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로고를 바라보는 시민. ⓒ연합뉴스 
▲유튜브 로고를 바라보는 시민. ⓒ연합뉴스 

대선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선출되었고, 국민의힘 최종후보도 곧 가려질 예정이다. 저마다 공약 선점을 위한 공방이 치열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언론정책과 미디어에 대한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독보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AI뿐이다. 이재명 후보는 ‘AI 기본사회’를 1호 공약으로 내놓았다. AI산업 육성을 위해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며, 규제 완화와 특례 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국민의힘도 경쟁적으로 AI 진흥책을 내놓고 있다. 한동훈 경선 후보는 ‘받고 따블’로 AI 육성에 200조 원 투자를 약속했고, 안철수와 이준석은 ‘AI 기술 패권 시대’를 주제로 공개대담을 열었다.

그런데… 없다.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의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시민 인권을 보호하고 디지털 윤리를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일절 없다. 신기술은 ‘노다지’가 아니다. 빅테크 기업의 유해성과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 없이 골리앗에게 여의봉을 쥐어주는 정부라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패자는 이용자 시민이 될 것이다.

한국은 소셜미디어로 인한 폐해가 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한 곳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뉴스리포트 2023 한국>에 따르면, 응답자의 53%는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데 이것은 46개 조사대상국 평균(30%)보다 23%p나 높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유사성향의 정보만 선택적으로 접하면서, 근거 없는 음모론과 허위정보를 증폭하는 에코챔버와 확증편향이 병적으로 강화되었다.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허위정보, 특정 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혐오콘텐츠, 여성과 장애인, 이주민을 비하하고 농락하는 인권유린 콘텐츠가 판을 친다. 12·3 계엄과 서부지법 폭동을 찬양하고 선동하는 극우파의 담론 기지가 된 것도 유튜브와 온라인플랫폼이다.

[관련 기사 : ‘유튜브로 뉴스 본다’ 세계 1위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보수·극우 유튜버들. 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Getty Images Bank, 그래픽=미디어오늘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보수·극우 유튜버들. 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Getty Images Bank, 그래픽=미디어오늘

내란종식은 대통령만 바꾼다고 보장되지 않는다. 내란과 폭력세력의 사령탑이 된 디지털 공간을 안전하고 투명하게 전환하려는 국가정책 없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수 없다. 유럽연합이 2023년 8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은 이용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혁신이 필요한지 시사한다. 고작해야 ‘정부 규제냐, 자율규제냐?’를 놓고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논쟁을 훨씬 뛰어넘는, 혁신적 통합적 해법이다.

우선 주목할 것은, DSA는 온라인플랫폼의 자율규제를 기본으로 하되, 자율규제의 기준과 항목을 사업자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과하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시 사업 유지가 위태로울 정도의 과징금(전년도 전세계 매출액의 6%까지)을 물린다는 점이다. 정부가 직접규제 하려 들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될 수 있고, 기업의 자율규제에만 맡기는 건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한 제3의 방법이다.

둘째로 DSA는 사후조치보다는 사전예방과 신속한 차단에 중점을 둔다. 21대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논의될 때, 허위정보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과 함께 제기된 문제점은 시민이 입는 피해를 구제하는 데 실효성이 있겠냐는 회의론이었다. 복잡한 절차와 오랜 시일이 걸리는 피해구제 방식으론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허위정보와 혐오차별, 폭력선동 콘텐츠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 DSA는 대규모 사업자의 경우 불법정보를 자체적으로 선별하고 발견 즉시 삭제 또는 접속을 차단하도록 규율한다. 해마다 자체적인 위험성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는 의무도 추가된다.

셋째, 한국에선 콘텐츠 형식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 신문법 등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데 비해, DSA는 ‘디지털 전송방식’으로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미디어에 통합적으로 적용된다. 다양한 매체가 융합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사각지대를 없애고 일관성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알고리즘의 폐해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다. DSA 시행에 따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은 추천 알고리즘을 끌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고 스냅챗은 청소년 대상 타겟 광고를 전면 중단했다.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바이러스에 대해 한국은 백신이 없다. 안전을 위협하고 적대를 키우는 디지털 공간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 지금부터 대선 후보들에게 반복해서 질문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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