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자 불법 추방, 인종 차별, 낙태 금지! 우리 삶을 ‘불법’으로 만든 너희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비폭력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의 혁명은 무력으로 완성되니까! 1960년대 이후 궐기한 미국 급진 무장단체의 명맥을 잇는 조직, 프렌치75의 도발이 끊이지 않고 미국 사회를 뒤흔든다. 그러나 어디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볼 백인 주류 사회인가. 정치사회적 탄압에 급진적으로 맞서며 아성을 떨쳤던 흑인 인권 집단 ‘블랙팬서당’을 조직적으로 파괴한 역사가 그러했듯, 권력을 쥔 백인 중년 남성들의 모임은 이번에도 은밀하고도 확고한 계획을 세운다. ‘우월한’ 존재로서 건전한 미국 사회를 지킬 의무가 있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 사회 소요 세력을 제거하기로.
세계 주류 영화제 참석을 과감히 건너뛰고 지난달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극장 개봉하며 대중적 흥행을 노리는 폴 토머스 앤더슨(PTA) 감독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야기다. 이 작품의 테마는 ‘혁명과 주류의 전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전쟁에 부녀 사이인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라는 지극히 사적이고도 긴밀한 가족관계를 끼워 넣으며 관객의 관심을 산다는 거다. 아버지 ‘밥’은 십수 년 전 프렌치75에서 폭탄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이제는 자신을 추적하는 정보기관을 피해 딸 ‘윌라’를 무사히 키우는 게 목표의 전부인 약에 찌든 빈민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져버린다. 예고도 없이 자신과 딸을 표적 삼은 정부 군대가 출동한 것!
정치적으로 격돌하는 무장 단체와 주류 기득권의 ‘끝없는 전쟁’(one battle after another)이 무겁지 않게 묘사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이야기가 사랑, 우정, 가족애 등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감정의 테두리 안에서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삶이 그러하듯 때때로 겪게 되는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순간까지도 정교하게 묘사한다. 위기 상황을 파악한 ‘밥’은 딸 ‘윌라’가 한발 앞서 피신한 집결지를 찾으려 하지만, 이제는 다 잊어버린 조직의 암호를 대라며 원칙만을 고수하는 젊은 투쟁세대 앞에서 몇 번이고 쩔쩔맨다. 아, 왕년의 혁명가는 어디로 갔는가! 그런 자신에게 갓난 딸을 안기고 자취를 감춘 동지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는 또 얼마나 야속한가.
관련기사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다루는 이야기가 보다 다층적인 재미를 확보하는 건 ‘밥’과 ‘윌라’ 부녀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군인 ‘스티븐 록조’(숀 펜)의 활약 덕일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부녀와 긴밀하게 얽혀 있는 백인 남성 ‘스티븐 록조’는 몸매, 말투, 표정 등 모든 측면에서 지나쳐 보일 정도로 강인함을 뽐내려 하는데, 감독의 의도는 명료하다. 그렇게 꾸며진 외면 안에 숨겨진 찌질한 취향과 나약함을 본의 아니게 들켜버리고 마는 장면을 여러 차례 구축해 관객으로부터 기어코 낄낄대는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 의중을 완벽히 이해하고 배역에 혼연일체 된 숀 펜의 연기는 내년 초 연달아 열릴 예정인 미국 배우조합상, 골든글로브시상식, 아카데미시상식에서의 수상을 강력하게 점쳐보게 할 정도로 적확하고 예리하다.
이 영화의 정말 재미있는 점은 연출을 맡은 PTA 감독이 대중적 흥행보다 작가주의적인 세계관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비주류(?) 영화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의 최고 흥행 기록은 대표작 ‘데어 윌 비 블러드’(2008)로 거둔 7600만 달러(한화 약 1070억 원)인데, 당시 제작비는 2500만 달러(한화 약 350억 원)였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제작비는 할리우드 대형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의 라인업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큰 규모인 1억 3000만 달러(한화 약 1800억 원)다. 감독은 자신의 첫 블록버스터이자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무려 다섯 배 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에서, 할리우드의 진부한 흥행 공식 따위는 괘념치 않고 배짱 두둑하게 ‘혁명과 주류의 대결’이라는 비주류(?) 주제를 다룬 셈이다. 심지어 혁명은 노쇠하고 주류는 영 찌질하게 그렸으니, 과연 그 싸움은 어떻게 끝맺을까. 2시간 42분에 달하는 이 장대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목도한 관객이라면 아마 그 결론이야말로 가장 혁명적인 마무리라고 평가할 지도 모르겠다.
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