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자마자 속도를 내고 있는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언론인 출신 언론법학자와 언론단체가 비판했다. 4년 전 언론계 반발에 부딪혀 폐기된 법안을 충분한 논의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며, 이런 방식으로 가면 언론자유가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PD연합회장도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현행법 문제와 함께 논의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SBS 보도본부장 출신이자 현재 한국언론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20일 밤 미디어오늘에 보낸 SNS메신저 답변에서 민주당의 신속한 징벌적 배상제 도입 방침을 두고 “언론의 불법적 보도에 대한 배상액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전체적인 배상 범위에는 문제가 없는지, 정말 문제가 있어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정확하게 효과를 발휘하는 규제인지 등을 면밀히 연구해서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면서 “다 논의가 됐으니 그냥 법을 만들겠다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비판했다. 심 교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악의적인지, 기존의 오보에 대한 대응과 단순히 금액만 달라지는 건지 등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과 중복(이중) 처벌의 우려를 두고 피해 구제의 실효성이 없으니 징벌적 배상책임을 묻는 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라는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등의 논리를 두고 심 교수는 “이런 구조적인 부분이 문제”라며 “형사책임도 지고, 민사 책임도 있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범위는 넓고 면책 사항은 좁거나 애매하다”라고 진단했다. 심 교수는 “초상권, 사생활, 음성권 등의 인격권 보호 범위도 상대적으로 넓고, 공인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피해 실효성이 없는 게 아니라 소송 낼 수 있는 범위가 넓으니, 배상도 낮은 것”이라며 “언론중재 신청만 하면 75%가 사실상 만족을 할 수 있는 결론이 나는 건 어지간하면 신청만 하면 이긴다는 거다. (이러니) 손해배상도 평균액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고의적 왜곡 및 허위 정보는 신속하게 수정하고 책임도 물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을 두고 심 교수는 “(민주당과) 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유튜브의 징벌적 손배 책임 적용 방안에는 “유튜브도 문제가 되는 부분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면서도 “다만 전체 틀에서 보는 게 필요하다. 언론이냐 아니냐보다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는지로 가는 게 바뀐 미디어 환경에 비추어 맞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의 필요성이 4년 전보다 늘었는지를 두고 심 교수는 ”언론 환경이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이 그대로 반영되는 정치판이 된 것은 더 심해졌다”라면서도 “징벌제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 필요성이 늘었다고 생각할 리는 없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될 때 미칠 영향을 두고 심 교수는 “당연히 지금처럼 하면 언론자유를 훼손하겠죠”라며 “누구든 권력자는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보도를 징벌제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 교수는 “야당은 친여당 언론을 상대로 징벌제를 적용하려고 하겠죠. 각자 생각하는 악의적 보도가 다르니까.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상대로 한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의 책임 있는 보도 문화는 자율적 규제가 제도적으로 작동할 때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도 이날 저녁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민주당의 신속한 도입 추진에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이미 (4년 전)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 안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구체적인 안(법안)조차도 안 나온 상태에서 이걸 한 달 안에 한다는 것은 우려스럽다”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징벌적 손배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를 어떻게 할지, 보도의 입막음용 ‘전략적 봉쇄 소송’ 예방을 위한 제도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언론특위가 강조하고 있는 ‘언론 입증 책임 전환’(언론이 자기 보도가 사실임을 입증하도록 책임을 부여하는 것) 문제도 논란거리다. 김 위원장은 언론이 입증 책임을 지도록 책임을 전환한다거나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면서도 해당 언론의 고의 중과실 책임이 있다고 추정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는 처벌의 강도는 높이면서 원고의 입증책임 완화해 주는 것으로,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 언론 위축 효과만 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현행 판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허위의 내용을) 사실로 단정한 보도의 경우 언론 피해자가 입증할 방법이 없으면 입증책임을 언론에 부여한다”라며 사법부가 이미 판례로 정립해 놓고 있는데, 이를 아예 인위적으로 입법으로 하겠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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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형사처벌 제도는 그대로 둔 채 징벌적 배상 책임까지 묻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지나치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부당한 언론사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나 취재원 보호 제도 논의를 같이해야 맞는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 강력히 얘기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했다. 김 위원장은 “언론자유 보호를 위한 측면을 간과하고, 처벌에만 초점을 두고 밀어붙이면, 균형을 잃고 악용 소지가 커지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론현업인 단체장인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은 21일 미디어오늘에 보낸 SNS 메신저 답변에서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는 현행 법률(형사상 명예훼손과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과 언론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률들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언론 종사자와 소비자들을 모두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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