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미국에서 벌어진 ‘표현의 자유’ 시위 현장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 2017년 미국에서 벌어진 ‘표현의 자유’ 시위 현장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저는 물론, 규제에 반대합니다.” 얼마 전, 가짜뉴스에 관한 한 토론회에서 진보논객으로 알려진 패널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신과 같은 진보 리버럴이 규제에 반대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면 법적 규제 반대가 기본이고, 미디어 기업의 ‘자율규제’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선 일종의 ‘표준화된 정답 노트’처럼 통용된다. 매우 이례적인, 한국적 현상이다.

표현의 자유를 다룰 때 고전처럼 등장하는 메타포는 “의견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란 문구이다. 고전경제학의 자유시장 원리에 빗대어,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진실된 의견이 토론과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출될 것’이란 가정이다. 존 밀턴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 철학에서 유래되어 미국 헌법의 기초자인 토머스 제퍼슨으로 이어진 사상이다. 시장경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듯, 자연스러운 선별과정이 작동할 테니 다소 오류가 있더라도 관용하고 기다려야 하며, 일체의 간섭은 의견시장의 질서를 유린하고 왜곡한다는 관점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런 인식을 명문화한 기념비적 정점은 미국의 수정헌법 1조이다. 수정헌법 1조는 종교, 집회, 청원의 자유와 더불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기본권 가운데서도 ‘우월적 지위’를 지니는 시민권이란 인식은 수정헌법 1조가 비준된 1791년 이후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은 2025년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까지 끈질기게 이어진다.

▲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사진=flickr
▲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사진=flickr

그런데 시대적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234년 전의 조문을 기계적으로 신봉하는 근본주의적 방식으론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지 못한다. 정치경제학자이며 언론학자인 로버트 맥체스니는 수정헌법 1조가 미디어 자본의 무한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미국의 공영미디어가 쇠퇴하고 권언유착과 미디어독점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수정헌법 1조가 제정되던 당시에는 언론이 상업적 비즈니스로 인식되기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제4부’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표현의 자유 제한 금지는 시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미디어산업의 성장과 함께 표현의 자유를 명분 삼아 탈규제와 무한팽창의 이익을 전유한 것은 미디어 빅테크 기업이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현실에서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을 붕괴시킨다. 평등하지 않은 ‘의견 시장’에서 평등하지 못한 시민이 평등한 발언의 권리를 누리게 하려면 적절한 규율과 지원이 필요하다. 대규모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이 함부로 언론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정치권력이 언론 보도의 방향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소외된 계층이 미디어를 통한 발언권과 감시권을 잃지 않도록, 때론 지원하고 때론 규제하는 게 평등한 표현의 자유에 한발 다가서는 방법이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더욱 심각해진 문제는 불법정보, 허위정보, 혐오와 폭력과 차별의 악성정보가 급속도로 퍼지는데, 정부 규제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미디어산업 육성에 더 치중한 탓이다. 스탠포드 법대 헌법센터의 모건 와일랜드는 ‘수정헌법 메타포: 의견 시장의 죽음’이란 논문에서 오늘날 정보생태계는 허위정보와 탈진실이 판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표현의 자유를 대체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 의사당 습격을 선동한 트럼프, 서부지법 폭동을 옹호한 윤석열,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한 유튜버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받아야 하는가?

▲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월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월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러한데 언론계 스스로의 자정노력에 맡기라는 자율규제론은 과도하게 낭만적이고 결과적으로 친시장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위헌이니 기업이 알아서 예방에 주력하도록 하자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자율규제로 해결되지 못하니 법적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자의적 규제의 위험을 피하려면 민관협력적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국가 규제를 무조건 악마화해선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삼으면서 규제를 배격하는 논리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은 우리가 항상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양대 가치이다.

이진순 성공회대 겸임교수의 기사 잘 읽으셨나요?
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