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UN)의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막을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조앤 도너휴 국제사법재판소장은 이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중단을 명령해달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임시조치 요청에 대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량학살 행위를 막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도너휴 소장은 “남아공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것으로 주장하는 행위와 부작위 중 적어도 일부는 제노사이드 협약의 규정에 해당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앤 도너휴 국제사법재판소장은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중단을 명령해달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임시조치 요청에 대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량학살 행위를 막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사진=유엔 유튜브 갈무리
▲조앤 도너휴 국제사법재판소장은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중단을 명령해달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임시조치 요청에 대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량학살 행위를 막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사진=유엔 유튜브 갈무리

앞서 남아공은 지난달 29일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하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판결은 남아공이 임시명령을 요청한 데 대한 잠정 판결로 최종 판결까지는 보통 수 년이 걸린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에 한 달 안으로 명령 준수 여부를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명령한 긴급조치는 △이스라엘이 집단학살 협약에 반하는 행위를 삼갈 것△집단학살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선동을 방지 및 처벌할 것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보장하기 위한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 △재판소는 이스라엘에 집단학살의 증거를 보존할 것 등을 비롯한 6가지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도너휴 소장의 임시명령을 듣고 있는 남아공 측. 앞서 남아공은 지난달 29일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하면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사진=유엔 유튜브 갈무리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도너휴 소장의 임시명령을 듣고 있는 남아공 측. 앞서 남아공은 지난달 29일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하면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사진=유엔 유튜브 갈무리

도너휴 소장은 이스라엘 군사작전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주거지의 대규모 파괴, 대다수 인구의 강제이주,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이 ‘가자지구 완전한 봉쇄’ ‘인간 동물’ 등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는 언어를 사용했다는 지적도 했다. 또한 남아공이 제기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혐의를 재판에서 각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것이 사실상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혐의를 인하는 조치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남아공의 핵심 요구였던 ‘군사작전 즉각 중단’을 직접 명령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국제사법재판소는 지난 2022년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도너휴 소장의 임시명령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측. 앞서 남아공은 지난달 29일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하면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사진=유엔 유튜브 갈무리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도너휴 소장의 임시명령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측. 앞서 남아공은 지난달 29일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하면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사진=유엔 유튜브 갈무리

팔레스타인 외교부는 성명에서 ICJ의 명령을 환영한다고 밝히며 ‘어떤 국가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중요하게 상기시켜준다”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판결을 거부하는 입장을 냈다. 이스라엘이 “어느 때보다 정당한 전쟁”을 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이러한 기본권을 부정하려는 사악한 시도는 유대국가에 대한 노골적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제소를 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따를 것을 기대한다. 판결에 따라 휴전을 위한 노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고 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발키스 자라 국제사법담당부국장은 “국제사법재판소의 신속한 판결은 최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으로 민간인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매일 살해당하는 끔찍한 상황을 인정한 것”이라며 “각국 정부는 긴급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명령이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판결을 두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인구를 대량 학살하고 전례 없는 규모로 팔레스타인인에게 죽음과 공포, 고통을 가하기 위한 무자비한 군사 작전을 추진하는 것을 세계가 절대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했다.

▲SNS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살상 주체인 이스라엘을 지우는 보도로 비판받는 BBC·뉴욕타임스 기사 사례. 알자지라 미디어평론가 사나 사이드와 민트프레스뉴스 알란 맥리오드 기자 트위터 갈무리.
▲SNS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살상 주체인 이스라엘을 지우는 보도로 비판받는 BBC·뉴욕타임스 기사 사례. 알자지라 미디어평론가 사나 사이드와 민트프레스뉴스 알란 맥리오드 기자 트위터 갈무리.
▲SNS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살상 주체인 이스라엘을 지우는 보도로 비판받는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기사 사례. 알자지라 미디어평론가 사나 사이드와 민트프레스뉴스 알란 맥리오드 기자 트위터 갈무리.
▲SNS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살상 주체인 이스라엘을 지우는 보도로 비판받는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기사 사례. 알자지라 미디어평론가 사나 사이드와 민트프레스뉴스 알란 맥리오드 기자 트위터 갈무리.

한편 영미 주요 언론이 이스라엘의 민간인 폭격과 살상을 전하는 기사에 ‘이스라엘’을 언급하지 않는 사례가 쌓이면서, 이런 보도가 ‘인종청소를 은폐한다’는 SNS상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일례로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총격이나 폭파로 숨진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소식을 전하며 “총알이 모든 것을 끝냈다” “폭탄들이 가자의 붐비는 피난처를 공격했다” 등의 제목을 썼다. BBC는 ‘기록적인 숫자의 민간인들이 2023년 폭발물질에 의해 다쳤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주택 수십 채 폭파 작전을 보도하면서 ‘완충지대 청소’라는 표현을 제목에 쓰기도 했다.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의 미디어평론가 사나 사이드는 트위터(X)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돌아갈 집도, 동네도, 학교도, 병원도 없도록 확실히 하고 있다”며 “NYT는 이스라엘 서사를 따라 제목과 본문에 ‘완충지대 만들기’라는 단어를 써서 주거용 집들을 파괴하는 행위를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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