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SBS 정치쇼 영상 갈무리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SBS 정치쇼 영상 갈무리

헌법재판소장 권행 대행 시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임명 권력보다 선출 권력이 우선한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해 “헌법을 읽어보라”고 밝혀 주목된다. 문 전 재판관은 사법부에 대해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에 따라 만든 기관이라고 언급해 사실상 이 대통령의 선출 권력 우선론에 이견을 제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헌법은 명시적으로 선출 권력과 입법권력의 서열을 두고 있지 않지만 사법부 등에 대한 임명권은 선출권력에, 사법권은 법원에 부여하고 있다.

문형배 전 재판관은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최근 ‘선출 권력과 임명된 권력이 어느 게 우위냐’라는 논쟁이 나온다는 김태현 진행자 질의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대한민국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 이게 제 대답”이라고 밝혔다. 문 전 재판관은 “우리 논의의 출발점은 헌법이어야 한다”라며 “헌법 몇 조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치시면 논의가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문 전 재판관은 최근 강연에서 ‘사법부 권한에 대한 존중이나 관용 없는 개혁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한 이유를 묻자 “분명히 말씀드리겠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헌법에 따라 만든 기관”이라고 규정한 뒤 “당연히 사법부의 판결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사법부의 권한은 헌법에서 주어진 권한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그 판결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을 때는 제도개선을 할 수 있고, 법원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라며 “제도개선의 문제도 있고, 설명도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라고 설명했다. 문 전 재판관은 한마디로 재판은 독립되어 있어야 되고, 판결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게 판사로서의 고민 결과라고 말했다.

사법개혁 논의에서도 문 전 재판관은 “사법개혁의 역사에서 사법부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법부도 개혁 논의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 서열론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으로부터 2차적으로 권한을 다시 나눠 받은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국민 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최근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 등 여권이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에 총공세를 벌이는 것과 맞물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헌법에는 명시적으로 서열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 말처럼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와 국회의원(제41조 제1항)과 대통령(제67조 제1항)을 선거로 선출한다는 조항 등이 선출 권력 관련 근거 조항이다. 국회의 권한에 대해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보장하고 있고,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 제66조 제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제4항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라고 명시한다. 헌법이 권력기관을 소개한 순서도 국회(제3장), 정부(제4장, 대통령은 제1절), 법원(제5장), 헌법재판소(제6장) 순으로 나열한다. 다만 이것이 서열순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선출 권력 가운데 대통령의 경우 헌법 제78조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한다”라고 규정해 대통령에게 핵심 권력인 인사권(임명권)을 부여한다. 특히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제104조 제1항),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같은 조 제2항). 다른 권력기관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11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같은 조 제4항)

임명 권력(사법부) 임명의 권한과 행사의 절차에 관한 것은 선출 권력(대통령과 국회)에 있으나 헌법은 사법권을 법원에 부여하고 있고, 임명된 법관에게 임기와 신분을 보장한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독립성을 보장한다. 특히 헌법 제106조 제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임기와 신분을 보장한다. 

또한 헌법 제7조 제1항을 보면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공직자(공무원)에게 가장 우선적 책무는 권력기관 간 서열에 따른 눈치보기가 아니라 국민에 봉사하고 국민에 책임을 지는 평등한 의무라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헌법은 적어도 법 체계상으로는 행정·입법을 장악한 세력이 사법부를 함부로 흔들기 어렵게 해두었다. 문 전 재판관이 헌법을 읽어보라고 한 것은 이런 대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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