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스틸컷
▲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스틸컷

말도 안 돼.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옆에 마크 다시(콜린 퍼스)가 없다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물의 정석이자 연애 성장담의 대명사와도 같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를 애정해온 관객이라면, 16일 개봉하는 시리즈 마지막 작품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도입부에 눈앞이 깜깜해질 거다. 마크 다시가 죽었다니, 심지어 브리짓 존스와 낳은 두 아이까지 남기고!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떤 인연인가. 시리즈 첫 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에서 브리짓 존스는 비만에 골초인 데다가 애인까지 없는 서른두 살의 가망 없는 여자였고, 마크 다시는 거만한 태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엄마표 순록 스웨터를 입고 새해 파티에 참석한 센스 없는 이혼남이었다. 첫 만남에선 그런 서로를 향해 악담을 퍼부으며 헤어졌지만, 브리짓 존스의 감출 수 없는 ‘푼수미’와 마크 다시의 숨길 수 없는 ‘츤데레’가 오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서로를 끌어당기지 않았던가.

인연이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2004)으로 이어지는 동안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남자 다니엘(휴 그랜트)이 끊임없이 두 사람 사이를 흔들어 놓았고, 40대가 돼서 재회한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에서는 브리짓 존스 뱃속에 움튼 생명의 아버지 자리를 두고 마크 다시와 전도유망한 CEO 잭 퀀트(패트릭 뎀시)가 경쟁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지만, 두 사람은 이어질 듯 어긋나는 것만 같던 십수 년의 인연을 기어코 결혼으로 연결시키고 아이까지 낳았다. 이제야 백년해로할 일만 남은 줄 알았건만, 예상치 못한 순간 영원한 이별이라니.

▲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스틸컷
▲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스틸컷

신작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가 보여주는 건 그렇게 사별한 뒤 두 아이를 오롯이 맡게 된 50대 싱글맘의 삶이다. 브리짓 존스의 상징과도 같던 빨간 잠옷과 티파니 목걸이, 늘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나이 든 뒤에도 여전히 바람둥이 기질을 버리지 못한 답 없는 다니엘마저도 모두 그대로지만 남겨진 주인공의 하루만큼은 전과 같지 않다. 홀로 감당하는 육아는 단 5초의 혼자 있을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잘 나가던 뉴스 PD 시절 직장으로 복귀하는 건 그림의 떡! 겨우 시간을 짜내 저녁 모임이라도 나가보는 날에는 어김없이 ‘남편을 잃은 불쌍한 중년 싱글맘’을 향한 주변인의 애잔한 시선을 견뎌야 한다. 악의 없는, 그러나 영양가도 없는 조언에 그럭저럭 웃는 얼굴을 내어 보인 하루 끝에 남는 건 사무치는 외로움뿐이다.

물론, 이번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물의 대명사라는 명성을 완전히 저버리는 선택을 한 건 아니다. 연하남 ‘록스터’(레오 우달)와의 짜릿한 연애 이야기로 관객에게 일정 부분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만남은 오래가지 않는다.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도 이쯤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존재를 잃은 뒤 뻥 뚫려버린 마음을 타인의 얕은 온기로 대체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까닭이다. 때문에 브리짓 존스가 더는 만날 수 없는 마크 다시의 유품을 매만지며 그를 향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대목은 이 작품의 정서적 클라이맥스가 된다. ‘주디’(2020)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 정점에 오른 르네 젤위거의 표현력은 보는 이의 코끝을 찡하게 할 정도다.

▲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스틸컷
▲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스틸컷

그럼에도 브리짓 존스가 마음을 다잡게 되는 이유라면, 그렇게나 사랑했던 남편 마크 다시와의 시간을 가장 명백하게 증명하는 두 아이의 존재일 것이다. ‘다시 연애를 시작하라’며 자신을 북돋아 주던 주변인들의 말과 ‘더는 우울함에 잠식되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다짐이 연하남과의 짧은 열애로 이어진 동안, 어쩐지 말수가 적어진 것 같은 아이들의 변화를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다행히도, 그 어떤 수치스럽고 진땀 나는 상황에서도 난관을 꿋꿋하게 헤쳐 나가던 브리짓 존스 특유의 밝고 사랑스러운 면모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단단하게 닦아나가는 무기가 된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새 인연까지 선물 받는 건 물론이다.

영원의 짝을 잃었어도, 홀로 아이들을 책임져야 해도, 연애에 실패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번 작품이 앞선 1·2·3편보다 깊은 울림을 전하는 건 쓰라린 경험 끝에 주인공이 다다른 완숙한 감정의 경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을 이겨낸다는 건 ‘잊는 게 아니라 기억하며 잘 살아내는 것’이라는 막바지의 읊조림이 이 시리즈를 아껴온 관객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선언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아픔에도 다시 행복해지려는 그 노력이야말로, 더는 서로의 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브리짓 존스-마크 다시 커플을 떠나보내는 관객을 위한 가장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운 마무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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