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또 현직 언론인을 대통령실 인사로 선임해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기정 전 YTN 기자를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사표가 수리된 지 사흘 만의 직행이다.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실로 직행한 언론인은 다섯 명이다.

강인선 전 조선일보 부국장은 지난 3월21일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신대변인으로 직행했다. 강 전 부국장은 같은 달 18일까지 정치 관련 유튜브와 팟캐스트 방송을 했다. 이후 그는 지난 5월1일 자로 대통령실 대변인에 임명됐다. 이재명 전 채널A 앵커는 지난 5월8일 대통령실 부대변인에 임명됐다. 이재명 전 앵커 역시 지난 4월30일까지 채널A 뉴스 프로그램 ‘토요랭킹쇼’를 진행했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 국회 팀장, 정치부 차장 등을 지냈다.

▲(위쪽부터) 강인선 윤석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 3월17일 조선일보 유튜브 정치펀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토요랭킹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채널A 토요랭킹쇼 화면 갈무리.
▲(위쪽부터) 강인선 윤석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 3월17일 조선일보 유튜브 정치펀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토요랭킹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채널A 토요랭킹쇼 화면 갈무리.

천효정 전 KBS 기자도 지난 4월20일 사표를 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을 맡았다. 김기흥 전 KBS 앵커는 지난해 6월25일 사표를 제출한 뒤 같은 달 28일 사표가 수리되자마자 윤석열 캠프 부대변인으로 직행했다. 이후 김기흥 전 앵커는 지난 3월부터 인수위 부대변인을 맡았다. 이후 대통령실 대변인실 행정관으로 선임됐다.

언론인들의 청와대 직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3명의 언론인이 청와대로 직행했다. 강민석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2020년 2월3일 퇴직 나흘 만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갔다. 윤도한 전 MBC 기자는 2018년 12월31일 명예퇴직 후 8일 만에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으로, 여현호 전 한겨레 기자도 2019년 1월7일 사표 제출 이틀 뒤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민경욱 전 KBS 문화부장의 당일 ‘인선’이 논란이 됐다. 2014년 2월5일 민경욱 KBS 부장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인선됐다. 당일 오전까지 KBS 보도본부 편집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날 오후에 인선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조순용 전 KBS 편집주간이 퇴직 후 다음 날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임명돼 비판이 컸다.

▲(위쪽부터) 윤도한 청와대 대변인.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위쪽부터) 윤도한 청와대 대변인.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언론에 정치권 직행에 관한 내부 규정이 없는 건 아니다. KBS 윤리강령을 보면 TV 및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 담당자는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 SBS 윤리강령에 따르면 TV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취재·제작 담당자 등 정치 관련 보도·제작 방송제작자는 해당 직무기간과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당가입 등의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 조선일보 윤리강령 역시 정치 및 사회 관련 취재 기자와 부서장은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빈틈을 파고들기도 한다. 일례로 김기흥 전 KBS 기자의 경우 사직 직전 1년 이상 경인취재센터에서 ‘정치 관련 취재’를 하지 않았으니 KBS 윤리강령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할 여지도 있다.

▲김기흥 전 KBS 기자. 사진=KBS 뉴스 갈무리.
▲김기흥 전 KBS 기자. 사진=KBS 뉴스 갈무리.

한 방송사의 국장급 인사 A씨는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였고, 안철수 후보는 과학계 인사,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였다. 현재의 윤리강령에 규정된 특정 부서에 한정해 이동을 막는 건 어떤 경우에는 맞지만,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가이드라인은 오히려 (정치부가 아닌 상태로 직행하는 기자들에게) 합리화만 시켜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딜레마’도 있다. 김덕재 KBS 부사장은 지난 5월 시청자위원회 회의에서 윤리강령을 보다 강력하게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다만 개인의 직업선택, 피선거권 보장을 완전히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윤리강령’을 강화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윤리강령을 만드는 것은 찬성한다. 그러나 폴리널리스트가 되는 걸 막을 수는 없다”며 “폴리널리스트가 됐을 때 누리게 될 불명예가 더 커야 한다. 윤리강령을 위반하며 사직하고 가도 아무 의미 없다. 징계하고 나서 사직을 시키는 등의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이 만든 ‘윤리강령’에 정치부 기자들만 한정한 점은 문제라고 밝혔다.

권순택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윤리강령 위반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순택 사무처장은 “윤리강령은 아무런 제재 효과가 없다”며 “사후에라도 그런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언론사에서 명확하게 짚어야 한다. 오욕의 역사는 기록해야 한다”며 “KBS에서 윤리강령 위반이라고 판단했던 사람이라는 문구가 따라다녀야 한다. 그래야 남겨진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건물 1층 로비에서 답변 도중에 아리랑TV 기자의 “대통령님, 파이팅” 응원을 받고 감사의 답례를 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건물 1층 로비에서 답변 도중에 아리랑TV 기자의 “대통령님, 파이팅” 응원을 받고 감사의 답례를 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정치권에 줄 대는 출입처 문화를 진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한국은 출입처 제도에 익숙해져 있다. 기자들은 매체를 불문하고 선후배라고 부른다. 언론인이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 기관 대변인실로 간다는 건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언론 관리를 염두에 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언론계 인사를 채용할 이유가 없다”며 “단순히 윤리강령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되고 언론계 내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야 할 이슈”라고 말했다.

방송사의 국장급 A씨 역시 “진짜 문제는 출입처 중심의 문화다. 출입처에서 언론인 출신을 채용하고 있다”며 “감시하는 기자들도 있겠지만, 유착을 한 사람들이 폴리널리스트가 된다. 해외에도 폴리널리스트가 있긴 하지만, 한국 만큼은 아니다. 출입처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디어 법과 윤리’ 책에서 폴리널리스트가 양산되는 이유로 △정치 지상주의 문화 △언론 산업의 불안정성과 미래의 불확실성 △산학 협동체제의 부재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전후후박 문화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어려운) 상황에서 폴리널리스트만 비판해선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언론계 전체의 문제로 알고 집단적 차원의 대응 방안을 차분하게 모색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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