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창원시 도심을 달렸다. 가로수길을 지나 숨을 고르던 중이었다. 그때 시야에서 낯선 형체가 스쳤다. ‘저게 뭐지?’
멀리 굴뚝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우뚝 서 있었다. 산의 형세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거대한 형체만이 시선을 강탈했다. 마치 판옵티콘 감옥의 감시탑처럼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 정체는 ‘빅트리’였다. 40미터의 나무 모양 인공 전망대인 빅트리가 그 외형을 드러내자 ‘흉물’ 논란이 거세다. 빅트리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창원시는 민간사업자에게 도시공원인 성산구 대상공원 면적 중 87.3%를 공원으로 조성해 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나머지 12.7%에 아파트와 상업시설을 지어 수익을 내도록 했다. 창원시는 이 민간특례사업을 활용해서 창원의 상징물인 빅트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명소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슈퍼트리에서 디자인을 차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정률 90%를 넘긴 현재, 나무 형태로 설계됐던 기둥은 굵은 원통형으로 변했다. 전망대 시설을 갖춘 꼭대기에는 인공나무가 앙상하게 조성돼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드럼통”, “탈모트리”라는 조롱이 나온다. 오죽하면 “부숴버리는 것도 방법(창원시 부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빅트리가 워낙 흉물스러워서 입방아에 오르지만, 문제의 본질은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그 자체에 있다. 본래 공원 부지로 지정되면 사유지라도 개발이 제한됐지만,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공원부지(도시계획시설) 지정 후 20년이 지나면 규제를 해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자체는 그 안에 해당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임기제 지자체장에게는 공원 부지 매입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결국 전국적으로 일몰 시점이 다가오자 지자체마다 부랴부랴 부지 매입에 나섰다. 허나 뒤늦 게 매입에 나서려고 하니 지자체 처지에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었다. 사실상 모든 도시공원 무지를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민간특례사업은 지자체가 믿는 구석이었다. 민간특례사업은 민간 사업자가 공원 부지의 70%를 공원부지로 조성하는 대신 30%이내에서 공동주택과 상업시설 등을 지어서 개발이익을 내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창원시 또한 2018년 일몰 시점을 불과 몇 년 앞두고 대상공원에 이 사업을 도입했다. 도시 난개발을 막고 ‘허파’를 지켜내기 위한 차선책이었다. 하지만 당시 창원시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9.6%로, 공급 과잉 상태였다. 도시공원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진행된 사업이 실제로는 민간 개발 수단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창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주시는 공원 매입을 뒤로 미루다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렀다. 전북의소리 8월1일자 보도를 보면 전주시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지방채 2706억 원을 들여 장기 미집행 공원 부지를 매입했다. 매입한 공원 면적은 전체 사유지의 14%에 불과했다. 결국 지방채로도 감당이 안 되자 전주시도 민간특례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덕진공원이 그 대상이다. 덕진공원 사업자는 법적 허용 한계에 가까운 29.9%에 아파트 등을 짓겠다고 제안한 상황이다. 이른바 ‘29.9% 아파트’다. 이 역시 난개발을 방지한다는 명분과 달리 민간이 과도한 개발 이익을 챙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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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트리를 계기로 민간특례사업의 ‘공공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드러났다. 지자체로서는 현실적으로 공원부지를 다 지켜낼 수 없어서 민간특례사업을 차선책으로 도입한다면, 그 제도 안에서의 공공성은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창원시는 도시의 허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개발을 허용했으면서도 정작 본질적 공공성은 지켜내지 못한 모양새다. 민간사업자만 본래 개발할 수 없는 땅을 개발해서 이득을 보는 격이 돼서는 안 된다. 대상공원의 87.3%는 온전히 시민 모두의 것이다. 이 시민의 공원을 조성할 때 시민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를 공개했는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화 구조를 갖췄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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