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어느 누구에게 연락할 수가 없습니다. (폭격 당한) 가족들은 꼼짝 못하고 구조해달라며 소리 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 란티시 아동 병원을 표적 공습해 화재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남쪽으로 대피하지 않을 겁니다. 이스라엘이 북부에 자행하는 모든 일을 보도할 겁니다.” “오늘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샤워할 곳을 찾을 생각입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당신이 보았다면…”

이스라엘이 연일 봉쇄와 폭격을 가하는 가자지구에서 힌드 쿠더리(Hind Khoudary) 기자와 모타즈 아자이자(Motaz Azaiza) 기자가 트위터(X) 등에서 전하는 실시간 가자 상황이다. 가자 현지에서 보도하는 언론은 독립언론이자 프리랜서가 다수다. 이들은 자신이 취재한 현장 사진과 소리,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공습을 가한 지 한 달을 넘겼다.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 연일 급증하는 가운데 한국 언론엔 현지 언론인 목소리가 무색하다. 지난 한 달 주요 언론 보도는 이스라엘 발표에 일방으로 기울었다. 이스라엘 당국과 미국 정부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가자지구 현지에서 보도하는 언론인 소셜미디어(X, 전 트위터) 갈무리
▲가자지구 현지에서 보도하는 언론인 소셜미디어(X, 전 트위터) 갈무리

언론은 사태 초반부터 이스라엘과 미국 당국 발표와 SNS에 떠도는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했다. 일례로 언론은 지난달 초 SNS를 인용해 ‘하마스가 이스라엘 아이들을 닭장에 가둬놓고 조롱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독일 여성이 하마스에 의해 납치돼 참수됐다는 이스라엘 주장도 받아썼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공영언론이나 이스라엘에 특파원을 파견했다고 강조한 언론사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예루살렘 현지에서 전한 1면 보도에서 하마스가 닭장에 가둔 영상을 포함해 SNS에 잔혹한 영상을 보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MBC는 지난달 31일 독일 여성이 참수됐다는 주장을 제목에 기정사실화했다.

▲지난달 30일 MBC 갈무리
▲지난달 30일 MBC 갈무리

미국 정부 주장도 여과 없이 언론 보도를 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발표하는 사상자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발언하자 영미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한국 언론은 이를 적극 받아썼다. UN은 날조의 증거는 없으며 미국 정부 역시 최근까지도 팔레스타인 당국의 통계를 인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인한 죽음에
‘하마스 인간방패’ 이스라엘 주장 되풀이

특히 일부 보수 언론은 민간인 살상 비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 삼는다’는 미확인 주장이 일례다. 조선일보는 기사와 특파원 칼럼 등 기사와 의견기사를 통해 팔레스타인인의 사망은 하마스의 ‘인간방패’ 전략 탓이라고 주장했다. BBC를 비롯한 영미 언론이 거듭 전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지난달 16일 조선일보
▲지난달 16일 조선일보
▲6일 조선일보
▲6일 조선일보

역사 기록을 보면 이 주장은 한 차례도 입증되지 않았다. 한편 이스라엘군이 2008~2009년 1370명의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낳은 가자 침공 당시 민간인을 인간 방패 삼은 사실은 국제기구 진상조사로 드러난 바 있다. UN 진상조사단은 2009년 9월 침공를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이 지상전 동안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했다고 결론 냈다. 하마스가 인간 방패를 사용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찾지 못했다.

최근 허삼 솜롯 주영국 팔레스타인 영사는 BBC 앵커의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쓰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스라엘 주장은) 희생자들을 죽인 뒤 죽인 행위에 대해 희생자 탓하는 것이다. 좋다. 백번 양보해 이스라엘 선전이 맞다고 가정해보자. 상상해보라. 런던에서 한 사이코패스가 아이 10명을 데리고 병원에 들어가 인질 삼는다. 영국 당국은 그럼 그 병원을 폭격하나? 진심인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기 자신을 인질 삼는다는 게 무슨 논리인가? 이건 인종주의다. 국제 미디어가 이 같은 주장을 반복해선 안 된다.”

‘전쟁범죄’ 진행중인데 이스라엘 무기 소개

한편 조선일보는 이스라엘의 무기 기술을 소개하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국제면에서 머리기사로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매체 예루살렘포스트 등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의 하마스 땅굴 전방위 공략법’이자 ‘첨단기술’이라며 AI로봇, 벙커버스터, 스펀지폭탄 등을 인포그래픽으로 소개했다.

▲6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6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그러나 이 땅굴은 이스라엘이 가자를 봉쇄해온 상황에서 민간인이 사용할 생필품을 들여오는 통로이기도 하다. 해당 기사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알 자지라는 <‘이스라엘은 부수적 피해는 신경 쓰지 않는다’ 가자에서 쓰인 벙커 버스터 폭탄> 기사에서 “육지와 공중, 바다 통로가 봉쇄된 가자에는 미로처럼 얽힌 터널이 식량과 무기, 연료 등 모든 것을 들여오는 가자의 생명선”이라고 전했다.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이 중화기는 ‘극단적인 정당방위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민간인 밀집 지역에서는 사용 금지된다”며 “그러나 이스라엘은 부수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언론이 이스라엘 당국 입장을 일방 전달하면서, 외려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인 목소리마저 외면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하마스가 공개한 영상에서 인질인 다니엘 알로니는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당신은 우리를 석방시켜야 했다”며 “그러나 그 대신 우리가 당신의 정치, 안보, 외교 실패(의 피해)를 짊어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인질의 가족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공격을 중단하고, 이스라엘 인질들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수천 명을 맞교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수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거나 ‘하마스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주장’이라는 이스라엘 주장을 전달했다.

근본원인은 이스라엘 점령에…
역사인식 국내 보도서 찾기 힘들어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 적은 벽화 갈무리. ⓒUnsplash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 적은 벽화 갈무리. ⓒUnsplash

팔레스타인 문제에 정통한 활동가들은 본말을 뒤바꾼 보도는 현 사태의 근본 원인이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결과라고 말한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슈가 복잡하다고들 얘기하지만 사실 매우 간단하고 쉬운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1967년 이래 지금까지 내내 군사 점령하고 있다.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만 써도 기자와 독자가 문제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지만 보도들에선 이 같은 역사 인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뎡야핑 활동가는 “언론이 이스라엘 점령군의 주장을 검증하는 데 애를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최소한의 검증은커녕 그대로 받아적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날조 사실이 드러나도 정정하지 않거나 대충 하고 있다. 언론에 대한 기본적인 사회적 신뢰 훼손”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이스라엘 자제 촉구’ 주문해야
사람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수많은 사상자가 양산되는 상황을 ‘자국 경제효과 수단’으로 보는 보도도 쏟아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달 10일 ‘팔레스타인 국민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언론은 “부산이 월드엑스포 유치 경쟁을 벌이는 입장에서 호재”라고 풀이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부터 부산지역 일간지, 온라인 매체를 가리지 않고 보도했다.

▲지난달 11일 연합뉴스 보도 갈무리
▲지난달 11일 연합뉴스 보도 갈무리
▲지난달 10일 부산일보 보도 갈무리
▲지난달 10일 부산일보 보도 갈무리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최근 한 달 간 보도에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격언이 떠오른다”며 “언론의 팔이 안으로 굽어 자국 중심 보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 언론이 소임을 잊고 민간인 살상에 ‘호재’를 논하는 것은 그 선을 넘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우리 언론이 정부를 향해 이스라엘에 휴전을 촉구하고 폭주를 자제시킬 책임을 강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9일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에 따르면, 지난 10월7일 이래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 민간인 사망자가 1만818명, 이 중 어린이와 여성, 노인이 74%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지난 10월7일 하마스에 전쟁을 선포하고 가자에 식량과 물, 연료 공급을 차단한 뒤 병원과 학교, 난민촌, 주거지를 포함한 전역에 폭격을 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 지원 기구 UNRWA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곳에 지난 달에만 미국이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핵폭탄 파괴력의 1.5배에 달하는 폭격을 가했다. 가자지구는 면적이 한국 세종시보다 조금 작지만 인구는 200만 명으로 세종의 대여섯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