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묘 정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 종묘 정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사실 왜곡과 공격과 선동보다는 차분한 대화가 필요하다.”(오세훈 서울시장)
“문화강국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계획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정부와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고시를 바꿔 종묘 인근 건물의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m로 두배 올린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지난 6일 서울시의회가 문화재 인근 개발 공사를 규제하는 조례를 일방 폐지한 것에 반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제기한 소송을 각하해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했다.

종묘 인근 개발을 두고 오세훈 시장과 이재명 정부 간 갈등처럼 번지고 있다. 보수·경제 언론에선 ‘개발 논리’를 앞세우는데 정작 이명박 정부 문화재청(국가유산청)도 종묘 주변 초고층빌딩에 제동을 건 사실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권고 당시 주변 개발에 제한을 둔 권고사항 등은 주목하지 않는다.

▲ 지난 6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을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오세훈 시장 유튜브 캡처.
▲ 지난 6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을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오세훈 시장 유튜브 캡처.

국가유산청이 ‘태클’ 건다는 일부 언론

매일경제는 관련 보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6일엔 <문화유산과 마천루 ‘공존의 길’ 열렸다…대법 “종묘주변 규제완화 적법”>, <멈춰섰던 세운4구역, 대법원 판결에 ‘박차’ 기대> 등 기사를 통해  대법원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국가유산청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 발표는 비판적으로 다뤘다. 지난 7일 <대법판결 하루만에…문체부 불복 “종묘앞 개발 안돼”> 기사가 대표적이다.

앞서 매일경제는 판결 전인 지난 3일에는 <종묘앞 세운4구역 높이 완화 … 국가유산청은 또 ‘태클’>, <일본은 고궁 앞에 초고층빌딩 세웠는데…한국 유산청은 “무조건 안돼”> 등 기사를 냈다. 해당 기사는 “문화유산 보존과 도심 개발을 균형 있게 실현하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라며 “일본 도쿄 황궁과 국가중요문화재인 도쿄역사 인근 마루노우치 건축물 높이는 150~180m”라는 점을 부각했다. 

▲ 지난 4일 매일경제 기사 갈무리.
▲ 지난 4일 매일경제 기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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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다른 보수·경제 신문에서도 비슷한 태도가 나타난다. 지난 7일 조선일보는 <도 넘으면 문화재 보존 아닌 도시 정상 발전 훼방> 사설을 통해 “문화유산 보호가 아니라 ‘완장 찬 권력’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문화유산 보호도 도를 넘으면 도시의 정상적 발전을 막는 ‘훼방 놓기’가 될 뿐”이라고 했다. 같은 날 한국경제는 <도심 재개발과 현대식 건축물, 문화유산 가치 오히려 높인다> 사설을 내고 대동소이한 주장을 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MB정부도 ‘반대’

문화재 보호와 개발의 균형을 찾을 필요는 있으나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종묘는 1995년 국내 문화재 중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종묘와 관련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유네스코는 경관을 보전하는 것을 중시하는데 권고를 따르지 않게 되면 최악의 경우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 2009년 9월3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당시 문화재청도 종묘 인근 초고층빌딩이 들어설 수 있는 개발에 반대했다.
▲ 2009년 9월3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당시 문화재청도 종묘 인근 초고층빌딩이 들어설 수 있는 개발에 반대했다.

이후에도 세운상가 개발이 추진될 때마다 우려가 제기됐다. 2006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자문기관인 이코머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세운상가 개발계획을 언급하며 “너무 높이 개발할 경우 종묘 주변의 문화적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입장을 냈다.

현재는 이재명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이명박 정부 때 문화재청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2009년 9월 문화재청은 종묘의 맞은편 옛 세운상가 부지에 122m 높이의 36층짜리 고층 건물을 세우려던 서울시의 계획안에 ‘보류’ 결정을 내렸다. 당시 김정동 문화재위원은 “고층 건물로 인해 종묘가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된다면 이는 서울시만의 잘못이 아니라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잘못”이라며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이는 국제적 망신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문화재 옆 개발’ 일본 사례 강조, 세계유산 등재 취소 사례는?

개발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언론사들은 문화재 옆 초고층 빌딩 개발이 이뤄진 일본 사례를 부각하면서도 정작 등재 취소 사례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쾰른 대성당과 런던 타워 인근에 고층 빌딩을 세우려던 독일과 영국 정부는 세계문화유산이 취소될 가능성에 개발 계획을 포기했다. 특히 독일 쾰른 대성당의 경우 2004년 쾰른시가 성당을 마주보는 라인강 건너편에 고층건물을 지으려 하면서 경관을 훼손할 가능성이 제기돼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격하됐고, 지정 해제 가능성이 커지자 성당 주변에 엄격한 고도제한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계곡의 경우 유네스코의 경고를 무시하고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새 다리를 만들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됐다.

▲ 국가유산청이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갈무리.
▲ 국가유산청이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갈무리.

일본 사례와 직접적인 비교도 적절하지 않다. 일본 도쿄에 황궁과 근대역사 주변에 초고층 빌딩 개발을 한 건 사실이지만 이들 문화재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고, 따라서 유네스코 차원에서 경관 보전에 대한 요청을 한 사실도 없다. 

오세훈 시장은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노후화된 세운상가 주변을 보여주며 개발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지적했는데, 초고층 빌딩을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 개발을 하지 말라는 의미도 아니다. 국가유산청은 정비계획상 용적률 660%는 이미 합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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