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는 곧 숫자다. 인간을 집합체로 치환해서 통계로 추출한다. 정책 입안자의 책상 위에서는 인구가 국가 경쟁력으로 번역된다. ‘생산가능인구’라는 용어은 그 단면이다. 만 15세에서 64세의 국민을 국가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자원으로 규정한다. 이처럼 인구는 경제성장의 계산식에 끼워 넣어진다.
이러한 시각은 마치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상상하자면 이런 거다. 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빽빽하다. 머리 위에는 식별번호처럼 숫자가 떠 있다. 하나, 둘, 셋, 넷… 백십만사백칠십구. 숫자는 끝없이 이어진다. 사람은 덩어리가 되고, 덩어리는 ‘인구’라 일컫는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딛고 보는 세상은 다르다. 사람마다 ‘세계’가 있다. 백십만사백칠십구번 사람에게도 자아가 있다. 인생사가 있다. 저마다의 그 세계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인구’라는 숫자에는 담기에는 벅찬 이야기들이다.
지방소멸도 주로 숫자로 읽힌다. 수도권 시민에게는 숫자가 직관적이다. 인구 통계는 지방 소멸을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하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소멸은 숫자가 아니다. 지방 사람에게 지방소멸의 숫자는 오히려 모호하다. 직관적인 것은 ‘장소’다. 내가 다니던 슈퍼, 세탁소, 마을도서관, 학교가 사라진다. 그 안에서 이어지던 경험과 이야기는 단절된다. 그래서 장소가 사라지면 공동체가 줄곧 이어온 집단경험과 기억은 단절된다.

정부 역시 지방소멸 문제를 인구 기반의 경제·산업적 관점에서 인식한다. 인간을 인구로 치환해 생산성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5극 3특 전략도 그렇다. 여러 지역을 권역으로 묶어 절대적인 인구수를 늘리고, 특화 산업을 육성해 ‘제2의 수도권’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려는 범국가적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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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인구’라는 숫자에 담을 수 없는 공동체의 가치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경제 성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소멸을 숫자로만 다루는 한, 지방 시민의 삶과 공동체 문제는 계속해서 놓칠 수밖에 없다. 사회학적 관점의 지방소멸 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공동체를 세심하게 살펴야 할 제1주체는 지방정부다. 하지만 지방 행정은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대신 케이블카, 테마파크, 민자사업 같은 눈에 띄는 프로젝트에 매달린다. 지역민의 삶보다는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이거나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는다. 인구와 숫자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주민들의 관계망을 복원하고, 작은 도서관이나 마을 사랑방 같은 공공공간을 지키는 일은 뒷전으로 밀린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게 보통의 이유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애사는 경제발전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해왔다. 이제는 국가 경제를 위해 개인이 수단이 되는 것으로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지방소멸 대책에도 사회학적 관점이 필요하다. 공동체 복원을 중심에 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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