 과거보다 목소리가 쪼그라들더라도 침묵하지 않겠다. 분노하지만 잠식당하지 않겠다”고 했다.

▲2024년 3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4·16연대, 4·16재단,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3차 촛불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3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4·16연대, 4·16재단,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3차 촛불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추적60분’ 세월호 1주기 다큐를 제작했던 정택수 KBS PD는 무거운 표정으로 발언대에 올라 “제 이름을 여기서 말하기도 부끄럽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는 “28년 동안 있으면서 도대체 왜 KBS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나, 제가 어쩌면 벌을 받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잠시 눈물을 보였다. “저희를 채찍질해도 모자란데 오히려 위로하고 힘내라고 응원하는 그 구호를 들으면서 다시 또 부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정 PD는 “세월호 1주기 때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말 기억하실 거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이 무거웠던 사람 중 KBS에서 기자로, PD로 일했던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아무런 약속을 못 지키고 또다시 10주기 때 이런 꼴을 맞고 말았다. 정말 아픈 상황이다. 그래도 이 자리에 모인 후배들을 보면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어 “KBS가 더 얼마나 무너져내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후배들과 회사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사람은 되고 싶다”며 “4월18일 방송이 될 수 있는 실낱 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3주 전, 2주 전까지 방송을 하게 해달라 요구해야 된다고 믿는다. 이인건 PD에게는 미안하지만 절대로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인건 PD, 세월호 가족분들, 다른 힘들어하는 소시민들이 외롭지 않게 우리가 힘을 보태면 좋겠다”고 했다.

정재권 KBS 이사도 이 자리에 참석해 “수신료 분리징수보다 훨씬 엄중한 위기의 징후들이 넘쳐나고 있다. 상식의 최저선을 무너뜨리고 공영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무시하고 구성원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다큐 불방 사태는 이런 위기의 가장 단적인 사례”라며 “이사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세월호 다큐 불방 결정 시정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경영진은 귀를 막고 있다. 여기서 KBS를 정상궤도로 되돌리지 못한다면 KBS는 국민과 시청자로부터 정말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24년 3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4·16연대, 4·16재단,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3차 촛불이 진행되고 있다. 고 문지성 학생 아버지 문종택씨의 모습.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3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4·16연대, 4·16재단,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3차 촛불이 진행되고 있다. 고 문지성 학생 아버지 문종택씨의 모습. 사진=노지민 기자

KBS 소속이 아닌 언론인으로는 입사 1년차에 세월호 참사를 취재했던 신선영 시사인 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신 기자는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고 있다. 소아정신과 의사, 안산에서 평범하게 일하던 사회복지사, 학생들을 가르치던 음악교사, 아이 셋을 둔 가정주부, 진도에 살던 70대 노부부, 그들이 세월호 유족들을 돕는다고 정치적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시사인 기사에서) 이인건 PD가 ‘세월호 10주기 방송은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내릴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 과정 끝에 나온 기획’이라고 했다”며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KBS를 이끌어갈 거라 믿는다”고 했다.

10년째 ‘지성 아빠’로서 카메라를 들고 세월호 관련 현장을 기록해온 문종택씨(고 문지성 학생 아버지)는 “우리는 ‘생존자’란 말을 무심코 쓰지만, 그 아이들에게 ‘생존자’ 세 글자는 내가 친구들을 버리고 나온 듯한 그런 10년의 세월”이라며 “특히 언론이 앞장섰던 그 모든 것을 저는 기록했고 자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4월엔 문씨가 3654일간 기록한 5000여개 영상으로 만든 다큐 ‘바람의 세월’이 개봉한다.

문씨는 “지난날 KBS 노조원 분들, MBC 노조원 분들이 안산 화랑유원지에 세월호참사 합동분향소가 있을 때 찾아온 모습들을 기억한다.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사죄를 하러 왔던 분들, 오늘 세월호 KBS 다큐멘터리 방영을 열심히 준비한 그분들이 또다시 가족한테 죄송하다고 말씀을 한다. 이상한 나라이다. 그래서 살아내기 힘든 나라”라며 “(KBS 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언론, 방송을 위해서는 이 자리에 나오셔야 한다. 오시는 만큼, 그 방송을 보는 국민 한 사람이 더 살 수 있다는 걸 명심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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