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문옥 전라남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사진=전라남도의회 홈페이지
▲ 박문옥 전라남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사진=전라남도의회 홈페이지

지난 20일 전남도의회 운영위원회가 내년도 국외 연수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총 2억 4400만 원이다. 박문옥 운영위원장은 “지방의회의 공무 국외 출장이 오랜 기간 잘못된 관행 속에서 추진되면서 도민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국외 연수 비용 부풀리기 의혹이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3년 동안 243개 지방의회의 국외 연수 915건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약 44%에 해당하는 405건에서 항공권 위변조, 출장비 과다 청구 등 부정 사용 정황이 확인됐다. 권익위는 188개 지방의회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전남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남도의회와 15개 시군 기초의회가 수사 선상에 올랐다. 경찰은 지난달 전남도의회를 압수 수색하면서 국외 출장비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광역의회 중 내년도 국외 연수 예산을 전액 삭감한 곳은 전남도의회가 유일하다. 이 사례를 유심히 봤다. 전남도의회로서는 들끓는 도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면 그 비판은 더 거셌을 터, 전남도의회의 업보이니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문이 든다. 예산을 투명하게 쓰라고 요구했더니 편성된 예산 자체를 없애버리는 꼴인데,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되레 당장의 소나기만 어떻게든 피하고 보자는 조치이진 않을까.

올해 초 행정안전부는 국외 연수 투명성을 강화하는 표준안을 내놓았다. 국민권익위 실태 점검 후속 조치다. 심사위원회의 민간위원 비율을 3분의 2 이상으로 높이고, 1일 1기관 방문을 의무화하는 등 내용이 담겼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 지방의회가 출국 규칙을 고쳤고, 전남도의회도 지난 7월 조례를 개정해 표준안을 반영했다. 통제 장치를 강화한 셈이다. 전남도의회는 그 통제를 받는 국외 연수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깐깐한 심사를 통과하고, 국외에서 실제 견문을 넓히고, 의미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어렵다. 통제를 받아야 하니 가기 싫고, 책임을 져야 하니 부담스럽고, 비판받을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상책일 테다.

전국 곳곳의 시민단체들은 지방의회의 국외 연수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권익위 보도자료에 제시된 ‘돈 빼돌리기’ 사례를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 2022년 6월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직원들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경기도의회 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를 정리하고 있다. (※ 위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 2022년 6월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직원들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경기도의회 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를 정리하고 있다. (※ 위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지방자치를 성숙시키려면 성실하게 ‘공부하는’ 지방의원이 필요하다. 지방의회는 지자체 집행부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선출 권력이다. 시민을 대표해서 예산을 심의하고 조례를 제정한다. 지역 개발·복지·교육·교통 등 주민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지방의원 몫이다. 즉, 지방의원이 전문성이 부족하면 지역 공공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진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과정에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의원이 도매금으로 비판받지만,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지역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제도 안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이들은 제대로 인정받고,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은 엄정하게 걸러내야 한다.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그러려면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지방의회마다 공무국외출장심사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실제로는 ‘봐주기 심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전 심사를 민간 중심으로 엄정하게 운영하고, 추후 부정행위가 밝혀진다면 형사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다시는 비슷한 일을 꾸밀 엄두조차 못 내도록 해야 한다. 제도가 바로 설 때까지 중앙정부 차원의 정기적 전수조사를 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의원들에게 사후 보고의 압박을 가해야 한다. 국외 연수가 얼마나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인지 체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결과보고서를 서면 제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국외 연수를 다녀온 의원은 의회에서 직접 사례를 발표하고, 이 모습을 시민에게 생중계해야 한다. 서면 보고서와 함께 의원 본인의 직접 발표를 통해 ‘대필’ 의혹을 지우고, 의원 본인에게 강한 책임감을 부여해야 한다. 이 귀찮고 힘든 일을 기꺼이 해내는 의원에게 기꺼이 세금을 들여야 한다.

다만, 서면 보고서를 공개하든 사례 발표를 하든 시민들 관심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이를 테면 최근 창원시의회 의원들은 시의회 홈페이지에 국외 연수 보고서를 올렸다. 각 상임위별 결과보고서 종합이 올라와 있고, 파일을 열어보면 의원 개별 보고서가 덧붙여져 있다. 누구든 언제든지 파일을 열람할 수 있지만, 조회수는 100회 남짓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지역언론과 지역 시민단체의 상시적인 감시가 뒤따라야 한다.

국외 연수를 없애는 것은 손쉬운 선택이다. 지방자치를 성숙시키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소수의견일테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못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다녀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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