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단보도 교통사고가 급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상의 횡단보도를 싹 없애고 지하화하면 문제는 해결될까? 그러면 차량과 사람이 부딪힐 일도 없고, 교통체증도 완화되니 일거양득일까? 보행자를 차량 흐름의 방해물로 여긴다면 이런 황당한 대안도 답이 될 수 있다. 누구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기조는 완전히 달라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내내 골칫덩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5인 합의제 체제로 발족된 방통위는 윤석열이 임명한 2인 체제, 심지어 1인 체제의 기형적 형태로 운영되었고 윤석열의 ‘입틀막’ 방송장악과 비판언론에 대한 보복에 몰두해 언론사 압수수색과 억지 징계를 밥 먹듯 남발했다. 방송 통신에 대한 독립적 관리 감독 역할을 저버린 이동관, 김홍일, 이진숙 위원장에 대해 차례로 국회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일상적 기능은 마비되었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니,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 대신 독임제 부처로 ‘정보미디어부’를 둬서 아예 행정부로 귀속시키면 이 문제는 해결될까? ‘정책결정과정의 정치과잉’을 해소하기 위해서 차라리 대통령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행정부서로 만들면 이렇게 아웅다웅 다툴 일은 없어지니까?

이런 주장을 지난달 15일 미디어 3학회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가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위한 합의안이라고 공개 제안하고, 일부 언론은 이를 ‘대다수 언론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것이 3학회에 속한 ‘대다수 언론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 맞는가? 합의제 방통위가 독임제처럼 운영된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아예 독임제 행정부서로 재편하면 방통위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미디어 3학회 안의 핵심은 첫째 산업진흥, 둘째 규제완화, 셋째 공·민영 분리 관리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거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던 안보다 더 친시장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첫째, 미디어 3학회안은 ‘미디어정책의 과잉 정치화를 극복하고 산업·기술 정책 중심으로 접근’하며 미디어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로 분산된 방송통신 정책기능을 하나로 통합해 산업진흥을 힘있게 추진하도록 통합독임제 부처(가칭 정보미디어부)를 신설하자고 제안한다. 부처별로 분산된 방송통신정책을 통합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방송통신, 특히 보도·시사의 역할을 단순한 시장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
합의제로 운영되어야 하는 방통위가 대통령의 방송장악 첨병 노릇을 했다면, 정보통신의 이용자인 국민을 비롯해서 더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숙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합의제 규정을 강화하는 게 기본이다. ‘대통령 소속’의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위상의 모호함을 아예 국가인권위원회나 선거관리위원회처럼 ‘대통령 소속이 아닌’ 독립적 행정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미디어는 돈 벌어먹는 산업이기 이전에, 국민의 알 권리와 공론장을 형성하는 공공적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둘째, 미디어 3학회안은 ‘방송의 공적 책무를 강조하는 규제 패러다임’이 문제라며 ‘과도한 진입규제 및 소유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주장을 다시 보는 듯하다. 국내 미디어산업이 위축된다는 이유로 자본의 진입규제를 완화한다면 돈 안 되는 언론 장사에 뛰어들 것은, 언론을 통해 비언론적 이익을 보장받으려는 토건자본이나 투기금융자본이 될 것이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대자본과 손잡은 극우세력이나 이미 독과점을 이루고 있는 통신사도 반색을 할 것이다.
이미 지난 10여년 간 서울신문, YTN, 전자신문 등 다수의 언론사가 호반건설, 유진그룹 등 토건, 건자재, 금융자본 소유로 넘어갔다. 언론을 자본의 홍보 지라시로 만드는 게 바람직한 미래인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기 위해 2022년 제정된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 사례나, 자국의 문화보호를 위해 글로벌 소셜미디어나 넷플릭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통합적 관리기구로 2022년 출범한 프랑스의 아르콤(ARCOM) 사례를 보라. 국내·외 기업에 대한 형평을 맞추기 위해 아예 규제의 사각지대, 진공지대를 넓히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이용자 보호와 미디어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규제 신설이 시대적 추세다. 3학회 안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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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미디어 3학회는 ‘공적영역과 시장영역을 분리’해서 독임제 정보미디어부 산하에 합의제 공영미디어위원회(가칭)를 두자고 제안한다. 대통령 산하의 방통위보다 더 종속적인 행정부 산하 위원회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나마 윤석열 정부 출범시 국민의힘이 주장한 ‘독임제 부처+합의제 공영미디어위원회’안에서는 공영미디어위원회가 지상파와 종편 등을 관리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3학회안에서는 아예 KBS, EBS 등을 제외하고 종편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 모두가 공영미디어위원회 관할권 밖에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보다 더 오른쪽 끝으로 간 안을 새 정부에 건의하는 게 시대정신에 부합하는가?
시장중심적 규제완화와 공·민영 분리관리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내란선동 허위정보로 파괴된 공론장, 차별과 혐오가 돈벌이 수단이 된 미디어 현실을 타개하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미디어 생태계를 만드는 데, 3학회 안은 도대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횡단보도 교통사고에 대처하려면 보행자 안전과 편의를 위해 횡단보도 교통법규를 강화하는 게 답이다. 빈약한 합의제를 명실상부한 합의제로, 국내기업과 글로벌기업에 대해 형평성 있는 규제강화로,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독립성 보장으로 가는 게 순리다. 평소 존경받고 신뢰받는 언론전문가들께서 3학회 안에 합의했다는 게 가짜뉴스가 아니라면,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책임성 있는 입장을 개진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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