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등 외신을 인용해 취재하면 기존 매체와 차별화가 안 되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니, 테크 분야를 취재하려면 당연히 미국에서 창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IT·테크 분야에 잔뼈가 굵은 손재권 기자가 언론에 사표를 던지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2019년 그가 미국에서 창간한 ‘더밀크’는 남다른 테크, 경제 뉴스를 선보이는 곳일 뿐만 아니라 최근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해 ‘언론이 구독 모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입증해내고 있다. 지난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있는 손재권 대표를 비대면으로 만났다.

실리콘밸리서 창업 이유? “현장이 여기 있기 때문”

‘더밀크’는 실리콘밸리 테크·경제 트렌드, 기업 정보를 ‘우유처럼’ 신선하게 배달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미국 등 각지에서 구성원들이 뉴스와 리포트를 만든다. 무료 회원에겐 ‘뉴스레터’를, 월 25달러를 내는 유료 개인회원에게는 실리콘밸리 테크 및 경제 기사, 주요 인물정보, 미국 현지 컨퍼런스 및 행사 단독 커버 등을 제공한다. 연간 회원에겐 개별기업 분석 리포트와 실리콘밸리 전문가 라이브 QnA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 회원을 위한 별도의 맞춤 리포트 서비스도 있다.

“왜 미국에서 창업을 하게 됐냐”는 질문에 손재권 대표는 “현장이 여기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뒤 말을 이어갔다. “실리콘밸리의 움직임을 한국어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미국 언론입니다. 미국 법을 따르고, 글로벌한 저널리즘 룰을 따라요. 그러면서도 외신 보도와 달리 한국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시각으로 전하는 글로벌 뉴스를 만드는 거죠.”

▲ 손재권 더밀크 대표. 사진=더밀크 제공
▲ 손재권 더밀크 대표. 사진=더밀크 제공

창업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그는 매일경제, 전자신문 등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고민’이 커져갔다고 한다. “IT, 테크, 미디어 담당 기자 생활을 오래했어요. 사내 혁신 업무도 맡았고요. 당시 복스미디어 등 미국의 창업 사례를 보면서 기사를 써서 혁신을 알리는 것도 있지만 회사를 만들어서 혁신을 할 수도 있다는 데 관심이 갔죠. 기사만 써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재 영역 측면에선 IT 분야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던 시점이었다. “제가 관련 취재를 한창 하던 2012년을 전후해서 모바일 혁명이 있었죠. 당시엔 IT가 산업부 내의 작은 파트로 있었고, 전문적 영역이라고만 인식했어요. 그런데 점점 더 삶과 경제에 직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IT는 단순한 ‘툴’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를 원고지 5매, 10매 안에 담기는 어려웠어요.” 

전문가 중심 구성에 ‘버츄얼 뉴스룸’

‘더밀크’는 기고자 포함 20여명이 일하고 있다. 뉴스룸과 리서치팀, 서비스 개발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있고, 한국엔 더밀크코리아 사무실이 있다. 해외의 경우 미국 실리콘밸리 뿐 아니라 시애틀, 뉴욕 뉴저지, 애틀란타, 피츠버그, LA, 그리고 아일랜드 등 각지에서 기자와 리서처들이 활동하고 있다. 시차가 나는 지역만 5곳에 달한다. 그렇기에 ‘현실 뉴스룸’이 아닌 ‘버츄얼 뉴스룸’으로 운영하고 각자 자율적으로 업무 시간을 정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회의가 필요할 경우 줌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구독 ‘타깃’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다. 손재권 대표는 “대한민국에 거주 중인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더밀크’ 유료 구독자 60~70%는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며 나머지 30~40%는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트렌드나 미국 기업 정보를 얻고 싶은 이들 뿐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며 기술과 경제에 관심 있는 이들도 구독하고 있다.

‘더밀크’는 전자신문, 조선비즈 등 전문 매체 출신의 경력이 풍부한 기자들과 박사급, 컨설턴트 출신 인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더밀크’에는 ‘리서치팀’이 별도로 있다. 손재권 대표는 “싱크탱크가 되고 싶어서 리서치팀을 마련했어요”라고 밝혔다. “산업과 테크 분야에는 이렇다 할 싱크탱크가 없는 상황인데요. 우리는 미국에서 중요한 사안을 현지에서 발굴해 한국 산업과 기술 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리포트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판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비전인 것이죠”라고 강조했다.

신문 기자들과 리서치 인력이 주축이지만 영상에도 공을 들였다. ‘더밀크’는 최근 넷플릭스에 방문해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영문 더빙 현장을 취재하고 인터뷰를 담아 영상으로 전했다. 넷플릭스 콘텐츠를 전세계인이 즐기는 데는 ‘심혈을 기울인 더빙’이 한 몫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와닿을 수 있다.

▲ '지금 우리 학교는' 영문 더빙 취재 영상 갈무리. 사진=더밀크
▲ '지금 우리 학교는' 영문 더빙 취재 영상 갈무리. 사진=더밀크

“현장성이 중요해 방송팀을 키우려 했어요. 우리는 온라인 사이트인 더밀크닷컴보다 유튜브 채널인 더밀크TV를 먼저 만들었어요. 언론사 특파원 생활 때부터 다양한 취재 기회들을 라이브로, 비디오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현장을 영상으로 전하고, 무료 서비스하면서 이를 토대로 유로 구독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죠.”

‘관점’에 돈을 지불한다

‘더밀크’의 콘텐츠는 ‘단순 전달’이 아닌 관점을 담은 ‘해석’을 중시한다. 뉴스레터 이름이 ‘뷰스레터’인 것도 ‘관점’을 중시해서다. 손재권 대표는 “단순 뉴스는 포털에 다 있죠. 그래서 뉴스를 단순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해석하는 게 중요합니다”라며 “프리미엄 구독자들이 ‘관점을 산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뉴욕타임스와 같은 매체에선 오피니언면을 보기 위한 유료 구독자들이 많은데요. 돈을 내고서라도 시각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주목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 소식의 경우 ‘물음표’가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메타버스’를 인수 이유라고 밝혔지만 블리자드는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더밀크는 “하지만 (블리자드엔) 거대한 콘텐츠 IP와 커뮤니티가 있었고 깊고 깊은 팬덤과 이미 성인이 돼 게임머니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용자 층을 보유하고 있죠. 그 자체로 ‘메타버스 회사’ 였던 것”이라며 “MS의 블리자드 인수는 ‘게임 IP’만을 인수했다기보다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인수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가상 세계와 물리적 세계가 연결되는 그 지점에 ‘콘텐츠’가 있습니다. 커뮤니티는 충성도를 높이고 체류 시간을 늘리는 키워드”라고 분석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콜오브듀티, 오버워치 등의 게임 IP뿐 아니라 ‘커뮤니티’와 구매력 있는 이용자층에 주목해 해설한 것이다.

▲ 더밀크 로고.
▲ 더밀크 로고.

‘더밀크’를 구독하다 보면 ‘저널리즘 기반’과 ‘신뢰’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탈진실 시대라고 하죠. 누구나 자신의 주장으로 얘기하는 시대에 오히려 팩트에 기반한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어떤 스토리이건, 팩트에서 시작하죠. 그래서 우리는 리서처들도 ‘숫자를 통해 팩트를 발굴하는 사람’으로 규정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는 독립적 취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광고가 없는 매체이기에 기업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는 “우리는 CES같은 글로벌 행사를 모두 우리 돈으로 취재합니다. 우리 독자들께서 주신 구독료로 취재를 하기에 독자를 위한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봐요. 한국에선 정부나 기업에서 기자들을 데려가곤 하는데 글로벌에선 어울리지 않는 면입니다”라고 했다. 

현지의 취재 대상은 구글, 페이스북(메타)과 같은 빅테크 기업만이 아니다. 현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빨리 감지해 전하는 것도 취재의 한 파트를 차지한다. ‘더밀크’는 뉴스 섹션 가운데 ‘스타트업’을 별도로 운영한다. 일례로 실시간으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빅데이터 솔루션 ‘프로메시움’을 소개한 기사를 보면 창업연도, 창업자 정보, 최종 투자이력, 투자 히스토리 등 정보와 함께 ‘더밀크의 시각’도 별도 소주제로 구성하고 있다. 

이 업체의 경우 “빅데이터는 데이터에 담긴 인사이트를 실제 의사 결정에 활용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메시움은 사용자 중심의 친화적이고 비즈니스 활용에 적합한 빅데이터 본연의 가치를 극대화할 솔루션 제공 업체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된다”는 시각을 담았다.

“현지 유력 기업 뿐 아니라 현지의 스타트업에도 주목하며 변화를 빠르게 포착해내려 하고 있어요. 메타버스, 웹3, NFT 등 모두 미국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요. 이 변화의 흐름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발굴해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신에서 이를 전하기도 하지만, 한국인인 우리 기자가 보는 건 관점이 같을 수가 없겠죠.” 

▲ 더밀크 서비스 소개 화면
▲ 더밀크 서비스 소개 화면

‘더밀크’는 유료회원 전용으로 실리콘밸리 주요 인물 정보도 기사로 제공한다. 주목할 만한 인물을 선정하고 그의 ‘스토리’를 담았다. 이와 관련 손재권 대표는 “변화를 알려면 기술의 흐름, 돈의 흐름. 그리고 사람의 흐름.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사람에 대한 정보는 현장에서 더 빨리 캐치를 하게 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인물 정보는 변화를 캐치하기 위해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지 취재의 강점은 ‘단독’기사로 나타나기도 했다. 2021년 8월 ‘더밀크’는 업계 관계자 취재를 통해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사업에 뛰어든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후 이 사업이 공식화됐다. 한국 언론 가운데 단독이 아니라 글로벌 단독 기사였다. “우리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손재권 대표의 말이다.

“비즈니스 모델의 대안 언론 만들 것”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미디어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손재권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그가 말하는 변화와 발전은 ‘구독 모델’과 ‘글로벌’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구독 비즈니스 측면에서 시도할 게 많은데요. 잘 개척해서 한국의 ‘프론티어’가 되고 싶어요. 대안 언론이라는 게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하는데, 기업가는 실행으로 얘기하는 것이겠죠. 저널리즘 기반으로 투자를 받아 미국 미디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 그런 측면에서 한국 언론 기자 출신으로서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가 처음 창업할 때만 해도 언론계 종사자들이 ‘돈 내고 뉴스 안 본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포털 환경에서 구독 모델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손재권 대표는 “하지만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가고 있고, 다른 나라에선 이미 구독 미디어의 도입 단계가 지나고 가속화되고 있어요.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프리미엄 구독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라고 강조했다.

▲ 더밀크 홈페이지 갈무리
▲ 더밀크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면서 그는 “한국 언론은 광고 의존, 포털 의존 등에 고민이 많은데 이는 비즈니스 모델의 붕괴에서 나오는 것이죠. 더 이상 광고와 포털에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선 제로베이스에서 구독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창업 정신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구독 모델의 중요성 못지 않게 ‘글로벌’의 중요성도 여러차례 강조했다.

“갇혀있지 않으면 좋겠어요. 모든 게 다 글로벌이고, 한국의 기업들, 콘텐츠가 다 글로벌로 가고 있지만 유독 언론만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 같아요. 정작 언론은 대한민국 땅 안에서만 취재가 이뤄지고, 시장이 구성되는 것 같아요. 이런 한계를 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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