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에 ‘테러리스트’ 표현을 거부한 회사 결정에 반대하며 BBC 기자 2명이 퇴사한 데 이어 뉴욕타임스(NYT) 기자가 팔레스타인 지지 선언문에 서명한 뒤 사직했다. 언론인 학살 등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언론사 내 갈등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 지난달 26일 게재된 WAWOG 연대 선언문.
▲ 지난달 26일 게재된 WAWOG 연대 선언문.

NYT는 지난 3일 자사 기자 재즈민 휴즈(Jazmine Hughes)의 퇴사를 알렸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포위를 비판하는 성명에 휴즈 기자가 서명했다는 이유다. 뉴욕타임스는 소속 기자가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제이크 실버스타인 NYT 편집장은 사내 메일에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존중하지만, 이는 공공 시위에 대한 회사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이 규정은 독립성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우리의 노력의 일부”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그가 이렇게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고 공개적인 시위에 참여하려는 욕구가 NYT 기자로서는 양립할 수 없다고 논의했고, 휴즈 기자가 사직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라고 했다.

▲ ‘가자전쟁에 반대하는 작가 모임’(WAWOG) 홈페이지.
▲ ‘가자전쟁에 반대하는 작가 모임’(WAWOG) 홈페이지.

휴즈 기자가 서명한 성명은 ‘가자전쟁에 반대하는 작가 모임’(WAWOG)이 지난달 26일 공개한 연대 선언문(Statement of Solidarity)이다. 유명 언론인과 작가를 포함해 수백명이 서명한 이 성명은 “이스라엘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주의) 국가”라며 “많은 유대인들이 이러한 민족주의적 프로젝트에 징병당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지만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인종말살적’(eliminationist)이라고 규정했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인들의 죽음도 거론됐다. 성명은 “우리는 가자지구 주민들 곁에 굳건히 서 있다”며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정당하다고 주장한 14일자 NYT 사설(Israel Can Defend Itself and Uphold Its Values)을 공개 비판했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 언론인들이 전쟁 범죄로 사망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13일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사망한 로이터 소속 사진 기자 이삼 압달라(37). 사진=국경없는기자회 홈페이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 언론인들이 전쟁 범죄로 사망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13일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사망한 로이터 소속 사진 기자 이삼 압달라(37). 사진=국경없는기자회 홈페이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극단적으로 흐르면서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언론계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BBC 소속 노아 아브라함(Noah Abrahams) 기자와 바삼 부네니(Bassam Bounenni) 북아프리카 특파원은 지난달 회사의 하마스 표현에 반발하며 퇴사했다. 방송과 온라인 보도 등에서 BBC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한 것이다.

[관련 기사 : BBC, 정부 압박에도 하마스에 ‘테러리스트’ 표현 거부한 이유]

[관련 기사 : 가자지구에서 언론인 살인 ‘전쟁 범죄’ 벌어지고 있다]

미국 잡지 배너티 페어(Vanity Fair)에 따르면 예술전문지 아트포럼(Artforum) 데이비드 벨라스코 편집장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고 휴전을 촉구하는 공개 성명을 게재한 후 직원들의 항의로 사임했다.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는 지난달 25일 필라델피아 지역언론 등 팔레스타인 지지 발언을 했다가 해고된 언론인이 최소 2명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내 일반 기업에서도 전쟁에 대한 의견이 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대한 논쟁을 사무실 밖으로 두려고 하지만 효과가 없다> 기사를 내고 최근 몇 년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미투 운동,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이번 전쟁을 비교했다.

WSJ는 “구글과 아마존 일부 직원들은 사내 포럼에 팔레스타인이나 휴전을 지지하는 게시물들이 경영진에 의해 삭제됐다고 말한다”며 “스타벅스는 지난달 7일 소셜미디어에 친팔레스타인 게시물을 올린 스타벅스 노동조합(Starbucks Workers United)을 고소했다. 스타벅스는 노조가 회사 브랜드를 사용한 것이 회사에 특정 정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아울러 “다른 회사에선 공개적으로 이러한 견해를 공유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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