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돼서도 편지를 보내고 싶어요. 그때까지도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일테니, 그게 제 꿈입니다.”

손편지는 언제나 따뜻하다. 한 글자씩 적는 모습이 상상돼서일까. 전자우편과는 다른 온기가 있다. 한 시인이 2018년부터 손편지를 배달하고 있다. 나날이 쓰는 ‘일기’가 주 내용이다. 두툼한 갈색 봉투에는 왠지 모를 설렘도 느껴진다. 시인은 일기를 ‘따뜻한 소통’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1992년생 문보영 시인은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에서 등단했다. 이듬해 첫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하품의 언덕’, ‘일기시대’ 등 시집, 에세이,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부터는 문학 뉴스레터 ‘일기 딜리버리’를 진행 중이다. 시사·경제 등 딱딱한 분야가 주류인 뉴스레터 시장에서 ‘일기’를 전하는 것이다. 따뜻함을 배달하는 문 시인을 19일 일산 밤가시마을에서 만났다.

작성부터 포장까지 손으로, 아날로그형 뉴스레터

▲ 우표를 직접 붙이고 있는 모습 사진=문보영 제공
▲ 우표를 직접 붙이고 있는 모습. 사진=문보영 제공

일기 딜리버리는 1회 구독에 한 달간 발송한다. 매달 새로운 구독자를 받는다. 1주차 원고 묶음은 우편으로 보내고, 이후로는 일주일에 두 번 이메일 발송이 이뤄진다. 최근에는 이를 간소화해 우편으로만 진행했다. 2018년부터 2년간은 매달 구독자를 받았지만 지금은 중간 휴식기다. 일반 구독료는 월 만 원이다.

우편 안에는 일기를 포함해 소설, 에세이, 시 상담 등 여러 산문이 포함된다. 정기 발송 외 다른 시인과의 대화 등 번외편도 서비스한다. 지난번 일기 딜리버리에는 장수양 시인이 함께했다. 

문 시인은 본인을 ‘아날로그형 인간’이라고 칭했다. 일상에서는 핸드폰도 꺼놓는다. 원고도 일기장에 먼저 쓰고, 노트북으로 옮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특성이 자연스럽게 ‘일기 딜리버리’를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편지를 손으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해 레이아웃도 손으로 자유롭게 배치하는 것이 더 편했고, 멋대로 제가 손으로 화살표를 그리고, 그림을 그려 꾸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독자들도 더 소중하게 여겨주는 것 같아요.”

▲ 일기 딜리버리 갈무리
▲ 일기 딜리버리 갈무리

뉴스레터에는 문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들어있다. 특히 ‘방 구조’ 그림이 눈에 띈다. 꾸불꾸불한 선과 그림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새벽녘 문 시인의 이동반경도 드러난다. 문 시인은 “코로나19가 심할 때 방 안에 상주하면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화살표로 그리고 하는 등의 흐름이 가장 재밌었고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가장 궁금했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우편 포장도 직접 한다. 손편지를 쓰고, 대량 복사하고, 봉투를 접고, 우표를 붙인다. 수백장이 넘는 우편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 시인은 이러한 육체노동이 ‘아날로그’ 같아서 좋다고 했다.

“포장하는 날에는 하루종일 가족들이 다 붙어서 같이 일해요. 그 시간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나하나 포장하다 보면 잡념도 없어져요. 이러한 과정들 자체가 아날로그라 소중합니다.”

핵심은 소통 … “일기는 서로의 옆모습 보는 것”

지난 5월 뉴스레터를 재개한 문 시인은 일기의 본질이 ‘소통’이라고 말했다. 혼자 읽고 쓰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일기는 가장 좋은 ‘소통 수단’이라는 것이다.

“친구들이 보여주는 시들에 보답하고 싶어 일기를 처음 썼습니다. 제 이야기로 꽉 채우는 것이 아닌 나와 친구들이 공존하는 일기를 썼어요. 친구들이 제 일기를 보며 함께 웃고 재밌어하는 모습이 큰 힘이 됐고, 글을 쓸 때는 슬프지만 일기로 함께 보면 같이 웃을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일기라는 건 서로의 옆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나는 내 옆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친구의 일기 속에선 내 옆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입체적으로 보면 사람을 미워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기를 소통의 수단으로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 문보영 시인 사진=문보영 제공
▲ 문보영 시인 사진=문보영 제공

독자와의 소통도 활발하다. 뉴스레터 발행 후 도착한 독자들의 반응을 일일이 읽고 답장한다. 독자들은 피드백부터 응원, 시 상담까지 다양한 메일을 보내왔다. 문 시인은 그중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독자들의 ‘일기’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문 시인은 “독자 메일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섞여 들어가 있어요. 그게 가장 재밌어요. 독자들의 삶과, 그들이 쓴 일기를 읽다 보면 독자들이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고 한 명, 한 명이 세세하게 느껴져요”라고 했다.

독자 메일을 읽고 우편으로 답신을 보내기도 한다. 문 시인은 가장 즐거웠던 에피소드로 같은 부대 내 군인 2명이 동시에 같은 우편을 받았던 사례를 꼽았다. “군인 구독자가 다른 이름으로 우편이 2개가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답신을 보내왔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인데 그래서 더 기뻤답니다. 이외에도 해외로 발송된 우편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도착했다는 인증샷을 독자에게 받으면 신기하고 뿌듯해요.”

수많은 SNS 플랫폼 중 자신과 맞는 것 찾아야

문 시인은 뉴스레터 외에도 블로그, 라디오, 인터넷강의 등 여러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문학인들이 ‘출판’이라는 기존 통로를 넘어 다양한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것은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 문 시인은 자신과 맞는 플랫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문학에 대해 편하면서도 깊은 이야기를 하는 창구가 좋아요. 평소에도 짧은 호흡의 SNS는 (홍보 등) 해야 할 때만 하고 일상에서는 꺼놓습니다. 그래서 긴 글을 담을 수 있는 블로그가 제일 좋아요.”

블로그는 ‘초심’과도 같았다. ‘블로그 친구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글을 쓰자’는 것이 처음의 목표였다. 문 시인은 이외에도 문학에 관해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플랫폼에 집중했다. 지금은 EBS 북 라디오 ‘문보영의 시, 사전’을 진행하고 있다. 감각, 애착, 꿈 등 일상 단어들을 시와 함께 풀어낸다. 라디오는 자연스럽게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표 플랫폼이다. 

▲ 콜링포엠 포스터 사진=문보영 블로그
▲ 콜링포엠 포스터 사진=문보영 블로그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때 진행했던 ‘콜링포엠’이다. 신청자 중 무작위 추첨으로 전화를 걸어 시를 읽어준다. 낭독 후 독자의 질문을 받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문 시인은 책 ‘일기시대’에서 콜링포엠을 두고 “마치 공놀이 같았다. 내가 던진 공이 전화선을 따라 굴러갔다가 어딘가에 부딪혀 돌아왔는데 그 공이 더 커져서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문 시인은 인터넷강의까지 폭을 넓혔다. 온라인 플랫폼 ‘클래스 101’을 통해서다. 이미지, 비유 등 기본적 내용들과 작품 해설, 긴 장시 쓰기 등 시에 대한 종합적인 것을 다룬다. 문 시인의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구독자들의 시 상담, Q&A 등 소통 창구도 마련돼 있다. 인터넷강의 역시 라디오, 콜링포엠처럼 문학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다. 이용자들은 “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좋았다”고 평했다.

‘일기 딜리버리’는 가을쯤 재개될 예정이다. 문 시인은 지난해 발송했던 일기들을 묶어 '일기시대'를 출간하기도 했다. 시사·경제 등 실용적 뉴스레터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이 홍수 속에서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에 대한 공부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시끄럽고 바쁜 사회에서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던 내게 위안을 준 것은 문학이었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이 들 때마다 책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일기, 문학이 가진 진정한 소통의 힘을 믿어요. 내밀한 소통을 이어가며 할머니가 돼서도 편지를 보내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때까지도 글을 쓰고 있다는 뜻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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