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네가 너무 부러워. 네 피를 들이마시고 싶을 정도야.” 일생일대의 대형 가부키 무대 데뷔를 앞둔 ‘키쿠오’(요시자와 료)가 극도의 긴장으로 몸을 벌벌 떨며 말한다. 오랜 시간 함께 연습해 온 친구이자 경쟁자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는 자신은 얻지 못한 기회 앞에 선 그를 조금은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지만, 그 마음을 짐짓 숨긴 채 솔직하게 독려한다. “넌 재능이 있잖아.”핏줄로 상징되는 ‘가문’의 힘이냐, 그걸 넘어설 압도적인 ‘재능’의 힘이냐. 일본전통 문화의 상징이자 고급 예술의 정수와도 같은 가부키를 소재
“낙수야, 우리 둘이 이 회사에 20년 넘도록 붙어 있었다. 이 정도 붙어 있었으면은, 기본적으로 우리 좋아하는 사람 없다고 봐야 돼. 위에서는 ‘저 새끼 왜 안 그만두나’ 싫어하고, 밑에서는 ‘저 새끼 왜 안 잘리나’ 싫어하고. (…) 정말 시간이 없어. 이제 바뀌어야 돼.”대기업에 다니는 김낙수 부장(류승룡) 인생은 요즘 수모의 연속이다. 가방끈도 짧고 나이도 어린 도진우 부장(이신기)이 자신과 함께 임원 경쟁을 하는 상황도 영 못마땅한데, 영업부서 관리자로서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치명적인 사업 실수로 상사 백정태 상무(유승목)
이민자 불법 추방, 인종 차별, 낙태 금지! 우리 삶을 ‘불법’으로 만든 너희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비폭력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의 혁명은 무력으로 완성되니까! 1960년대 이후 궐기한 미국 급진 무장단체의 명맥을 잇는 조직, 프렌치75의 도발이 끊이지 않고 미국 사회를 뒤흔든다. 그러나 어디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볼 백인 주류 사회인가. 정치사회적 탄압에 급진적으로 맞서며 아성을 떨쳤던 흑인 인권 집단 ‘블랙팬서당’을 조직적으로 파괴한 역사가 그러했듯, 권력을 쥔 백인 중년 남성들의 모임은 이번에도 은밀하고도 확고한 계획을
※주의: ‘어쩔수가없다’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해고라니. 25년 다닌 직장에서 잘리다니? 회사를 인수한 외국계 자본이 구조조정을 감행할 거란 건 예상했지만, 그 목록에 자기 이름부터 오를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용감한 고백으로 흠모하던 여인과 결혼했고, 운 좋게도 그 사이에서 아들과 딸 두 자식을 뒀고, 대출은 조금 꼈지만 꿈에 그리던 집까지 샀는데… “이제 다 이뤘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닥친 이 날벼락, ‘만수’(이병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결심한다. 어쩔 수가 없는 일들을.24일 개봉하는 박찬욱
※ 주의 : 영화 ‘살인자 리포트’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저는 11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입니다. 기자님께 단독 인터뷰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취재로 이름깨나 날렸지만 회사에서 팽 당할 위기에 놓인 기자 ‘백선주’(조여정)는 자신을 살인자라고 소개하는 ‘이영훈’(정성일)의 전화를 받고, 고민 끝에 그를 단독 인터뷰하기로 한다. 예약된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나타난 살인자는 지나치게 멀끔한 모습, 심지어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지난 만행이 담긴 영상을 건네는데…가까스로 냉정을 되찾은 ‘백선주’는 아래층에 잠복시킨 동료를 믿고, 밀
장례식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의금 봉투가 놓여있는 곳 앞에 서서 지갑 속 곱게 접힌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 넣는다. 그 다음엔 어디엔가 이름을 써야 하는 것 같은데… 책가방을 멘 학생 ‘창우’(유이하)의 어리숙한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맞은편 어른이 돕는 말을 건넨다. “봉투 뒷면 아래에 이름을 쓰면 돼요.” 고등학교 3학년, 너무 이른 나이에 부의 봉투에 제 이름 세 글자를 써넣게 된 주인공 ‘창우’는 그제야 영정사진 앞으로 간다. 그곳엔 특성화고 취업 이후 공장에서 만난 아는 형 얼굴이 있다. 얼마 전 구내식당에서 만난
올해 1월19일 새벽 3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결사반대한다며 모여든 강성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후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담장을 넘어 경내로 진입한 이들은 자신들을 저지하려는 경찰관을 폭행했고, 건물 외벽을 부수거나 유리창을 깨트렸다. 상황을 기록하던 당직실 CCTV 서버를 파손한 뒤 일부 세력은 판사실이 위치한 건물 7층까지 진입했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수호하기 위해 사법부를 물리력으로 점거하고 판사까지 위협하겠다는 이 비이성적인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서부지법 폭동’으로 명명됐다. 서부지법 폭동
지금 극장가엔 눈여겨 비교해볼 만한 영화 두 편이 있다. 한 달이 넘는 동안 박스오피스를 굳건히 지키며 예상 밖 흥행에 성공한 중저예산 공포영화 ‘노이즈’의 성공 사례가 있는가 하면, 슈퍼IP로 불리는 동명의 유명 웹소설을 영화화한 판타지 대작으로 기대를 모으고도 개봉 첫 주말(7/26~27)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아 든 ‘전지적 독자 시점’의 경우가 공존한다.‘노이즈’는 층간소음과 초자연적 공포를 한 데 엮은 흔치 않은 기획력이 힘을 발휘한 작품이다. 지독한 층간소음에 시달리던 여동생이 돌연 실종되자 청각 장애를 지닌 언니 ‘주영
반찬 가게 아주머니는 인적 없는 이른 새벽 가게 문을 연다. 40년 된 전파사를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출근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아침 밥상에 앉아 한 수저를 뜬다. 마네킹을 제작하는 아저씨는 마치 수행하듯 침묵 속에서 그 몸통을 칠하고, 갈고, 접붙인다. 쉼 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을 분류하는 여인의 팔동작은 무척 재빠르다. 세 아이의 아빠는 매 순간 흐르고 움직이는 염전의 바닷물 사이로 소금을 고르고, 두 아이의 엄마는 새끼들의 애교스러운 장난을 만류하며 바쁘게 행주를 빤다. 모든 일을 끝마친 밤, 그들은
한 주 간격으로 넷플릭스에서 1위에 오른 작품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오징어 게임3’은 모두 한국의 사회문화를 상징하는 소재와 주제의식을 다뤘다는 점에서 우리 관객의 눈길을 끈다.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케이팝 아이돌이 악령을 퇴치한다는 판타지 설정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는 지난 20일 공개 이후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명실상부 넷플릭스의 메가히트작으로 손꼽히는 한국형 생존스릴러 ‘오징어 게임3’ 역시 지난 27일 공개 즉시 시리즈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했
※ 주의 : 영화 ‘28년 후’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서로를 뜯어먹는 흉포한 좀비로 변모하고, 영국은 대종말 상황을 맞는다. 23년 전 세상에 등장해 당시 7400만 달러(한화 약 1020억)의 전 세계 흥행 기록을 쓴 ‘28일 후’(2002) 이야기다. 인간 군상의 폭력적인 일면을 들여다본 접근으로 준수한 비평적 성과까지 함께 거뒀던 대니 보일 감독과 알렉스 가랜드 각본가가 23년 만에 합심해 들고 돌아온 후속작이 19일 국내 개봉한 ‘28년 후’다.사건으로부터 28년 후, 유럽 국가는 초
‘갈 이유가 있는’ 영화관만을 찾아다닌 지 오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굳어진 습관이다. 좌석이 넓어 팔걸이를 공유할 필요 없고 의자 각도도 자유롭게 조절되는 ‘리클라이너관’,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초대형 스크린에 위아래 화면 삭제 없는 상영으로 감독 연출의도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IMAX관’, 고급화된 소규모 좌석에서 흔치 않은 예술영화를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게 하는 ‘부티크 스위트관’… 영화 보는 일이 돈과 시간을 쓰고도 교통체증과 주차전쟁 심지어는 옆사람의 ‘불쾌감 공격’까지 견뎌야 하는 매력 없는 일이 된 세상에
K-팝이나 K-콘텐츠처럼 한국의 세련된 문화를 의미하는 단어가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거라곤, 그땐 미처 상상할 수 없었다. 1950년대 이후 전쟁으로 부모를 여읜 숱한 아이들이 길거리를 떠돌았고 1980년대까지도 가난과 무책임으로 버려진 아이들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됐다. 어린 아이가 환대받지 못하는 지독하게 척박한 나라가 이곳 한국이었다.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대규모 시설이 갈 곳 잃은 아이들을 경쟁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건 알려진 사실이다. 근본적인 목적은 보육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양부모에게 친부모를 대신해 입양 보
이토록 세계 영화제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인도 독립영화가 또 있을까. 지난해 무려 30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돼 2등 상인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고, 전미비평가협회상을 포함해 각국 영화제 44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냈다. 인도 출신 40대 여성 감독 파얄 카파디아가 연출해 23일 국내 개봉하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이야기다. 인도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발리우드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다. 작품은 대도시 뭄바이에 사는 세 여인의 삶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데, 특유의 과
말도 안 돼.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옆에 마크 다시(콜린 퍼스)가 없다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물의 정석이자 연애 성장담의 대명사와도 같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를 애정해온 관객이라면, 16일 개봉하는 시리즈 마지막 작품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도입부에 눈앞이 깜깜해질 거다. 마크 다시가 죽었다니, 심지어 브리짓 존스와 낳은 두 아이까지 남기고!두 사람의 인연이 어떤 인연인가. 시리즈 첫 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에서 브리짓 존스는 비만에 골초인 데다가 애인까지 없는 서른두 살의 가망 없는 여자
“무장 경찰이다, 바닥에 엎드려!”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를 채 시작하기도 전인 아침 6시, 총구를 겨눈 채 무장한 경찰들이 집 문을 쳐부수고 들어와 소리친다. 테러 용의자라도 체포하려는 듯 맹렬하고 위압적으로 집을 뒤져대는 작전에 소스라치게 놀란 부모가 양손을 들고 벌벌 떨며 외친다. “위층에 애들이 있어요. 우리 뭐 한 거 없어요. 집을 잘못 찾으셨다고요!” 그러나 수색 영장을 내어 보이는 현장의 경위는 단단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 아들, 어디 있어요?”이제 막 13살인 아들이 순식간에 체포됐다. 제 방 침대에 누워 있다가 들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성당, 전 세계에서 찾아온 추기경들이 빼곡히 모여 앉아있다.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 ‘콘클라베’를 열기 위해서다. 국적도 가치관도 서로 다른 이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상태에서 자신들 과반의 지지를 얻는 교황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투표해야 한다. 그렇게 선출된 새 교황은 그 즉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며, 각지에서 발발하는 분쟁이나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동시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흥미로운 건 그
“나는 계엄군이었다”. 2021년 광주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나는 계엄군이었다’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파견된 최병문 씨의 실화가 담겨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그간 누구도 자신이 그 시절 계엄군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만큼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심층 인터뷰였다. 최 씨는 이 출연으로 무려 41년간 지킨 침묵을 깼다.그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화순 방향으로 향하던 버스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제11공수특전여단에 소속돼 있었다. 죄 없는 시민 십수 명이 영문도 모른 채 군인의 총에
※ 주의 : 영화 ‘히든 페이스’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하… 나 미친X같죠. 언니 없는 집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두 번씩이나…”맨몸을 드러낸 미주(박지현)는 전라로 침대에 누운 성진(송승헌) 위에 올라타 있다. 말과는 달리, 미주의 행동은 성진이 자신과 절친한 언니 수연(조여정)과 갓 결혼한 유부남이라는 것 따위에는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성진은 자신의 아내 수연이 한동안 실종된 상태라는 걱정마저도 완전히 잊은 듯 무아지경이다.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발가벗은 채로 누워 서로를 적극적으로 탐닉한다.2
“한심한 힐빌리 자식! 멀쩡한 치아도 없는 주제에”“약쟁이 XX년!”“우리 엄마 그렇게 부르지 마 이 새끼야!”믿을 수 있는가. 이 대사가 차례로 엄마, 아빠, 아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4년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힐빌리의 노래’(2020) 속 한 장면이 보여준 모습이다. 신의성실을 맹세한 부부와 피를 나눈 자식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영 거북하게 다가오는 이 대목은, 놀랍게도 실화에 기반해 연출됐다. 올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함께 뛰며 부통령 자리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