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4·16 세월호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이 끝내 무산된 가운데, KBS가 ‘총선 영향’ 등을 운운하며 참사를 정쟁화하고 있다는 유족들의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진은 21일 KBS 사측으로부터 4월18일 방영 예정이던 <바람과 함께 살아낼게(가제)> 제작 중단 결정을 다시 통보 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이제원 제작본부장이 담당 PD에게 ‘총선(4월10일) 영향’ 등을 이유로 세월호 10주기 다큐 대신 ‘PTSD 시리즈’를 제작해 6월 이후 방영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10주기 다큐 불방’이 재차 지시됐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22일 박민 KBS 사장 등과의 면담을 위해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을 찾았으나, 해당 자리에 KBS 시청자센터장 만이 나와 ‘기다려 달라’는 입장만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10년 전 참사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10년 전 참사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김선우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사무처장은 이날 오전 KBS 본관 앞에서 “박민 사장을 비롯해 부사장이든, 제작본부장이든, 책임자 면담을 요청했고 어제 면담하겠다는 답신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 정작 가보니 책임자는 나타나지 않고 시청자센터장이 와서 공문이 늦게 왔느니, 사장 일정이 조율 안 됐다느니 하는 얘기만 되풀이했다”며 “센터장은 다음주에 다시 논의하는 편성위원회가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 또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10년 전 세월호참사, 언론참사를 겪고도 변하지 않는 KBS를 또다시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 4·16연대 주최 기자회견에 참석한 ‘다큐인사이트’ 팀의 조애진 PD는 “TV편성위원회는 제작자율성 침해 등 관련 사안이 발생했을 때 사후적으로 문제를 논의하는 노사의 기구”라며 “거기서 방송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사측의 입장을 반박했다. 그는 “4월18일 방송을 하려면 제일 바쁠 때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고 제작을 뭉개는 것이 제작본부 책임지는 수장이 할 답변인지 의문스럽다”라고 했다.

조 PD는 “회사 앞에서 기자회견, 촛불 문화제가 벌어질 정도의 사안이라면 왜 공문 아닌 전화를 못하나. 당장 오늘이 안 되면 다른 날로 잡든 정확히 답변을 해야지 왜 궂은 날 걸음을 하게 만드나. 시청자를 이렇게 대우해서 되겠나”라고 비판한 뒤 “저희는 아직 방송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노지민 기자

4·16가족협의회, 4·16연대는 이 자리에서 293개 국내외 단체들이 연서명한 <KBS는 10년 전의 일을 잊었는가, 세월호참사를 정쟁으로 만들지 말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10년 전 KBS는 참사 당일 확인도 되지 않은 ‘전원 구조’ 오보에 이어 세월호참사 희생자 숫자보다 1년동안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더 많다는 보도 등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가리고 세월호참사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던 장본인”이라며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유가족을 ‘정권 타도에 앞장선 불순한 유가족’과 ‘애도하고 슬퍼하는 순수한 유가족’으로 갈라치기 할 때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며 유가족 편가르기 보도에 앞장 섰던 것도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월호참사 다큐가 선거에 정치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큐 방영을 중단시키는 것은 세월호참사 피해자를 시민과 분리시키고, 참사를 정쟁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다큐 불방은 하나의 프로그램 방영이 중지된 것이 아니라 세월호참사 진실을 찾고 국가책임을 물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지된 것이며, 재난참사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포기한 것이며, 세월호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정권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 김순길 4·16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다큐 불방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는 물론 보도 이후 10년 동안 반성의 시간을 보내며 언론 본연의 임무를 다 하기 위해 애써온 KBS 구성원들에 대한 뼈아픈 배신이다. 박민 사장과 이제원 제작본부장의 진심 어린 사과와 사퇴만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이라며 “KBS는 10년 전 우리에게 머리 숙여 약속한 공정 보도 약속을 망각하고 또다시 절대 아물지 않을 상처에 굵은 소금을 뿌렸다”고 지적했다. 박승렬 4·16연대 공동대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함께 아파하는 시민들이 과연 정치적인가”라며 “참사의 진상을 감추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자들이야말로 국민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등 야권 정치인들이 참석해 KBS에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했다. 박주민 의원은 “10주기를 맞이해 시민들디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참사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가족도 조금이나마 아픔이 치유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용혜인 대표는 “집요하게 입을 틀어막는다고 해서 진실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세월호 참사 이후 시간이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KBS 사측이 세월호 다큐 방영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예고한 27일 TV편성위원회 전날까지 다큐 방영 및 박민 사장과의 면담 가능 여부 등을 공문 형태로 회신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향후 KBS 본관 앞에서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21일 4·16연대, 4·16재단과 언론시민단체 등이 공동으로 촛불 문화제를 진행한 바 있다.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이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노지민 기자

KBS 내부에선 지난 21일부터 2010~2023년 입사한 시사교양 평PD들이 기수별로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있다. KBS PD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도 사측의 결정을 비판하며 예정대로 다큐가 방영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앞서 KBS 사측은 이번 다큐 논란에 “신임 본부장 부임 후 당초 기획 의도가 대형참사 생존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극복기인 관계로 세월호 생존자 기획만 다루는 것보다 천안함 피격사건, 대구지하철참사, 씨랜드화재, 삼풍백화점 참사 등 다른 참사 생존자 PTSD 극복기를 종합적으로 다루어 방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으며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6월 이후에 방송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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