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양당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어느 한 정당의 예비 대선후보들에 대한 지지도의 합이 70%를 넘어서는 이상현상이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다. 반면 그러면서도 그 정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 같다.

심지어 여권의 한 인사는 "그 정당의 후보들은 네거티브 한방이면 끝장날 정도로 취약하다"며 상황에 맞지 않는 호언을 하기도 한다. 불가항력의 우연한 사건(?)으로 인한 막판 역전을 경험했던 지난 두 차례의 기억 때문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세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매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엄청난 변화의 모습들을 전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핵실험이니 뮈니 해서 금방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난리더니 이제는 마치 북미 수교가 임박한 것 같은 분위기가 대세이고, 남북정상회담의 시기가 언제냐에 대한 예측이 난무한다.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며 국론이 극단적으로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한미FTA의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도 언론의 머리를 장식한다.

한나라당 관심은 '당내 경선' 뿐?

국내문제만 해도 그렇다. 끝을 모르게 치솟던 부동산 가격이 정부의 조치 이후 오름세가 꺾이고, 이후 부동산 시장의 추이는 국회의 후속입법에 달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진단하고 있다.

또한 며칠 전(10일자) 아침신문들은 일제히 삼성 이건희 회장의 우려섞인 목소리를 머릿기사로 전하고 있다. "정신 안 차리면 5∼6년 후에는 큰 혼란이 올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삼성을 위시한 대한민국의 경제가 점차 그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로 들린다. 그 진단의 당부는 차치하고 대한민국의 장래와 관련한 중요 아젠다를 던진 것임에는 분명하다.

   
  ▲ 한나라당 김충환 이군현 신상진(사진 왼쪽부터) 의원은 26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삭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류정민 기자  
 
이처럼 하나하나가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사안임이 분명함에도 수권정당임을 자부하며 집권 때까지 상황을 잘 관리하며 시간만 보내면 된다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을 한나라당은 이러한 중대 사안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가 않다.

남북문제, 북미문제와 관련해서는 그 본질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오히려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데 그치고 있고, FTA 문제에 대해서는 표계산이 정확히 끝나지 않았는지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부동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국회를 통과해서 시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조차 일반화된 사외이사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사립학교 재단의 개방형 이사제가 마치 국기를 흔드는 중요한 문제인 양,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빌미로 주택관계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현 정부의 대표적 실정이라고 몰아세우던 의원들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건희 회장의 발언과 관련해서도 예전 같으면 모두 나서서 현정부의 실정으로 규정하며 나름의 목소리라도 냈을 것이 분명한데 그나마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당내 경선과 관련한 공정성 시비와 득실 계산만 무성할 뿐이다.

경선 등 당내 민주주의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얻고자 하는 공당이라면 국가의 장래와 관련된 중요 사안에 대하여서는 자신들의 정확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고, 그 입장에 따라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판단의 자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에서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공학적 계산만 남게 될 것이고 이처럼 진정성이 결여된 정치는 또다시 국민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정치공학적 표계산…국민 외면 볼보듯

   
  ▲ 한상혁 논설위원·변호사(법무법인 정세)  
 
물론 이러한 문제는 비단 어느 한 정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범여권으로 지칭되는 정당 및 그룹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친노가 유리할 것인지, 반노가 유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계산에 의한 이합집산은 이미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떠나버린 민심의 방향을 돌려놓을 수 없다.

그게 우연이건 필연이건 천신만고 끝에 조성된 북미간의 화해분위기를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활용하여 한반도 내에서의 화해와 평화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하고, 미국과의 FTA협상과 관련하여 체결에 대한 찬반의견은 차치하고라도 협상과정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우리의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형성하는 데 주저없이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의 안정 추세를 정착시키기 위한 입법화 작업에 두 팔을 걷어 붙여야 할 것이다. 정치는 계산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으로 하는 것임을 국민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한상혁 논설위원·변호사(법무법인 정세)의 기사 잘 읽으셨나요?
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