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퇴사한 고은지 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노조위원장이 지난 1일 신미희 민언련 사무처장과 조영수 협동사무처장을 상대로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고 전 위원장이 노조를 결성하자 이를 압박할 목적으로 회사가 부당한 인사를 발령했다는 이유다. 민언련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업무 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 내에서 불거진 부당 노동행위 의혹이라는 점에서 향후 인권위 판단에 이목이 쏠린다. 

2019년 4월 홍보 담당으로 민언련에 입사한 고 전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설립한 민언련 노조의 초대 위원장이다. 그가 지난 2년 동안 맡은 업무는 홍보와 관련한 영상 콘텐츠 제작이었다. 고 전 위원장 근로계약서 업무 내용이 ‘홍보’로 명시돼 있음에도 민언련은 지난 8월 그를 회원 관리 및 행사 업무 부서인 참여소통팀으로 발령했다. 인사 전후 사측의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다는 게 고 전 위원장의 주장이다. 

▲ 민언련 노조는 지난해 10월25일 총회에서 노조 설립에 앞장섰던 고은지 활동가(오른쪽)와 조선희 활동가를 초대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사진=민언련 노조 제공
▲ 민언련 노조는 지난해 10월25일 총회에서 노조 설립에 앞장섰던 고은지 활동가(오른쪽)와 조선희 활동가를 초대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사진=민언련 노조 제공

고 전 위원장은 12일 통화에서 “신미희 처장이 내놓은 조직개편안에 내 업무는 사라져 있었다. 업무가 사라진 상황을 만들어놓고 이를 받아들일래, 말래라고 물으면 당장 퇴사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뒤 “내가 원해서 하는 사직이 아니니까 나를 해고처리하고 실업 급여를 받게 해줄 수 있느냐고까지 따져 물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고 전 위원장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회사의 조직 개편을 받아들이면서도 공식 메일 등을 통해 인사발령 통지서를 세 차례 요청했다. 자신이 새 팀에서 어떤 업무를 하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측은 “그런 통지서를 (활동가들에게) 지급한 적 없어서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인사발령 후에도 사측은 필요에 따라 다시 영상 제작 업무를 지시했다고 한다. 고 전 위원장은 “그렇게 급하게 인사발령을 해놓고선 이전 업무를 다시 지시했다”며 “참여소통팀이 지금 행사 관련 업무를 하고 있으니 영상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영상 업무는 더는 필요 없다며 조직을 개편해놓고 영상이 필요하니까 다시 지시를 내리는 건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고 전 위원장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부당한 인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언련 노사는 지난해 12월 임금협상과 단체협약을 놓고 교섭을 시작해 지난 10월 어렵사리 단협을 체결했다. 18차례 교섭 과정에서 사측 교섭위원들이 전원 사퇴하거나 노사가 합의를 이루지 못해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치는 등 민언련 노조 조합원들은 단협을 쟁취하는 데까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어야 했다.

고 전 위원장은 “노사 교섭 과정 등에서 너무 질려 버렸다. 내가 만들자고 한 노조가 아니었다면, 내가 노조위원장이 아니었다면 더 일찍 퇴사했을 것”이라며 “내가 시작한 일이고 이 과정에 힘을 보태준 조합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단체교섭까지는 마무리하자는 생각이 컸다. 우리가 대폭적인 임금 인상이나 복지를 요구한 것도 아닌데 시민단체에서 이렇게까지 노조 활동을 압박해야 하는지 큰 실망을 느꼈다”고 비판했다. 

고 전 위원장은 이번 인권위 진정에 대해 “개인 구제를 바랐다면 지방노동위에 부당 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하면 됐을 것”이라며 “내 바람은 민언련 노조를 했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활동가가 인권위에 부당전보 진정을 넣었다는 사실 자체를 시민단체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언련은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해당 사안의 접수 통지 및 그 어떤 답변 요청을 아직 받은 바 없다”며 “따라서 국가인권위에 제출된 진정 내용과 자료 요청 사항 등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후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다만 일부 언론이 보도한 ‘노조 활동 또는 노조위원장이라는 이유로 한 업무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고 전 위원장은 이와 같은 민언련 답변에 “여러 번 내부에서 말해봤자 바뀔 거 같지 않아 퇴사 후 인권위 진정을 넣는 행동으로 스스로 깨우치길 바란 건데 전혀 깨우치지 못한 거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언련이 내게 보여준 언행은 활동가이면서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억압과 차별로 느껴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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