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 모습. 사진=언론노조
▲지난 19일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 모습. 사진=언론노조

KBS 윗선에서 4·10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지 못하게 하자 담당 방송작가가 “유가족들은 10년 전처럼 방송사 앞에서 눈비를 맞으며 촛불 시위를 한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입을 틀어막혔다고 기록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연 방송작가는 27일자 한겨레에 <‘제작 중단 사태’ KBS 세월호 10주기 다큐 작가입니다> 칼럼을 기고했다. 이재연 작가는 “10여년 전, 저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에서 글·구성을 맡았습니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성빈이, 고운이, 세호, 다영이가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아버지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재연 방송작가는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인건 PD에게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반갑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라며 “마음 아픈 그 사건을 다시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고, 자료화면과 슬픈 음악으로만 이어지는 영상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10주기를 추모했다는 명분만 세우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27일자 한겨레 칼럼.
▲27일자 한겨레 칼럼.

PD가 내민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씨가 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여느 20대 중후반의 청년들처럼 고민하고, 좌절하고, 우울해하다가도 다시 힘을 내보려 아등바등하는 평범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이야기가 세월호 10주기를 맞는 우리에게 일종의 위로가 되리라 생각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함께 나눌 만한 가치가 있다고요.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고 말했다.

재작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애도의 뜻을 전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이 작가는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모두 함께 기억해야 할 상처임을 명시한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10주기를 앞둔 지금, 갑자기 총선을 이유로 방송을 미루라니요”라고 물었다.

이 작가는 “한국방송 다큐인사이트는 프리랜서 방송작가인 제게도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성여 1, 2부’,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관하여’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10초짜리 인터뷰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에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했습니다. 집요하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습니다”라며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도 그렇게 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라고 했다.

이 작가는 “하지만 일방적인 통보로 제작 중단 사태를 맞이했습니다. 유가족들은 10년 전처럼 방송사 앞에서 눈비를 맞으며 촛불 시위를 합니다. 저는 이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랍니다”라며 “새파란 생명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고, 끔찍한 사고였음에도 슬퍼하는 데 눈치를 봐야 했다고, 심지어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입을 틀어막혔다고 기록되길 바랍니다. 작가는 글을 써야 작가라고 하지요. 방송을 통해 말하던 저는, 방송을 잃게 된 지금 이렇게나마 글을 남깁니다”라고 했다.

이인건 KBS ‘다큐인사이트’ PD는 지난 15일 KBS PD협회 시사교양 구역 협회원들이 속한 대화방에 “이제원 제작본부장께서 4월18일로 방송 예정이었던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과 함께 살아낼게(가제)를 6월 이후에 다른 재난과 엮어서 PTSD 시리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며 “4월에 방송을 낼 수 없는 이유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이다. 총선은 4월10일이고 방송은 8일 뒤인 4월18일이니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자신은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고 본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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