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특정 종목의 주가를 띄우기 위한 기사를 써서 개미투자자들을 끌어들여 가격이 오르면 되파는 수법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전직 경제지 기자가 지난 21일 구속 송치되었다. 이런 비리가 단발성이 아니고 2017년 이후 올해까지 9년째 이어졌으며, 무려 1058개 종목에 걸쳐 111억 8000만 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혐의이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와 유사한 수법으로 수사 대상이 된 언론인과 그 지인이 20여 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2015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제정으로 촌지 문화가 수그러드는가 싶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고도화된 조직적 범죄가 창궐하고 있었던 셈이다. 기자들이 주식시장에서 부당이득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미리 사들인 후 호재성 기사를 써서 주가를 띄운 뒤 매도하는 이른바 ‘선행매매’ 수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업 측이 제공한 보도자료를 검증 없이 기사화해서 주가폭등에 기여한 대가로 수천만 원대의 뇌물을 챙기는 방법이다. 양쪽 모두 자본시장법 187조의 ‘부정한 수단이나 계획, 기교’에 해당한다. 중대한 실정법 위반이자 언론윤리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송수진 KBS 기자가 언론인의 선행매매 의혹을 처음 보도한 것이 7월4일이다. 그 이후 11월 21일 비리 기자의 구속 송치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 이 문제를 보도한 언론사는 KBS와 미디어오늘을 제외하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주가조작 비리에 연루된 언론사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자사의 관리부실을 시인하고 사과하며 재발방지책을 내놓는 언론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비리 언론인들이 수백억을 버는 동안, 개미투자자들은 이들의 기사를 믿고 투자를 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약속이나 한 듯 모르쇠로 일관하는 언론사들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침묵의 언론 카르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건희 특검이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삼부토건 주가조작 작전세력과 결탁한 기자들이 13개사 19명에 달하는데, 특히 머니투데이, 파이낸셜뉴스, 이투데이, 뉴스핌 4개 언론사는 삼부토건 주가를 띄우기 위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받아 3일 연속 내보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해당 언론사들은 그 어떤 해명이나 공개사과를 내놓은 바 없고, 이를 날카롭게 지적해야 할 다른 언론사들조차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고 공론화해야 할 언론의 사명을 망각하고, 동업자 감싸기에 급급해 최소한의 언론계 자정 노력마저 저버린 꼴이다.
지난 10월 20일 국정감사에서 이번 언론계 비리에 대해 질의한 한창민 의원(사회민주당)은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나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세계 유수 언론의 사례를 들어, 언론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담당하는 기업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게 하고, 가족이나 배우자가 관련된 기업에 관한 보도 권한을 제한하는 등 강력한 ‘이해충돌 방지’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언론계의 윤리의식은 시대변화와 시민들의 요구수준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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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이영희 공저의 <언론윤리를 바라보는 세 시각의 부조화>란 논문(2024)은, 언론인과 수용자 간에 언론윤리에 대한 인식에서 큰 격차가 있음을 지적한다. 수용자들은 언론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반면, 언론종사자들은 ‘언론윤리를 강제하는 외적 압력’을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윤리강령 1조가 ‘보도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데 비해, 한국의 신문윤리강령 1조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는 것도 우리 언론계의 특징을 반영한다.
언론의 자유는 소중하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의 특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의 공공적 책무’를 위한 것이다. 언론계가 선언적인 자율규제만을 이상화하고 내부의 권력형 비리 척결을 회피한다면, 언론자유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그러니, 언론사들은 지금이라도 철저한 내부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 그래야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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