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내 주차된 쿠팡 배송 트럭. ⓒ연합뉴스
▲ 서울 시내 주차된 쿠팡 배송 트럭. ⓒ연합뉴스

쿠팡의 새벽 배송과 야간 노동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우리사회가 그야말로 프레임 전쟁을 통해서 돌아가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첨병에 언론이 스스로 플레이어로 등장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언론은 결코 객관적 관찰자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무엇보다 플레이어로 등장해서 판을 이끄는 언론이 제시하는 프레임이란 게 개별 사안의 구체성에 따라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똑같은 논리로 계속해서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이 논쟁은 굳이 기사들을 자세히 검색하지 않아도 노동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윤리적 프레임과 노동자의 구직 혹은 취업 권리를 생각하는 프레임의 대립일 것이라는 걸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에 더해 부수적으로 소비자의 권리 정도가 곁들여지게 된다. 

이를 상위 프레임과 연결지어 보면 전자가 ‘이상론’이고 후자가 ‘현실론’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프레임 구도에서는 현실을 모르고 이상만 이야기하는 것을 비판하는 방식의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큰 틀에선 이상론을 지향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현실론을 따져 보는 것이 합리적이란 일반론이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프레이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안은 프레임이 이러한 구도로 짜이는 순간부터, 정확히 말해 언론이 이러한 프레임 구도를 짜는 순간부터 이 사안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언론이 정한 프레임 구도로밖에 접할 수 없으므로-개인의 가치지향이나 취향과 상관없이 ‘현실론’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셈이다. 마치 수학에서의 함수처럼 말이다. 

실제 전직 대통령인 윤석열은 딱 이러한 프레임 구도 속에서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이라도 그 음식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들에겐 제공을 해야 한다며, 그것이 대단히 윤리적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머릿속에선 유통기한이란 것이 이상론이고, 가난과 배고픔이 현실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확신에 찬 말투를 떠올려 보면 모르긴 해도 민주주의가 이상론이고 계엄이 현실론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구도로 논쟁이 지속되면 이 사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강’ 문제는 완전히 소외된다. 사실 쿠팡 배달 노동자의 사고와 사망은 새벽 배송과 야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 악화에 있다. 다른 분야에서 이런 이유로 야간 노동의 경우 교대 근무를 하거나, 일정 기간에 한정해서 이미 운영을 하고 있다. 너무나 흔해서 모두가 아는 이러한 사실이 프레임으로 설정되지 못하게 되면 세상에 없는 일 취급을 받게 된다.  

▲ 11월1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쿠팡이 답하라! 노동자 잡는 야간노동, 무한속도 새벽 배송’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11월1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쿠팡이 답하라! 노동자 잡는 야간노동, 무한속도 새벽 배송’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이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은 ‘건강’을 핵심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프레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의 건강 악화는 단순히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도 프레이밍 했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건강 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없는지, 개인 부담률은 높아지지 않는지 말이다. 다른 사안엔 너무나 상투적으로 하는 연결 프레이밍 아닌가? 

동시에 ‘인권’이란 프레임이 다른 연결 프레임 없이 빈약한 상태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언론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피해 노동자의 사연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건강’과 ‘가족’ 같은 우리사회에서 거의 최상위급에 속하는 매우 강력한 프레임들이 존재하고, 쿠팡 노동자 이슈의 바로 옆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 프레임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음을 때리는 구체적 사연이라도 정확한 언어로 프레이밍이 되어야만 힘을 갖는다. 그렇지 못하면 의도와 상관없이 기존 프레임 구도를 유지시키는 배역을 맡게 된다.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왜곡된 프레임 구도-의 기울기에 일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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