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숨어있던 폴리널리스트(폴리틱스와 저널리스트의 합성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언론사를 떠나 정당에 가입하는 언론인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폴리널리스트는 KBS 2명, YTN 1명, MBN 1명, G1 1명이다. 총선이 다가오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정광재 MBN 기자는 올해 7월 퇴사했다. 그는 퇴사 당시 미디어오늘에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퇴사했다”고 밝혔다. 이후 정 전 기자는 정치행보를 본격화했고, 10월 국민의힘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최근 책을 출간한 정 전 기자는 의정부 지역 출마를 준비 중이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호준석 YTN 앵커는 18일 퇴사했고, 19일 국민의힘 2차 영입인재단에 선정됐다. YTN은 소속 언론인이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사내 윤리강령을 가지고 있지만, 호 앵커의 국민의힘 행을 막을 수 없었다. 호준석·정광재 두 사람은 퇴직하기 얼마 전까지 방송 진행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소한의 유예기간 없이 정치권으로 직행한 것이다. 언론윤리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KBS에선 언론인 두 명이 총선 출마를 위해 퇴사했다. 김의철 전 KBS 사장 퇴진 운동을 주도해 온 이영풍 전 기자, 이충형 전 인재개발원장이다. 이들 모두 국민의힘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영풍 전 기자는 부산광역시 서·동구에서 출마할 계획이다. 이 전 기자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국가 운영 정상화를 위해 투쟁의 활동 무대를 여의도 KBS 앞 아스팔트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옮길 것”이라고 했다.

이충형 전 원장은 이달 12일 충북 제천·단양 국회의원 선거의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문제는 KBS가 13일이 되어서야 예비후보 등록 전날인 11일 자로 인재개발원장 면직 인사를 냈다는 점이다. 이 전 원장은 충북 제천에 ‘KBS 인재개발원장’ 명의로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언론사 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회사를 나온 경우도 있다. MBC 기자 출신인 허인구 G1방송 사장은 지난 8월11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같은달 14일 국민의힘 강원도당에 입당해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지역민영방송노동조합협의회는 “재직했던 방송사에 치명타는 날리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허 전 사장은 국민의힘 가짜뉴스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으며 춘천 지역에서 총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외부에 공표된 ‘폴리널리스트’는 5명이지만, 총선이 다가오면서 숫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최근 TV조선을 퇴사한 신동욱 앵커의 총선 출마를 전망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앵커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올해 보수성향 시민단체 미디어연대에서 고대영 전 KBS 사장 등과 함께 ‘미디어 알바트로스상’을 받는다. 20일 열리는 미디어연대 시상식 축사는 박성중·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맡는다.

최근 전라북도 지역에서도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지난달 전북도지사 대변인 자리에 임청 전 연합뉴스 전북취재본부장이 발탁된 것이다. 임청 전 본부장은 대변인 임명 두달 전까지 연합뉴스에서 일했으며, 과거 전북기자협회장이었다.

고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7년 한국언론학보에 게재한 논문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에서 “언론인이라고 해서 정치 영역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견해도 있으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을 뜻하는 ‘폴리널리스트’라는 용어는 저널리즘적 가치에 대한 배반을 상징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어 온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세은 교수는 “(언론인의) 정치권 이동을 막을 수 없다면 실효성 있는 기준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실천적 수준의 윤리규정이나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전문직화의 수준이 낮으니 이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적어도 현직에서 직행하는 것은 금지하고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두어 이를 반드시 준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으로 옮기는 것은 개인의 문제지만 그로 인한 타격은 언론계 전체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병동 경성대 명예교수는 2008년 관훈저널에서 “많은 폴리널리스트들이 언론계에서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측면보다는 언론계에서 쌓은 영향력을 정치나 관계를 위해 발휘한다는 측면에서 영입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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