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일과 날’ 스틸컷
▲ 영화 ‘일과 날’ 스틸컷

반찬 가게 아주머니는 인적 없는 이른 새벽 가게 문을 연다. 40년 된 전파사를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출근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아침 밥상에 앉아 한 수저를 뜬다. 마네킹을 제작하는 아저씨는 마치 수행하듯 침묵 속에서 그 몸통을 칠하고, 갈고, 접붙인다. 쉼 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을 분류하는 여인의 팔동작은 무척 재빠르다. 세 아이의 아빠는 매 순간 흐르고 움직이는 염전의 바닷물 사이로 소금을 고르고, 두 아이의 엄마는 새끼들의 애교스러운 장난을 만류하며 바쁘게 행주를 빤다. 모든 일을 끝마친 밤, 그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뉴스를 듣다가 불을 끄고 잠든다. 평범한 우리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7월16일 개봉하는 박민수, 안건형 감독의 다큐멘터리 ‘일과 날’이 비추는 세계는 정직하고 간명하다. 제목 그대로 ‘노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오늘’을 지켜보는 게 주 내용이다. 특정한 주인공을 위주로 전개되는 서사도 없고,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의도된 연출도 없다. 슴슴한 시선이 가 닿는 곳은 여러 주인공의 일터 그 자체다. 반찬가게, 전파사, 마네킹 공장, 재활용장, 염전, 육아 중인 가정을 차례로 비춘 카메라는 프리랜서 PD가 촬영하는 현장, 청년이 일하는 양조장, 젊은 여인이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학원까지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의 반복적인 ‘일하는 하루’가 그렇게 스크린 위로 켜켜이 더해진다. 

▲ 영화 ‘일과 날’ 포스터
▲ 영화 ‘일과 날’ 포스터

‘일과 날’은 그들이 일하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다. 아마 묻는다고 해도 대부분의 답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사고 몸 누일 곳을 마련해야 비로소 제 인생 하나 건사할 수 있다. 양육해야 할 아이나 봉양해야 할 부모가 있다면 책임져야 할 몫은 배로 늘어난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삶은 버거운 숙제가 되고 일은 무거운 의무가 된다. 그러니 ‘숙제와 의무로 점철된 엇비슷한 삶’으로 답이 모이는 닫힌 질문을 구태여 던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과 날’은 대신 그들의 일하는 하루를 지긋이 관찰하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이틀, 사흘, 나흘이 누적되는 동안 어디에선가 스며 나오는 각자의 고유한 감정이나 고민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단가가 너무 싼 수입 마네킹과 경쟁하기 위해 직원이 쉬는 휴일에도 혼자 일하기를 택한 사장은 종종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폐플라스틱을 골라내느라 한시도 쉬지 못하는 여인은 주어진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삶에 가끔 화가 난다. 40년간 한 자리에서 전자제품을 고친 할아버지는 이제 오직 자신만이 남아버린 동네를 바라보며 모두가 혼자 사는 세상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그 장면들은 각자 삶이 지나온 길목과 궤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 영화 ‘일과 날’ 스틸컷
▲ 영화 ‘일과 날’ 스틸컷

저마다의 삶이 지닌 구체성 앞에서 관객은 그 인생이 한 두 마디로 정의 내려질 수 없는 고유한 의미를 지닌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고 먹고사는 행위를 넘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느냐’는 삶에 대한 입장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는 까닭이다. 해외의 값싼 노동력이나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AI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를, 그들 역시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삶이 일순간에 멈추거나 폐기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알고 있다. 때문에 ‘시련이 찾아온다 해도 이겨낼 용기를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한 출연자의 막바지 고백은 진실하게 다가온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부단히 일하며 건실히 살아낼 방법을 고민하려는 입장을 지키는 한 그 삶의 의미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의미가 있는 한, 그것은 언제고 귀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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