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의 : 영화 ‘히든 페이스’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 나 미친X같죠. 언니 없는 집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두 번씩이나…”
맨몸을 드러낸 미주(박지현)는 전라로 침대에 누운 성진(송승헌) 위에 올라타 있다. 말과는 달리, 미주의 행동은 성진이 자신과 절친한 언니 수연(조여정)과 갓 결혼한 유부남이라는 것 따위에는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성진은 자신의 아내 수연이 한동안 실종된 상태라는 걱정마저도 완전히 잊은 듯 무아지경이다.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발가벗은 채로 누워 서로를 적극적으로 탐닉한다.
20일 개봉한 김대우 감독의 ‘히든 페이스’는 박지현과 송승헌의 두 차례 불륜 정사신이 담긴 ‘19금 영화’다. 근래 공개된 한국 영화 중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수위를 보여준 작품이 드물었던 만큼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불러모을 요인을 갖춘 건 분명하다.
다만 이미 영화 본 입장이라면, 정사신의 수위는 영화가 보여주려는 복합적인 욕망 전체 안에서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임을 안다. 작품 초반부의 야릇한 시퀀스가 휘몰아치듯 관객 정신을 앗아간 뒤, 보는 이의 입에서 ‘오?’ 소리를 튀어나오게 하는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3개월 전’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새겨지는 순간부터다.

사실 성진의 아내 수연은 실종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라졌다. 미주는 절친한 언니 수연의 증발을 도운 뒤 그의 남편인 성진에게 접근했다. 성진은 이 두 여인의 공모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은 과연 어떤 관계인가. 관객이 이 작품이 단순한 불륜치정극을 넘어 ‘위험한 욕망’을 다룰 것을 직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숨겨진 공간’까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점, 상상의 폭이 한층 확장되는 건 물론이다. 성진과 수연의 신혼집 벽면 뒤에 숨겨진 철제 문 뒤로 오래도록 감춰진 강고한 밀실이 존재한 것이다. 방안의 내밀한 사생활을 모두 지켜볼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관음적이고 괴기스러운 공간은 이야기 전개를 한층 파격적인 ‘복수’까지 끌고가는 훌륭한 동력이 된다.
본래 아내 수연은 자신에게 덜 헌신적인 남편의 애를 닳게 하려고 ‘홀연히 사라진 척’ 밀실에 잠시 들어가 있을 예정이었다. 심지어는 영상편지만 남긴 채 떠나버린 자신의 흔적을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남편의 얼굴을 몰래 지켜보며 광기에 가까운 쾌감까지 느낀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수연은 본의 아니게 그곳에 갇히고, 어쩐 일인지 미주는 자신이 갇혔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성진과 격정의 정사를 벌인다. 분노와 절규로 가득한 밀실의 수연, 불륜 후 아내의 실종이 길어질수록 불안해지는 성진, 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을 타는 미주의 입장이 크고 작은 상황을 거치며 하나의 맥락으로 구성되는 순간, 관객은 짜임새 있게 구축된 각자의 입장과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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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영화가 그저 ‘야하기만 한’ 작품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묵직한 뒷맛까지 남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히든페이스’는 상대를 향한 욕망, 배신, 복수, 그럼에도 끝내 그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무모함과 비굴함, 심지어는 ‘복종’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법한 누군가의 최종적인 선택까지 매끄럽게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성인물을 표방한 ‘관계 심리 스릴러’로 의미 있게 평가할 만하다.
극 중 등장하는 성소수자 코드를 정치적 올바름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욕망의 틀 안에서 구현했다는 점 역시 도발적이고 신선한데, ‘음란서생’(2006), ‘방자전’(2010), ‘인간중독’(2014)까지 성인을 타깃으로 한 영화를 연출하며 다채로운 감각을 벼려온 김 감독의 역량이 빛을 발한 결과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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