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메인뉴스 앵커에서 물러난 김주하 앵커가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했다. 지난 22일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첫 방송. 첫 게스트는 63년 경력의 1939년생 김동건 아나운서. “다시 태어나도 아나운서를 하겠습니까”라는 김주하 앵커 질문에 김동건 아나운서는 “그럼요. 한 번 더 하면 잘할 것 같아”라고 답했다. 이날 방송은 최고 시청률 2.9%, 토요일 기준 종편·케이블 1위를 기록했다.
1997년 MBC에 입사해 2000년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김주하 앵커는 26년 동안 ‘뉴스’ 한 길을 걸었다. 인대가 끊어져서 걷기가 힘들 때도 목발을 짚고 뉴스를 진행했다. 2015년 MBN에 입사한 뒤로도 10년 동안 뉴스를 하며 ‘종편 최장수 메인뉴스 앵커’가 된 김주하 앵커를 지난 21일 충무로역 인근에서 만났다. “솔직히 많이 지쳤다”고 토로한 그는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뉴스를 버텼을까. 다음은 일문일답.
“이렇게 힘든 걸 알았다면… 뉴스 안 했을 것”
- 지난 4월 앵커 하차 소식을 듣고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회사에서도 놀랐다. 나도 솔직히 많이 지쳤고. 딱 10년을 채우는 7월까지 할까 생각도 했는데, 마침 MBN이 30주년을 맞아 개편 과정에 있었다. 그때(4월) 그만두는 게 맞겠다 싶어서 그랬다.”
- 2015년 MBN에 입사해 10년 동안 메인뉴스 앵커 자리를 지켰다. 매일 방송되는 뉴스를 장기간 책임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궁금하다.
“10년 해야 한다고 하면 못 했을 수도 있는데, 그냥 하루하루를 한다고 생각했다. MBC 시절까지 하면 (뉴스 진행이) 26년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알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였을 뿐이다.”

- 엥커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가장 좋았던 건 2002년 월드컵.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리포트를 전달할 때 행복했다. 언제 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가장 또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지난해 12월3일이다. 밖에서 사람들하고 밥 먹고 있었는데 전화 와서 계엄이 선포됐다길래 장난치지 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진짜네. 밥 먹다가 회사 날아가서 특보했다.”
-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뉴스를 했을 것 같나.
“이렇게 힘든 걸 알고 돌아간다면 안 했을 거 같다. 일상을 놓친 게 많다. 뉴스는 빨간 날(휴일)이 없으니까. 이번에 (뉴스 그만두고) 추석을 처음으로 집에서 지냈다.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웃음).”
- 여성 앵커로서 느낀 고충은 없었나. 여성이라 유난히 악플과 개인사가 부각된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내가 이혼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들은 얘기 중 하나가 ‘사실은 나도 이혼했어’라는 것이었다. ‘왜 그걸 비밀로 했어’라고 물으니 ‘그걸로 평가받고 싶지 않았어’라고 하더라.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사회에 대해 화가 날 정도였다. 이혼이 잘못이 아니지 않나. 그때 결심을 한 게 있다. 당당하게 혼자 살면서, 내 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를 하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 2020년 MBN이 김주하 앵커와 똑같은 모습의 AI 앵커를 도입해 큰 화제를 불렀다. 국내 방송사 최초의 AI 앵커였는데, 어떻게 봤나.
“너무 기계적으로 (진행)하더라. 톤에 따라 차이를 두고 싶은데 강조하고 싶은 부분도 부각이 잘 안됐다. AI가 못 따라갈 직종이 앵커 같다는 생각도 했다. 라디오와 달리 TV 앵커는 영상으로 (시청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하지 않나. 일반 사람들이 앵커에 기대하는 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가 아니다. 이 이슈를 저 앵커는 뭐라고 얘기할지, 어떤 톤으로 할지,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고 말할지가 궁금한 건데 그런 차원에서 보면 AI 앵커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 2015년 MBN 입사 당시 ‘지상파 메인뉴스 첫 단독 여성 앵커’ 타이틀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젠 ‘종편 최장수 단독 앵커’ 타이틀이 추가됐는데, 어떤 게 더 맘에 드나.
“‘종편 최장수 단독 앵커’ 타이틀이 더 낫다. 꾸준히 했다는 거니까.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 잘했다고 다독일 수 있는 건 그 타이틀 같다.”
인대가 끊어져도 뉴스를 멈출 수는 없었다
- 뉴스 진행하는 동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사람들 잘 모르는 얘기인데, 내가 양쪽 인대가 다 나갔다(웃음). 뉴스 들어가기 전에 (원고) 한 글자라도 더 쓰고 가려고 (하이)힐을 뒤틀어서 신다가 (힐에서) 추락했다. 그때 한쪽 인대가 끊어졌다. 다리 질질 끌면서 뉴스를 했는데 그때는 좀 힘들었다.”
- 그때가 언젠가.
“한 2~3년 정도 됐다. 그 이후에 또 다쳤다. 한쪽을 다치고 나서 집에 가만히 있으니 살이 좀 찌더라. 딸이 공원 앞에 줄넘기라도 하자고 해서 좋은 생각이라고 따라갔다가 인대가 끊어졌다. 한쪽을 다치고 나서 인대가 끊어진 줄 모르고 있다가 확실히 끊어진 걸 알게 된 거다. 딸이 한 발씩 (줄넘기)하는 걸 ‘나도 할 수 있어’ 하면서 따라했는데 인대가 없으니 픽 쓰러지더라(웃음). 그래서 병원 가서 수술했다. 1년에 얼마 없는 휴가를 그 수술에 썼다.”


- 화면으로 뉴스를 볼 때는 전혀 티가 안 났다. 사람들 대부분이 몰랐을 것 같다.
“수술하고 나서도 따로 이동기기를 구해서 회사 안에서 돌아다녔다. 뉴스 하는 사람들 다 뛰어다니지 않나. 뉴스 진행할 때도 바퀴 있는 의자 밑에다 두고 왔다갔다 했다. 한 6개월 정도 그랬다. 사실 그 이후에도 다쳤다. 한쪽이 거의 다 나아서 깁스를 푼 바로 다음 날 엘리베이터가 공사 때문에 안 오더라. 지각 안 하려고 목발 짚고 계단으로 출근하다가 굴렀다. 한 번 경험으로 다른 쪽 발목 인대도 끊어졌다는 걸 직감하니 울음이 절로 나오더라. 도시락도 다 엎어졌고. 앉은 채 아이처럼 엉엉 우니까 앞집 아저씨가 놀라 나오실 정도였다. 도움받아서 그날도 출근했고, 결국 뉴스도 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지 뭐(웃음).”
- 앵커로서 책임감이 남달랐던 것 같다. 핑계 삼아 쉬어도 됐을 텐데.
“그런 말 있지 않나. 죽지 않으면 한다(웃음). 남들도 (같은 상황이면) 그렇게 했을 거다.”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 기획했다가 접은 이유
- 2016년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기계적 중립이 아닌 철저한 중립이 내 강점”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그 ‘중립’이란 가치가 주요하다고 생각하나.
“최근 들어 좀 바뀐 거 같다. 추세가 그렇다. 옛날에는 기계적으로라도 (중립을) 맞추려고 방송사들이 애를 썼다. 민주당 리포트 3개 나가면 국민의힘 리포트 3개 내는 식이었다. 지금은 글쎄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나는 현장에 있는 취재기자들한테 보도 배경을 좀 많이 물어보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맥락을 같이 제공하고 싶었다. 앵커인 내가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 해도 톤이나 물음표를 통해 사안의 본질을 (뉴스에)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중립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좀 이전과 변한 부분이다.”

- 처음 뉴스 앵커를 시작할 때보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됐다. 기성 언론과 유튜브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레거시 미디어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 한 숙제다. 다들 그 답을 못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방송이 오히려 유튜브를 따라가고 있지 않나. 사실 앵커를 그만둘 때 시사를 기반으로 한 새 프로그램을 하려고 했다. 이걸 포기한 이유가 (시사) 유튜브를 내가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심의가 없기도 하고. 그 자극적이고 재밌는 프로그램들을 내가 이길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접었다.”
“토크쇼 진행, 긴장 너무 많이 해 우황청심환 먹었다”
- 토크쇼를 진행해 보니 어떤가. 뉴스 진행이랑 다른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나는 뉴스를 일보다 그냥 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토크쇼는 아직은 ‘일’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예능 많이 한 문세윤씨한테 자주 물어본다. 큐카드 두꺼운 거 다 보려고 하니 문세윤씨가 ‘누나 그거 보면 안 돼요. 게스트가 무슨 답을 할지 모르잖아요’라고 하더라. 방송해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았다.”
- 그래도 이제 녹화를 몇 번 한 시점이다. 좀 익숙해졌을 것 같기도 한데.
“전혀 아니다. 첫날에 긴장을 너무 해서 우황청심환을 먹고 갔을 정도인데(웃음). 나는 지금까지 일을 혼자 했던 사람이다. 누군가랑 같이 해야 하니 조심스러운 것도 많고 긴장도 아직 많이 된다.”

- 뉴스 진행할 때와 지금 방송하는 것 중 가장 다른 걸 하나 꼽자면?
“예전에는 내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주어진 질문과 답이 없다 보니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감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결국은 내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그게 아직 익숙하지 않다.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 건지도 어렵고.”
- 문세윤·조째즈와의 호흡은 어떤가. 접점이 많았을 것 같지는 않은데.
“둘 다 인간성이 정말 좋다. 문세윤씨는 인간성 좋은 걸로 원래 유명했고 조째즈씨도 만나보니 사람이 너무 착했다. 우리 셋 다 서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말조심하고 애를 쓰는 게 보인다. 고마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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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어떤 게스트를 부르고 싶나. 생각해 둔 사람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이 궁금하다. 정치적인 걸 물어보려는 게 아니라 블랙요원의 삶이 궁금하다.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고. 실력도 최고였다고 하시니까. 그런 게 묻고 싶은데 나만 그런 것 같다. 홍장원 차장 얘기하니 (제작진들은) 잘 모르더라고(웃음).”
- 사람들한테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이 어떤 방송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옛날에 마이클 잭슨이 입양한 아이를 창문에 매달고 그래서 난리가 났던 때가 있었다. 마이클 잭슨 딴에는 해명하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아무하고도 인터뷰를 안 했다. 그때 마이클 잭슨이 (미국의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가 하는 방송에는 나가겠다고 했다. 자기 말을 곡해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다. 그렇게 실제로 인터뷰를 했다. 그런 프로그램이 되고 싶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억울한 사람들 나와서 자신의 깊은 얘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억울한 오해가 많았던 사람이니까.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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