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으로 25년을 달려온 오마이뉴스. 그 이후의 슬로건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오마이뉴스가 지난 14일 25주년을 맞아 공개한 다큐멘터리 <오마이, 마이 오마이>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다큐멘터리 속 오연호 대표기자(오마이뉴스 창업자)는 25년을 함께한 슬로건에 대해 “이제 유튜브를 보면 모든 시민이 1인 방송국 사장이 되는 세상이다. 오마이뉴스의 모토가 이제 100% 실현되었다”고 답한다. 그러자 PD는 ‘그럼 다음 슬로건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사실 이 질문은 오마이뉴스만이 아니라 모든 언론이 답해야 하는 질문으로 들린다. 다양한 플랫폼과 AI로 인해 거의 모든 이들이 기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정보를 공급하는 시대, ‘모든 시민은 기자다’처럼 가슴 떨리는 슬로건을 또다시 제시할 수 있을까. 오 대표는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마이뉴스의 모토를 앞으로 어떻게 지키고 다양하게 발전시켜 나갈지가 중요한 과제”라 답한다. 모두에게 속 시원한 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영상 속 오 대표는 AI 시대와 관련한 몇가지 말들을 읊조리며 합정동 오마이뉴스 사옥의 잔디밭을 빙빙 돌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뿐이라고 한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상영회는 3명의 시민기자를 조명한 영상으로 시작됐다. 역사 선생님으로서 20년 넘게 기사를 써온 서부원 시민기자, 3D 프린팅 디자이너로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28살이 된 지금까지 기사를 쓰는 정누리 시민기자, 용산에서 컴퓨터 자영업을 하며 400여 편의 기사를 쓴 안호덕 시민기자.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역시 시민기자들을 조명하며 끝난다. “오마이뉴스의 70% 기사는 시민기자들이 송고한 것”, “지금까지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쓴 시민기자들은 17만 5798명”이라는 헌사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기자를 조명했다. 오마이뉴스답다.

2000년대 초반을 ‘뒤집어 놓은’ 이야기들
시민 기자들 외에 최진봉 언론학자,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조유식 알라딘 대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이 다큐에 출연한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오마이뉴스가 ‘뒤집어 놓은’ 정치판을 회상한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곳곳에 있다. 오연호 대표는 오마이뉴스를 만들기 전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찾아가 ‘딴지일보’ 제호가 참 재미있는데, 자신이 새로운 매체를 만드려고 하니 제호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김어준 총수의 아이디어는 ‘뽕을 빼주마’였다고 한다. 이후 오연호 대표가 개그맨 김국진의 ‘오마이 갓’이라는 유행어를 듣고 ‘오마이뉴스’라는 제호를 만들어낸다. 이를 들은 김 총수는 모토와 잘 어울린다면서도 “촌스럽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창간 초기 김혜원 시민기자는 2005년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고 싶었어요> 기사로 2007년 타임지의 ‘올해를 움직이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다. 그는 뇌졸중인 남편과 유방암 수술을 못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써서 ‘좋은 기사 원고료’ 1700만원을 모았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 무상으로 수술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이끌어냈다.

다큐멘터리는 오마이뉴스의 시민 참여 원고료 도입 등 2000년대 초반 이뤄낸 놀라운 성과들을 열거한다. 특히 2001년 인천공항 기자실 사건으로 인해 출입기자실 제한이 위헌적 요소라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노무현 정부에서 출입 기자실 개방의 계기를 만들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려대 앞 농성 당시에는 총 25신으로 현장을 전하며 ‘인터넷 실시간 현장 중계’를 선보였다. 다만 2000년도 초반의 큰 임팩트에 비해 매체가 너무나도 많아진 최근 오마이뉴스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 인터뷰를 선관위가 제지한 사건도 다뤄진다. ‘인터넷 매체’라는 이유로 경선 인터뷰가 무산되자 오 대표는 이한기 기자에게 후보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옆자리 동행 인터뷰를 하라고 지시했다. 다시 봐도 놀라운 ‘인터넷 매체 차별’을 속속 드러낸다. 이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최초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와 진행하는 장면은 통쾌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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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장면을 꼽자면 2000년생 오마이뉴스 신입기자들이 말하는 오마이뉴스의 조직 문화였다. 이진민 신입기자는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대인데 ‘왜 노동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기자 일을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그 질문에 이 기자는 “개겨도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며 말이다.
이 말에 전선정 신입기자는 “오마이뉴스에서 운영하는 전체 게시판이 있는데 되게 옛날 거부터 다 봤다. 과제 해야할 게 있어서다. 그런데 엄청 싸우신다”며 “그런데 그 싸움의 문제제기를 저연차가 할 때도 있고 고연차가 할 때도 있고, 논쟁이 계속 표출되어 있었고 지금까지 모두가 볼 수 있는 전체 게시판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런 면에서는 오마이뉴스가 좋지 않나 생각한다”고 부연한다. 그래서 잔디밭을 돌며 다음 슬로건에 대해 고민하는 오 대표에게 제안하고 싶다. 다음 슬로건은 ‘개겨도 된다’가 어떤지. ‘뽕을 빼주마’보다는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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