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영향’ 등을 이유로 한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에 KBS 내부 구성원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KBS 시사교양 평PD들이 사측의 결정을 비판하며 해당 다큐가 예정대로 방영되어야 한다는 릴레이 성명에 나섰다.

4·16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KBS에 입사한 41기 시사교양 평PD 8명은 21일 “4월18일 편성 ‘세월호 10주기 다큐’가 예정대로 방송되길 촉구한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기획이고 해야하는 방송”이라며 “‘총선(4월10일)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6월 이후에 대형참사 생존자 PTSD 극복기 시리즈로 방송하라’는 이제원 TV제작본부장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배우고 일해 온 가치와 다르다”라고 밝혔다.

41기 PD들은 “10년 전 ‘공영방송 KBS’에 그것도 ‘시사교양 콘텐츠를 만드는 PD’로 입사한 분명한 이유가 우리에게는 있다. 3·1절에는 독립운동을 돌아보고, 5·18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할 수 있는 PD이길 원했다. 바쁜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일상 가장 가까운 TV매체로 그날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면서 “계기성 프로그램, 시의성에 맞춘 기획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공적 가치의 본질을 우리 스스로 하찮게 만드는 순간, 우리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 없어진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연합뉴스

이들은 “KBS 시사교양국에서 일하는 PD가 고품격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정겹고 소박한 프로그램들을 만들 수 있는 이유, 우리가 각자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필요한 때 필요한 방송을 적시에 제작하는 팀·피디·동료가 있기 때문”이라며 “2014년 4월 16일은 우리가 모두 기억하는 날이다. 그날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 없는 큰 사건이었다. 수많은 생명들을 아프게 보낸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예정된 다큐 방영이 이뤄지는 것이 “KBS에서 시사교양PD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근거”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10년, 세월호 안의 학생들과 같은 나이였을 또래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일을 하는 시간이다. 작년 입사한 신입사원을 비롯해 KBS에서 일하고 있을 그 또래들에게 이제원 TV제작본부장의 결정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4월16일 하루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담담하게 공유하는 방송 50분을 못 만드는데, 주 300여 시간의 방송을 만들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라고 물은 뒤 “우리는 ‘세월호 10주기 다큐’ 제작진을 신뢰하고, 이전부터 계획되어온 일들이 순리대로 진행되기를 바란다”며 이제원 제작본부장의 응답을 촉구했다.

KBS 시사교양 평PD들은 이날을 시작으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2010년~2023년 입사한 10개 기수의 성명을 연이어 밝힐 예정이다. 박민 KBS 사장이 취임하고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벌어진 이래 대다수 평PD들이 기수별 성명 발표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KBS PD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시사교양구역 등에서도 지난해 확정돼 제작 중인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 무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2024년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주최로 KBS의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진과 언론시민단체 관계자, 4·16 세월호 참사 및  10·29 이태원 참사 등 유족 등이 참여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주최로 KBS의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진과 언론시민단체 관계자, 4·16 세월호 참사 및  10·29 이태원 참사 등 유족 등이 참여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KBS 바깥에서도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을 통해 4·16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유족과 언론·시민단체 등이 기존 기획대로의 다큐 방영 및 박민 사장, 이제원 제작본부장 사퇴를 촉구했다. 21일엔 공동행동 준비위와 4·16연대, 4·16재단 등이 KBS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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