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인사이트’ PD가 제작해온 4·16 세월호참사 10주기 다큐의 4월 방영이 ‘총선 영향’ 등의 이유로 무산되면서 “심각한 제작 자율성 침해”라는 KBS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KBS ‘다큐인사이트’ PD는 오는 4월18일 방영이 예정됐던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를 제작 중이었으나, 최근 임명된 이제원 제작본부장이 ‘총선 영향’ 등을 들어 4월이 아닌 6월경, 세월호 참사 외의 재난과 엮어 PTSD 시리즈를 제작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제작이 결정돼 이미 40% 가량 촬영이 완료된 세월호 다큐를 방영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KBS PD협회는 16일 성명을 내고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전국민적 아픔을 위로하고 더 이상의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경고를 울릴 책무가 있다. 국가적 재난이었던 세월호 참사 10주기 방송은 공영방송의 최소한의 의무”라며 “하지만 새로 부임한 이제원 제작본부장은 방송 예정인 세월호 10주기 방송을 6월 이후로 연기해 다른 재난과 엮은 PTSD 시리즈로 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연합뉴스

KBS PD협회는 “세월호 아이템을 민감한 아이템으로 판단하는 본부장이야말로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제작본부장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방송을 연기하는 것인가”라며 “(제작 중인 프로그램은) 세월호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자 정치인이나 유가족 대표, 혹은 세월호 관련 단체의 구성은 제하고, 참사를 겪은 평범한 당사자들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내용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방송에 공정이란 단어가 들어갈 이유,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방송의 시의성조차 모르는 본부장의 이번 결정은 명백한 제작자율성 침해 행위이자 해사 행위”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4월의 바다와 6월의 바다는 다르다. 세월호 10주기 방송은 온전히 4월이어야 한다”며 “이러한 판단은 KBS에 대한 시청자들의 외면은 물론, 공영방송의 추락을 가져올 것이다. 협회는 이번 결정에 대해 심각한 제작자율성 침해로 판단한다. ‘세월호 10주기’ 방송은 예정된 일정대로 제작이 진행될 수 있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시사교양구역 조합원들도 이날 PD총회를 연 뒤 성명을 내고 “총선 8일 후 방송이 어떻게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더 자세히 반박해야 하는 심정이 참담하나 ‘다큐 인사이트’는 예고편과 보도자료도 통상 방송 이틀 전에 나간다. 이제원 본부장은 혼자 ‘타임슬립’ 세계관에라도 사는 것인가. 아니면 TV 제작 경험이 없는 이에게 너무 큰 책임이 주어지고 있어 생긴 문제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월호 10주기 편을 10주기인 4월에 방송하지 말라는 것은 6·25 전쟁 특집을 뜬금없이 10월에 하라는 것과 같으며, 성탄절 특집을 설날에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무엇보다 세월호 10주기 방송이 총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부터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이미 10년이 지난 사안인데다, 학생들 수백 명이 숨진 대참사이다. 국민의 생명에 대한 방송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자체가, 이 사안을 정파적으로 바라본다는 반증 아닌가”라고 했다.

이들은 “제작본부장의 생명 이슈를 바라보는 공감받기 어려운 시각, 그리고 시의성 등 제작에 대한 무지. 그로 인해 우리 KBS 시사교양 PD들은 싸잡혀 모욕당하는 중”이라며 “도대체 박민 사장은 이런 인사를 제작1본부의 수장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 박민 KBS사장. ⓒKBS
▲ 박민 KBS사장. ⓒKBS

언론노조 KBS본부 비상대책위원회는 세월호 다큐가 지연 방영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해당 다큐 주요 출연자가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10주기가 아니면 방송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의미있는 것들이 담겨져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부디 이 다큐가 세월호 10주기 때 방영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또한 출연 자체를 거부하는 출연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KBS본부 비대위는 “라디오센터에서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구성원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 섰던 인물이 제작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을 때부터 이번과 같은 사건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낙하산 박민 사장과 이제원 본부장은 더이상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를 욕보이는 짓을 중단하라.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을 예정됐던 대로 진행하라. 나아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KBS를 떠나라”고 밝혔다.

KBS 사측은 이날 미디어오늘에 “KBS 제작1본부에서는 전임 본부장 시절인 12월에 대형참사 생존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관련 다큐가 기획되어 4월 방송 계획으로 제작 준비 중이었다”며 “그런데 신임 본부장 부임 후 당초 기획 의도가 대형참사 생존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극복기인 관계로 세월호 생존자 기획만 다루는 것보다 천안함 피격사건, 대구지하철참사, 씨랜드화재, 삼풍백화점 참사 등 다른 참사 생존자 PTSD 극복기를 종합적으로 다루어 방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으며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6월 이후에 방송하기로 결정했음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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