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3일 만에 대통령실로 직행한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 내정자(전 YTN 기자)를 두고 ‘폴리널리스트’라는 비판과 함께 부끄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한국기자협회 YTN지회는 폴리널리스트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 사내 취재준칙·윤리강령 등을 개정할 계획이다. 언론인이 정치권에 직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적·윤리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이 내정자가 과거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과 함께 같은 단체에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이기정 전 YTN 기자를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내정했다. 이 내정자는 최근 미국으로 출장을 갔으며 지난달 31일 대학 체조팀을 이끄는 한국계 미국인 코치 인터뷰를 실시했다. 이 내정자는 해당 보도가 나간 날 퇴직했다. 이 내정자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퇴직하기 사흘 전인 지난달 28일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 7월31일자 이기정 당시 YTN 기자의 리포트 화면. 사진=YTN 갈무리
▲ 7월31일자 이기정 당시 YTN 기자의 리포트 화면. 사진=YTN 갈무리

이에 대해 한국기자협회 YTN지회는 3일 성명을 내고 이기정 내정자의 행보를 비판했다. YTN지회는 “(이기정 내정자) 퇴직 전 현직 기자 신분으로 인사 검증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기자에서 고위공무원으로의 직행, 남겨진 이들에게 공개적인 사과나 양해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YTN지회는 “정치부장과 취재1부국장으로 그의 손을 거친 기사가 치우치지 않았다고 이제는 단언할 수 있을까”라면서 “권력의 감시자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간 이의 진심을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부끄러움은 남겨진 이들 몫”이라고 했다. YTN지회는 “잃어버린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건 온전히 우리들 책임이다. 부디, 더는 YTN 이름에 먹칠하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고한석 YTN지회장은 “안귀령 전 앵커가 이재명 캠프로, 홍상표(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윤두현(박근혜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전 보도국장이 청와대로 갔을 때도 참담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취재준칙과 윤리강령을 손보고 있는데 훨씬 더 강하게 하려 한다. 준칙과 강령이 강제력은 없지만, (현직 언론인의 정치권 행을) 억제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계속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YTN 구성원 A씨는 “현업을 끝내고 바로 정치권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YTN 구성원 B씨는 "이기정 기자가 현직에 있었다고 해도 사실상 2선에 물러난 사람이다. (일반적인 폴리널리스트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노종면 YTN 디지털센터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홍보기획비서관 내정자 이기정. 현직에서 권력 품으로 직행하는 폴리널리스트의 계보를 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기정 내정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협회 YTN지회의 비판을 두고 “후배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 선배한테 폴리널리스트가 맞냐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내정자는 “정치권이 아니라 공직으로 가는 것”이라며 “사실 (최영범) 홍보수석이 학교 선배지만 그냥 친했다. 정당을 같이 취재하면서 옛날부터 긴밀하게 좋은 선배인데 7월 초쯤 도와달라고 했고, 7월 중순쯤 반승낙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기정 내정자는 퇴사 직전까지 기사를 쓴 것에 대해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이 내정자는 “이미 출장이 잡혀있었는데 내팽개치고 갈 수 없었다”며 “다른 사람이 가려 했는데 코로나에 걸렸다. 회사에 다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기정, 김건희 친분있는 인사들과 같은 단체서 활동… “강신업 알고 있었다”

이밖에 이기정 내정자가 지난해 활동했던 단체에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지인들이 함께 활동한 사실도 드러났다. 노종면 디지털센터장은 페이스북에서 이기정 내정자가 지난해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조직위원으로 활동했다고 전했다. 노 센터장은 이 단체의 사이트를 제시하면서 “그나저나 언제 이런 활동까지 하셨나. 김건희 팬클럽 회장도 보이고 김건희 봉하마을 동행자도 보이네”고도 썼다. 여기서 김건희 팬클럽 회장은 강신업 변호사를, 봉하마을 동행자는 김량영 코바나콘텐츠 전무를 뜻한다. 

이기정 내정자는 이 사실을 시인했다. 이 내정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조직위원장인 최영묵 목사가 초등학교 친구”라며 “10년 넘게 자원봉사로 도와준 거다. 순수하게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내정자는 “강신업 변호사와 김량영 전무를 당시 알고 있었느냐”라는 질문에 “김량영 전무는 누군지 모르고, 강신업 변호사는 YTN에 출연하던 사람이니까 안다. 당시 정치부에 있었는데, (강신업 변호사가) 정치권에 있었기 때문에 안다”고 했다.

언론계에서도 이기정 내정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일정 기간 유예기간도 없이 홍보기획비서관으로 바로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언론인의 생명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규탄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방송을 공정하다고 믿고 본 시청자들을 우롱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전대식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이기정 내정자의 보도를 봐 온 시청자들에게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상식적인 수준에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전 수석부위원장은 “공직자윤리법을 보면 고위공직자는 퇴임 후 3년간 업무 관련성이 있는 회사에 가지 못한다”며 “기자를 공직자 기준에 포함한다면 퇴임 후 정치·경제 분야로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런 부분까지 논의할 때가 됐다”고 제안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언론단체가 언론인의 정치권 직행을 제한하는 윤리강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언론인의 정치권 행을 법적으로 강제하기는 굉장히 어렵고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언론단체가 윤리강령 등 자율규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아직 정치권 행을 막는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폴리널리스트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고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7년 한국언론학보에 게재한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 논문에서 “폴리널리스트는 언론 전체의 신뢰를 추락시키고, 언론의 권력화를 통해 저널리즘 자체를 왜곡시키기도 하며, 나아가 언론인의 전문직화를 방해하고 직업 정체성과 직업윤리적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세은 교수는 “(언론인의) 정치권 이동을 막을 수 없다면 실효성 있는 기준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실천적 수준의 윤리규정이나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언론인) 전문직화의 수준이 낮으니 이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적어도 현직에서 직행하는 것은 금지하고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두어 이를 반드시 준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으로 옮기는 것은 개인의 문제지만 그로 인한 타격은 언론계 전체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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