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18일 보도한 MB 정부 국가정보원의 MBC 장악 문건(‘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은 김재철 전 MBC 사장 체제 이후 MBC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단서다.

한겨레에 따르면, 2010년 3월 국정원이 작성한 이 문건은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노조 무력화→민영화’로 이어지는 3단계 MBC 장악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김 전 사장 취임을 발판으로 최문순 전 MBC 사장(MBC 사장 재임 기간 2005년 2월~2008년 2월) 인맥을 모두 퇴출하고 제작·보도·편성본부 국장급 간부 전원 교체, ‘건전 성향’ 인사의 전진 배치 등을 추진하는 계획도 담겨 있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MB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국정원 차원에서 기획됐음을 보여주는 문건이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국정원은 ‘인적 쇄신’을 명분으로 퇴출할 각 지역 MBC 사장과 간부의 성향, 과거 행적 등을 담은 명단을 작성했다. 노조와 야권 우호적 성향의 국장급 간부 교체, ‘일선 기자와 PD도 정치투쟁’, ‘편파방송’ 전력자에 대한 문책 인사 확대 시행 등을 주문했다. 

아울러 노조의 보도·인사권 관여를 저지하기 위해 단체협약 개정을 주문했고 파업·업무방해 행위에 대한 엄중징계와 사법처리를 통해 영구 퇴출을 추진토록 했다. 

2009년 9월 제작진 퇴출 압박에 떠밀려 ‘100분 토론’ 진행자인 손석희 아나운서(현 JTBC 보도 담당 사장)가 하차한 것에 대해서 국정원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평가했고, PD수첩에 대해서도 “광우병 허위보도”, “4대강 왜곡보도” 등으로 수차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를 받았지만 자체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MBC 기자와 PD 발탁의 최우선 기준을 ‘국가관’으로 규정했는데 2012년 파업 이후 MBC가 경력 사원을 뽑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사상 검증’ 논란이 불거지는 까닭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국정원 문건은 어느 정도 실현화했는가

‘MB 낙하산’이라는 이유로 사내 구성원 반발에 부딪혔던 김재철 전 사장의 초기 행보는 국정원 장악 문건 내용과 일치한다. 김 전 사장은 첫 출근 이틀 뒤인 2010년 3월4일 사원들에게 △ 2008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에 대한 진상조사 방침 △단체협약 개정 시사 뜻을 밝혔다. 

이후에도 PD수첩에 대한 진상조사와 단체협약 개정은 ‘김재철 체제’에서 노사 간 끊임없이 논란을 불렀던 쟁점이었다.

김 전 사장은 다음날인 5일 MBC 모든 관계사(계열사·자회사) 사장들에게 사표를 요구했다. 실제 지역 MBC 및 관계사 경영진 교체가 대거 이뤄졌다. 

이때 마산·진주 MBC 겸임 사장(현 MBC경남)에 임명됐던 김종국 전 MBC 사장은 2013년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뒤 MBC 사장에 취임하게 된다.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건전 성향’ 인사의 전진 배치가 현실화한 사례로 해석해볼 수 있다.

김 전 사장의 대규모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은 당시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의 신동아 인터뷰(2014년 4월호 “‘김재철 사장, ’큰 집‘에 불려가 조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 정리했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동아 인터뷰는 MB 청와대에 김 전 사장이 불려가 크게 혼이 난 뒤 대규모 MBC 인사가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인터뷰 논란 당시엔 국정원이 MBC 인사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사찰 없이는 알기 어려운 특정 MBC 간부의 성향과 과거 행적을 들추기도 했다. 한겨레는 “정아무개 보도제작국장과 곽아무개 시사교양국장이 ‘광우병 깃발시위 왜곡보도를 방관했는데도 아직 건재하다’고 (국정원이) 지적했다”고 보도했는데, ‘곽아무개 시사교양국장’은 고(故) 곽동국 전 국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곽 전 국장은 1985년 MBC에 PD로 입사해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연출한 명 PD다. 지난 1월 별세한 고인에 대해 최승호 MBC 해직PD는 “곽동국 선배에게 특히 감사하는 것은 그가 이명박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으로 MBC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이던 시절 시사교양국장을 맡아 PD수첩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셨다는 사실”이라며 “국장은 곽동국 선배, 부장은 김환균 PD(현 언론노조 위원장)였던 그 시절은 PD수첩의 전성기였다”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MB 정부 입장에서 곽 전 국장은 ‘껄끄러운 언론인’이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PD수첩’과 ‘100분 토론’ 등 시사 프로그램 퇴출 움직임

국정원 MBC 장악 문건에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 한겨레는 “이 리스트에 언급된 프로그램들은 이듬해인 2011년 대부분 폐지됐고 간부들은 교체됐다”며 “성경섭 논설위원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성경섭의 뉴스터치’는 2011년 10월 폐지됐다. 방송인 김미화씨는 2011년 4월 8년간 진행해온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그만뒀으며 시사평론가 김종배씨 역시 비슷한 시기 ‘손석희 시선집중’에서 하차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PD수첩도 감시했다. 국정원은 PD수첩이 “광우병 허위보도”, “4대강 왜곡보도” 등으로 수차례 방통심의위 제지를 받았지만 자체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기상 ‘4대강 왜곡보도’라고 지칭한 PD수첩 방송분은 2009년 12월1일 방영된 “4대강과 민생예산” 편.

보수단체 ‘공정언론시민연대’ 등이 PD수첩 방송 직후 방통심의위에 민원을 제기했고 방통심의위는 이듬해인 2010년 1월 만장일치로 ‘권고’ 조치를 내렸다. 최승호 PD는 18일 오전 페이스북에 당시를 회상하며 “권고라는 사소한 제재를 이용해 PD수첩 입을 틀어막으려는 계획을 국정원-방통심의위-MBC경영진이 협력해서 이행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해석했다. 방통심의위는 2009년 7월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대해서도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손석희 아나운서의 ‘100분 토론’ 하차 역시 2009년 10월 당시 MBC 안팎에서 큰 논란을 불렀다. 당시 엄기영 사장의 MBC는 ‘프로그램 경쟁력 강화’ ‘경비 절감’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노조는 엄 사장에 대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권력에 대한 굴종이요 눈치 보기라는 구성원들의 의심조차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4월에는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가 강제 교체돼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었다. 

손 아나운서의 ‘100분 토론’ 하차 정도론 MB 정권이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방문진의 사퇴 압박에 엄기영 사장은 2010년 2월 자진 사퇴했고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김재철 전 사장이다. 미디어오늘은 2013년 5월 손 아나운서가 MBC를 떠난 배경에 백종문 MBC 부사장 등 경영진의 집요한 괴롭힘이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 영화 ‘공범자들’ 스틸컷. 사진은 김재철 전 MBC 사장과 최승호 감독.
▲ 영화 ‘공범자들’ 스틸컷. 사진은 김재철 전 MBC 사장과 최승호 감독.
국정원의 노조 탄압 주문대로

한겨레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0년 4월 말부터 연말까지 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노조의 ‘업무방해’, 파업 등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을 확대하라고 했다. 또 당시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사법처리하고, 보도·제작본부장 출근 저지에 가담한 노조원 30여 명에 대해 무노동·무임금 엄격 적용을 강조했다.

또한 국정원은 “자판기 등 노조의 수익사업을 철저히 차단하고 불법투쟁 및 좌파세력 지원을 위한 자금줄 차단”을 문건에 명시하며 노조 탄압 지침을 내렸고 2011년 3월 이 본부장 임기 만료를 계기로 ‘건전 성향’ 노조위원장 당선을 측면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방침은 사실상 그대로 이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근행 집행부는 2010년 4월5일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5월13일까지 이어진 ‘39일 파업’이었다.

이보다 앞서 4월4일 김재철 전 사장은 긴급확대간부회의를 통해 “(노조가 총파업 시) 송출을 방해하고, 사장실 집무를 방해한다면 원칙대로 대응할 것”이라며 “무노동 무임금으로 하고 징계하겠다. 이번 사태로 해고되면 내가 있는 한 복직은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문건 내용과 대동소이한 발언이다.

그해 6월 김재철의 MBC는 ‘불법 파업 주도’를 이유로 이근행 본부장을 해고하면서 노조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노조 조합원 41명에게 해고(2명), 정직 1~3개월(11명), 감봉 1·3개월(8개월), 구두경고(20명)를 내린 것. 2012년 170일 파업 이전까지 유례없던 대규모 징계였다.

2013년 ‘특별채용’으로 다시 MBC로 복귀한 이근행 MBC PD는 18일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열린 총파업 집회에서 국정원 MBC 장악 문건을 언급하며 “청와대와 국정원이라는 야수 같은 권력이 MBC를 갈아 마시겠다고 방침을 세웠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날뛴 것”이라고 경악한 뒤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었지만 우리는 끝내 살아남았다”고 술회했다.

노조의 수익 사업 차단과 관련해서는 2007년 11월 ‘선임자 권익 보호’를 기치로 설립된 MBC 제2노조(공정방송노조)와 국정원의 공조 의혹도 일었다. 최승호 PD는 “(국정원 MBC 장악 문건에는) ‘자판기 등 노조의 수익사업을 차단하라’는 대목이 있는데 당시 공정방송노조에서 자판기 문제를 집요하게 주장했다”며 “이 문건은 국정원이 상상으로 작성한 게 아니라 MBC 내 협조자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건전 성향 노조위원장 당선을 위한 측면 지원’과 관련해서는 국정원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다. 이근행 본부장 후임인 정영하 전 본부장은 “이근행 집행부 임기가 끝나기 4개월 전인 2010년 10월부터 노조위원장 후보가 확정됐다”며 “국정원이 (MBC 내부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런 공작을 해보고 싶어도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본부장은 2012년 170일 파업을 이끈 노조 집행부로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해직 언론인이다.

▲ 18일자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총파업 집회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국정원의 공영방송 장악 내용을 담고 있는 한겨레의 18일자 보도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 18일자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총파업 집회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국정원의 공영방송 장악 내용을 담고 있는 한겨레의 18일자 보도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주목되는 ‘김재철 체제’의 입

국정원은 MBC 장악의 완성을 ‘민영화’로 파악했다. MBC 구성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지난 5일 고용노동부에 출석한 김재철 전 사장도 “제가 바라는 것은 MBC를 민영화하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이라 정권에 휘둘려 왔기 때문에 민영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현 대전 MBC 사장)이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만나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MBC 지분 매각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당시엔 MBC 지분 매각 수익을 통한 선심성 재원 확보 등 박근혜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경영진들이 동분서주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이번 국정원 문건을 통해 MBC 민영화가 MB 정권의 숙원 과제였음이 드러났다.

정 전 본부장은 “MBC 민영화 추진이 국정원 기획이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며 “대선에서 박근혜가 이겨야 MBC 경영진 뒷길이 열린다는 차원에서만 생각했었다. 이번 문건 보도를 보고나서야 국정원 프레임대로 경영진이 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언론노조 MBC본부는 국정원에 문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김연국 본부장은 18일 총파업 집회에서 “오늘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열고 MBC 장악 문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며 “불법행위 문건은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 또한 책임자 처벌 수사에 협조해달라고 공문을 (국정원 위원회에) 넣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우리도 누가 내부에서 국정원 문건 작성에 협조하고 실행을 주도했는지 철저히 밝힐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공영방송 종사자로서 시청자와 국민 앞에 사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정원이 문건을 작성하기 한해 전 뉴라이트 인사들이 대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선임된 배경을 밝히는 것도 MB정부의 방송장악 전모를 파헤치는 데 필요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임명된 당시 여당 추천 8기 방문진 이사들은 엄기영 전 MBC 사장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내고 김재철 전 사장을 임명한 인물들이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방문진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뉴라이트 학자인 김광동 이사는 기자에게 MB 정부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추천으로 방문진에 오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이사는 안무혁 전 안기부장의 민자당 의원 시절 보좌관 출신이다. 

김재철 전 사장은 18일 오후 미디어오늘에 “내가 MBC를 경영하는 동안 국정원이나 청와대와 MBC 사태를 논의한 바 없다”며 “MBC 출신으로서 나는 내 방식대로 MBC를 경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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