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25분. 이 시간이 지나면 읽을 수 없습니다’

지식 콘텐츠 구독 서비스 롱블랙(LongBlack)에 접속하면 나오는 문구다. 타이머 속 시간은  시시각각 줄고 있다.

구독 서비스를 관통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가성비’다. 구독 요금만 내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한다. 지난해 9월 런칭한 롱블랙의 접근법은 달랐다. 하루에 단 하나의 콘텐츠만 발행하고, 심지어 하루가 지날 때까지 읽지 않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는 다시 볼 수 없다. 

지난 19일 롱블랙을 서비스하는 타임앤코의 임미진 대표와 김종원 부대표를 만났다. 임미진 대표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중앙일보 지식 콘텐츠 서비스 폴인을 이끈 경험이 있다. 김종원 부대표는 동아일보 계열사 DBR·HBR에서 콘텐츠 기획을 맡았고 리디북스, 폴인 등에서 일했다.

▲ 롱블랙 홈페이지 서비스 갈무리
▲ 롱블랙 홈페이지 서비스 갈무리

임미진 대표는 롱블랙을 “양질의 콘텐츠,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디자인과 구성, 그리고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서비스”라고 규정했다. 롱블랙의 노트(콘텐츠)를 클릭한 구독자의 완독률은 평균 85%가 넘는다고 한다. 콘텐츠만 좋아서는 만들어내기 힘든 결과다.

구조화된 지식 수용에 영상보다 텍스트 강점 
구독 피로감 고려 1일 1콘텐츠 발행 ‘역발상’

이들은 시장분석 과정에서 글 중심의 지식 콘텐츠 시장이 디지털에 최적화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웹툰 시장은 디지털 환경에 맞게 변화했는데 텍스트 중심 지식콘텐츠 시장은 정체됐다고 생각해요. 웹툰은 디지털을 만나 스크롤 방식, 회차 쪼개기 등으로 발전했죠. 그런데 책은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전자책에 옮긴 정도에 그쳤어요. 책을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전자책으로는 쉽게 읽을 수 있을까요?” 김종원 부대표의 말이다.

원래 디지털 지식 콘텐츠 시장에선 텍스트가 주목 받기 힘든 건 아닐까. 실제 최근 유튜브에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영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김종원 부대표는 “영상이 구조화된 지식을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면이 있고 반면 텍스트는 이 측면에 강점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가 지식 정보를 전하는 대표적인 한 유튜브 채널 영상 속 대사를 텍스트로 옮겼더니 18분 분량에 7000자 정도였다고 한다. 글로 썼으면 5~6분이면 읽을 수 있는 양이다.

▲ 타임앤코 김종원 부대표(왼쪽)와 임미진 대표. 사진=롱블랙 제공
▲ 타임앤코 김종원 부대표(왼쪽)와 임미진 대표. 사진=롱블랙 제공

“하지만 텍스트는 잘 안 보죠. 저는 피로감이 있다고 봤어요. 저도 과거에 서비스할 때 월 1만 원에 무제한으로 읽으라고 했었죠. 음성이나 영상은 가능하지만 글은 달랐어요. 이미 쌓여 있는 텍스트를 다 소비하지 못하고, 피로감을 느껴 해지하는 거죠. 고객은 시간이 없고 정보는 넘치고, 이 와중에 어떤 게 좋은 정보인지 알 수 없어요.” 

텍스트로 된 지식정보 서비스는 많지만 디지털 최적화가 잘 안 돼 있고 독자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여기에서 롱블랙의 ‘한 끗’ 차별성이 나왔다. 서비스 이름인 롱블랙은 호주의 커피로 아메리카노와 비슷하지만 물의 양과 샷을 넣는 순서에 차이가 있다. 작은 차이인데 아메리카노보다 진한 맛이 난다. 롱블랙이 아메리카노와 달랐던 것처럼 ‘한끗’ 다른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니 하루에 하나씩만 주자. 종이책 기반의 300페이지 정보가 아니라 하나 하나 쪼개서 지식을 전달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읽지 못하면 사라지게 했어요. 헬스장 등록해놓고 안 가면 헬스장을 욕하지는 않잖아요.” 김종원 부대표의 말이다.

하루에 콘텐츠 하나만 제작하는 일은 수 많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것보다 쉬운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임미진 대표는 “오히려 더 무섭더라고요”라며 운을 뗐다. 그는 “첫날 콘텐츠가 마음에 안들면 다음 날에 다시 볼 수는 있어요. 그런데 사흘 동안 마음에 안들면 독자가 계속 구독을 할까요?”라고 반문했다. 김종원 부대표가 부연했다. “다른 사업자들은 총알을 여러발 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루에 한발씩만 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만큼 정확히 맞출 수 있는 노력이 중요해집니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비즈니스 모델이 아닌 거죠.”

▲ 김종원 타임앤코 부대표. 사진=롱블랙 제공
▲ 김종원 타임앤코 부대표. 사진=롱블랙 제공

 

‘점핑 스테이지’ 직장인 대상 ‘고퀄’ 지향
패션지보다 분석적이고 경제지보다 트렌디하게

이 ‘한끗’ 차이는 장르적인 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롱블랙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표방하면서도 ‘분석적 접근’에 초점을 둔다.

요즘 경제, 재테크 장르가 가장 주목을 받는데, 창업 과정에서 이 장르를 고민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임미진 대표는 “재테크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도 있죠”라며 “라이프스타일 분야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그리고 ‘비어 있다’고 판단했어요”라고 답했다.

‘비어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임미진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라이프스타일은 쉽게 말하면 의식주인데요. 패션, 공간 등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은 있지만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풀어내는 경우는 찾기 힘들어요. 스타일적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그 브랜드들의 전략을 분석한 미디어는 거의 없죠. 반대로 비즈니스 매거진들은 트렌디함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롱블랙 모바일 화면. 사진=롱블랙 제공
▲ 롱블랙 모바일 화면. 사진=롱블랙 제공

롱블랙은 패션, 문화콘텐츠, 요식업 등 라이프 스타일에 연계된 여러 장르를 다루면서 리뷰와 함께 산업 분석과 전략을 파고든다. 캉골 브랜드를 다루며 패션 요소에만 그치지 않고 이 브랜드가 어떻게 국내에서 리브랜딩을 했는지, 어느 세대에게 어떤 점을 어필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식이다.

타깃 구독자층은 ‘점핑 스테이지’에 도달한 직장인이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해 안착하려는 이들이 ‘스타팅 스테이지’라면 안착이 끝나고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하는 이들이 ‘점핑 스테이지’에 서 있다. 임미진 대표는 “이 분들은 기획력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차별화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예요. 이 시기에 필요한 기획력과 감각을 키워주는 미디어가 되겠다는 게 우리 메시지인 거죠”라고 설명했다.

실제 형성된 구독자층은 이보다 넓었다. 25~34세 사이의 구독자가 51%에 달하고, 연령대가 그보다 아래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감각에 기반한 비즈니스 혁신에 갈증이 있다는 걸 느껴요. 지금은 제조나 유통이 플랫폼화돼서 누구나 상품을 판매할 수 있죠. 감각이 있는 사람이면 성과를 낼 수 있으니 이런 면에 관심을 갖거나 반대로 위협을 느끼는 직장인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에 ‘내가 트렌드를 못 읽고 있는 건 아닌가’하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임미진 대표의 말이다.

▲ 임미진 타임앤코 대표. 사진=롱블랙 제공.
▲ 임미진 타임앤코 대표. 사진=롱블랙 제공.

이들 구독자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려면 기본적으로 콘텐츠의 ‘질’이 갖춰져야 한다. 롱블랙은 각 분야의 전문가, 현업 종사자들을 인터뷰하거나 필진으로 두는 콘텐츠로 구성된다. 이들을 ‘스피커’라고 부른다. 임미진 대표는 “우리의 스피커들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트렌드를 가장 잘 아는 분들, 그리고 이 비즈니스에서 좋은 네트워크를 확보하신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내부에서 콘텐츠를 기획하면 스피커를 물색해 협업해 콘텐츠를 만든다. 예컨대 ‘매드몬스터’ ‘B대면데이트’ 등을 기획한 코미디 기획사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에 관한 콘텐츠는 홍민영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이 인터뷰를 맡았다.

완독률 높이는 가독성 위한 디자인과 구성

롱블랙에는 디자인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감각적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색 배치와 디자인이 눈에 띈다. 롱블랙의 디자인은 디자인 브랜드 모스그래픽의 석윤이 대표가 맡았다. 그는 ‘열린 책들’에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2016 올해의 출판인상’에서 디자인 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콘텐츠 본문은 디자인적 요소가 돋보이면서도 잡지의 PDF버전을 보는 것처럼 복잡하지는 않다. 임미진 대표는 ‘가독성’을 중시한 디자인과 구성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몇 달 동안 내러티브 연구회를 만들어 계속 논의했어요. 같은 글을 에디터들이 각자 써보고 얼마나 완독을 하는지 데이터 트래킹을 하기도 했죠. 그 결과 가장 잘 읽히고 쉽게 (스크롤이) 내려가는 콘텐츠 포맷을 정하게 됐어요.”

롱블랙 콘텐츠를 읽다 보면 ‘사진이 적고 작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언론사, 블로그 등에서 화면을 뒤덮을만한 큰 사진으로 본문 곳곳을 채워 지루함을 덜어내는 것과 차이가 있다. 

▲ 롱블랙 콘텐츠(노트) 리스트 화면. 캐릭터에 따라 섬네일 색부터 차이가 있다.
▲ 롱블랙 콘텐츠(노트) 리스트 화면. 캐릭터에 따라 섬네일 색부터 차이가 있다.

임미진 대표는 “생각보다 사진이 많이 안 들어가죠?”라고 물으며 “사진이 자주 나오는 콘텐츠를 볼 때마다 ‘방해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이 끊기는 느낌이 있죠. 그래서 사진을 한쪽 귀퉁이에만 넣고 여백을 이어가게 해서 징검다리처럼 글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했어요. 양도 많지 않아요. 사진과 그래픽을 넣을 땐 이게 정보로서 꼭 필요한지를 따져요”라고 강조했다. 

글 전반의 구성은 ‘노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부를 하려는 이들이 관심을 갖고, 분석을 접하고, 핵심을 요약하는 단계로 나뉜다. 예컨대 ‘요즘 꽂혀서 정주행 달리는 웹툰이 하나 있어요. <나 혼자만 레벨업>. 한국에서만 난리인 줄 알았더니 중국에서도 1위래요.  중국? 어디서 볼 수 있나 봤더니 콰이칸만화(快看漫画)란 플랫폼이 있더라고요. 내 또래 중국 MZ들이 가장 사랑하는 웹툰 플랫폼이라고 하니 궁금해졌어요’라며 시작하는 식이다.

▲ 롱블랙 사이트 갈무리. 사진=롱블랙 제공
▲ 롱블랙 사이트 갈무리. 사진=롱블랙 제공

노트마다 L, B, C, K 등 작성자에 차이가 있다. 이들은 일종의 ‘캐릭터’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니셜과 컬러로 표현한다. 누가 작성했는지에 따라 노트 섬네일 색에서부터 차이가 있고 이들의 관심사와 관점, 스타일이 다르다. 마치 친구가 정리해주는 것처럼 이들이 트렌드를 전해주니 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임미진 대표는 “우리는 기고를 받는 경우에도 우리 스타일에 맞게 많이 고쳐요. 그렇기에 평소에는 글을 잘 안 읽는데 롱블랙글은 쉽게 잘 읽힌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라고 전했다.

커뮤니티 운영하며 소통 활성화
모든 콘텐츠에 구독자 ‘별점’ 평가

롱블랙은 이용자의 ‘상호작용’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유료 구독자들은 ‘슬랙’(협업 전문 서비스)에 접속해 소통할 수 있다. 글을 읽고 나면 하단에 안내 문구를 통해 슬랙을 통한 참여를 유도한다. 슬랙에 접속하면 구독자가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고, 스피커와 대화를 하고, 스피커 역시 추가 자료와 뒷얘기 등을 통해 소통하는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롱블랙 콘텐츠에는 ‘지수’가 있다. 이용자가 개별 콘텐츠마다 5점 만점 척도의 점수를 매길 수 있고, 평균 점수를 띄운다. 임미진 대표는 “소비자 입장에선 콘텐츠에 대한 불만 표시를 할 수 있고,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독자 반응을 읽을 수 있는 창구로 역할을 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 롱블랙 콘텐츠 평가 화면
▲ 롱블랙 콘텐츠 평가 화면

콘텐츠마다 ‘별점’이 있으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임미진 대표는 “뉴스콘텐츠와 지식콘텐츠에는 차이가 있어요”라며 운을 뗐다. “뉴스 콘텐츠는 기사 내용이 아닌 정치적 견해가 기사 피드백에 반영되기에 반응이 신뢰하기 힘든 면이 있지만 롱블랙은 그렇지 않아요. 롱블랙의 노트에는 우리가 봐도 좋은 콘텐츠에 평점이 높고 그렇지 않으면 점수가 낮아요. 신뢰도가 높기에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기자 생활을 할 때는 이렇게 독자 피드백에 손이 떨릴 정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어요. 그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채찍질이라고 생각해요.”

롱블랙은 아직 서비스 초기 단계다. 김종원 부대표는 4개월차를 맞은 롱블랙의 과제로 ‘습관형성 강화’를 꼽았다. “1일 1노트가 우리의 핵심 요소인데, 향후에는 습관형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자주 들어올수록 보상을 하는 등 게임적 요소가 가미된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개편을 통해 고도화를 이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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