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산불 닷새째인 3월26일 공무원들이 방화선을 구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산불 닷새째인 3월26일 공무원들이 방화선을 구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내저었다. 자치2부장이었다. 산불 현장 취재를 총괄하는 부서장인 그에게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라는 말이 나왔다. 편집국장을 비롯한 데스크들에게 운을 띄웠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일순간 조용해진 사무실, 다들 귀를 쫑긋 세운 듯했다.

“괴물 산불이라뇨.”

마우스를 따닥따닥거리며 자치2부장이 말을 이었다. 모니터에는 어느 한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괴물 산불’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어느 누구는 헛웃음을 쳤다.

경남 산청, 경북 의성 산불이 확산하면서 ‘괴물 산불’이라는 조어가 등장했다. 지난달 24일 오전 11시52분, 문화일보가 <20도 초여름 날씨·강한 서풍… ‘괴물 산불’ 키웠다>는 제목을 처음 내걸었다. 같은 날 밤 9시26분 연합뉴스는 <사흘째 확산 의성 ‘괴물 산불’ 안동까지 번져>라는 기사를 냈다. 특히 연합뉴스는 다음날 이 표현을 다섯 번 쓰는 등 이후 3월31일까지 27번 사용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특성상 다른 매체에서도 괴물 산불이라는 표현을 많이 차용한 듯 하다. 너나할 것 없이 무분별하게 이 표현을 썼다.

물론 대형 산불의 위험성과 위력을 전달하는 데에 강한 표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괴물 산불’이라는 표현은 단지 과장된 비유로 끝나지 않는다. 언론사가 선택한 단어에는 그 언론사의 시선과 태도가 담긴다. ‘괴물 산불’이라는 표현은 산불 피해 당사자를 획일화하고, 보도의 자극성을 증대하며, 책임 소재를 흐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먼저, 이 표현을 본 지역 신문 기자들이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헛웃음을 친 근저에는 기시감이 있다. 그것은 서울 대형 매체들이 지역에서 일어난 초유의 재난을 딱하게 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서울은 보통 지역에 큰 사건이 터졌을 때만 주목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비슷한 늬앙스의 문장들이 클리셰처럼 나온다. ‘참혹한 현장에 속수무책이며 불쌍하고 딱한 주민들’이다. 재난 현장을 온전히 전하려는 마음, 재난의 심각함을 알리고 싶은 마음, 그 선의는 십분 이해한다. 오히려 너무 현장에 공감해서 문제라면 문제다. 현장피해 당사자들 입에서 나올 법한 표현을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했을 때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이 있다. 결국 산불 상황이 수습되는 국면에서는 서울 중심으로 다시 돌아간다. <‘괴물 산불’ 피해 4만8150ha… 서울 면적 80% 태웠다>와 같은 제목처럼 말이다.

‘괴물’이라는 표현은 공포심을 자극한다. 산불을 종잡을 수 없는 괴물에 빗대면서, 점점 표현 수위는 올라간다. 처음엔 대형 산불이었고 그다음엔 초대형 산불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괴물 산불이라 일컫더니 ‘역대급 불지옥’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서울신문은 ‘불마귀’라고도 칭했다. 이처럼 점점 강한 수사를 사용하다 보면, 정작 언어의 힘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괴물 산불이라는 표현은 과학, 행정 언어 체계와도 맞지 않는다. 기상청, 산림청, 소방청 어디에서도 ‘괴물 산불’ 같은 용어는 쓰이지 않는다. 그저 감정을 앞세운 언론의 비공식 표현일 뿐이다. 이는 정보 전달의 명확성을 해치고,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괴물 산불’이라는 표현은 산불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현상으로 만든다. 인간이 야기한 산불인데, 이를 ‘괴물’이라는 상상의 생명체로 치환하는 것은 주술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책임 소재를 흐리게 만든다. 인류가 초래한 기후 위기, 정부의 대책과 대응 등 따져볼 문제들을 가리는 자극적인 조어다. 이는 인간을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통제불가능한 산불이 번져가는 비극적인 결과와 현상에 초점이 맞춰지게 한다.

이때 주목 받는 기사는 ‘진단’과 ‘해설’이 아니라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다. 괴물같은 산불에 피해를 입은 불쌍한 지역 주민들, 산불에 뛰어들어 어르신들을 구조해낸 의인들, 산불 현장에서 고생하는 ‘영웅들’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다. 골치 아프고 복잡하게 얽힌 정책적인 문제나 구조적인 문제는 유려한 서사에 밀린다. 이것도 다루고 저것도 다루면 되는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가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의제는 한정돼 있다. 무엇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냐의 문제다.

재난 기사에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단어가 아니다. 뇌리에 박히는 조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재난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순간, 공동의 책임을 외면하게 된다. 언론사는 단어를 세심하게 다루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제아무리 기사에 객관적인 정보를 담아도 독자 처지에서 기억에 남는 건 ‘괴물 산불’ 그 자극적인 단어 하나뿐일 수도 있다. 산불은 괴물이 아니다. 산불은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고,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다. 언론의 언어가 그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 3월31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기곡리 한 마을이 산불에 초토화가 된 가운데 마을 주민이 폐허가 된 주택을 복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3월31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기곡리 한 마을이 산불에 초토화가 된 가운데 마을 주민이 폐허가 된 주택을 복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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