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참패한 서울 강서구 보궐선거 이후 대통령실이 ‘소통 강화’ 기조를 밝힌 지 보름이 지났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 가능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고 있다. 대통령실발 “소통” 메시지가 아래를 향한 지시로 수렴되고, 윤 대통령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포용적 행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 스스로 “반성” 언급했지만…참모진에게 소통 주문

▲2023년 10월18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산책 중인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사진=대통령실
▲2023년 10월18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산책 중인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사진=대통령실

대통령의 소통 확대 의지는 지난 16일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으로 전해졌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현안을 보고 받고 국민소통, 현장소통, 당정소통을 더 강화해줄 것을 참모들에게 주문했다”고 밝히면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를 “당정 간에 소통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이틀 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했다. 윤 대통령이 회의 석상에서 참모진에게 주문한 사항이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소통’을 말한 모습은 19일 필수의료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공개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많이 반성하고 더 소통을 하려고 합니다만 소통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추진하면서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뒤이어 대통령은 “속도감 있게 나아가면서 관련 분야에 있는 분들과 소통을 해야 가장 국민에게 유리한 방안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해 소통의 대상이나 방식에 전격적 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을 남겼다.

30일 대통령실이 내놓은 ‘현장 소통’의 성과도 대통령이 아닌 참모진을 통해 제시됐다.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었던 지난 23~25일 사흘간 대통령실 비서실장, 국정기획수석, 정무수석, 국정상황실장,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각 분야별 소상공인 및 단체의 현장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이 모범을 보인다는 차원에서 지난 저의 순방 기간 중에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행정관들이 사흘 간 36곳에서 현장 소통”을 했다며 “국민들은 정부 고위직과 국민 사이에 원자탄이 터져도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도운 대변인을 통해 공개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찾고, 10·29참사 추모대회는 불참

▲2023년 10월27일 유림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사진=대통령실
▲2023년 10월27일 유림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사진=대통령실

윤 대통령 본인은 어땠을까. ‘소통강화’를 지시한 16일 이후 통상의 업무·회의를 제외한 윤 대통령의 주요 국내 일정은 △산업 행사 1건(서울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 개막식) △정치권 만남 2건(국민통합위 및 국민의힘 만찬, 국민의힘 지도부 오찬) △국가 기념행사 1건(제78주년 경찰의날 기념식) △정부 정책 회의 1건(지역완결적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 △현장 간담회(유림간담회) △추도 및 추모식 2건(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 등이다. 정부 정책에 협조적이지 않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만남이 요원한 가운데 일부 언론은 경북 안동 병산서원에서의 지역 유림 간담회를 ‘소통 확대 차원의 경청’ 사례 등으로 소개했다.

▲2023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3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특기할 일정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처음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수사대상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은 ‘보수통합’을 위한 정치적 행보로 해석됐다. 추도위원장이 전임 대통령·정부를 향해 “주사파 운동권 세력” “자칭 ‘남쪽 대통령’” “좌파이념의 씨앗” 등을 운운한 자리였다.

반면 윤 대통령은 유족들이 참석해달라 요청한 10·29 이태원참사 1주기 추모대회에 끝내 가지 않고,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추도 예배를 드린 뒤 서면으로 추도사를 공개했다. 추모대회가 ‘정치적 성격이 짙다’고 규정했던 대통령실은 왜 예배를 택했냐는 질문에 “이태원 사고현장이든 서울광장이든, 아니면 성북동 교회든 희생자를 추도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냈다.

언론 소통 창구 닫은지 오래, 기자회견 여부에 답변 회피

▲2022년 8월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2년 8월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대통령 소통의 기본이라 할 공개 기자회견은 기약이 없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정식 기자회견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취임 초기 소통 성과로 내세웠던 출근길 질의응답(대통령실이 ‘도어스테핑’이라 칭한 약식회견)은 지난해 11월 중단됐다.

최근 대통령실이 ‘소통’을 강조하면서 기자회견 등 대언론 소통 재개에 대한 기대도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그 가능성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을 전후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검토” 중이라고 여지를 남겼던 때보다도 후퇴한 셈이다.

지난 18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자회견이나 타운홀 미팅 등 가능성에 대해 “지금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지만 여러분 의견을 많이 듣고 다양하게, 얼마 전에도 (대통령이) 현장소통, 당정소통 그렇게 소통을 많이 말씀하시지 않았나”라며 즉답을 피했다.

다음날 또 다른 관계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에도 기자회견 개최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왔지만 사실상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여러 이야기를 경청하고 논의를 하고 있다. 타운홀 미팅 관련해서도 기자님들께서 여러 질문을 주셨는데 타운홀 미팅은 그전에도 저희가 국정과제 점검회의차 시도한 바가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전문가와 교수 그리고 기업에 계신 분들 이야기를 주로 들었는데 이번에는 주부와 청년, 어르신과 같은 현장의 정책 수요자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고 답했다.

언론과의 소통 창구를 닫아둔 사이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탄압 논란도 여전하다.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 수사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를 이유로 한 언론인 압수수색(강제수사)으로 이어지고 있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죄를 물을 수 없기에(반의사불벌죄) 윤 대통령의 의사가 관건이다.

야당 만나지 않았던 대통령, 시정연설 사전환담서 ‘대면’

▲2023년 10월31일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31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회 의장단, 여야대표, 5부 요인과의 사전 환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0월31일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31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회 의장단, 여야대표, 5부 요인과의 사전 환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취임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대화는 31일 국회 시정연설을 앞두고 5부 요인이 동석하는 사전 환담에서 이뤄졌다. 제1야당의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과 본인 간의 ‘영수회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의 3자 회담 등을 제안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자리는 지난해 대통령 시정연설과 사전환담을 거부했던 민주당 측의 입장 선회로 이뤄졌고 짧은 만남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소통 강화로 평가하기엔 한계가 있다. 여야가 시정연설을 앞둔 지난 24일 국회 회의장 안에서의 피켓 시위 및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하고, 야당이 일부 협조적 자세를 보인 만큼 윤 대통령이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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