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로 와주십시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국민들이 이 자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약 30분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켜고 이렇게 말했다. 차를 타고 국회로 가는 동안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고 “몸조심 하세요”라는 댓글이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이 영상의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는 17만 명, 누적 조회수는 10일 기준 270만 회에 달한다. 실제로 국회 앞 현장에는 이재명 대표의 방송을 보고 왔다는 시민들이 다수 있었다.

김성회 민주당 의원도 3일 밤 비상계엄 직후 라이브 방송을 켰다. “지금 국회 담벼락은 문을 다 봉쇄한 거 같습니다. 밖에선 고성을 지르고 있고 저는 대중교통으로 ‘담치기’(월담)을 해서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김 의원의 설명과 함께 방송엔 민주당 의원들이 당혹스러워하며 급하게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일분일초가 급박한 순간, 우원식 국회의장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계엄에 대한 입장을 냈다. 우원식 의장은 라이브에서 “모든 국회의원께서는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란다. 특별히, 군경은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방송사 카메라가 도착하기 전 계엄 현장은 유튜브 라이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이재명 대표가 담을 넘는 순간과 우원식 의장이 담을 넘는 사진은 일종의 ‘밈’(meme)이 돼 각종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 퍼져 있다. 경찰에 가로막힌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화를 내는 모습이나 시각장애인인 서미화 민주당 의원이 담을 넘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따로 방송을 보지 않아도 비상계엄의 폭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사 중 비상계엄 현장을 가장 잘 전달했다고 평가받는 오마이뉴스도 유튜브 채널(오마이TV)을 통해 상황을 전달했다. 최고 동시 접속자가 3일 밤~4일 새벽 66만 명에 달해 MBC 유튜브 채널(53만 명)을 뛰어넘었다. 오마이TV는 계엄 직후 유튜브로 이재명 대표의 라이브를 송출한 뒤 국회 정문이 봉쇄된 장면과 본청 현관, 본회의장, 로텐더홀을 입체적으로 생중계했다.

ICT(정보통신기술) 인프라가 발달한 한국에서 비상계엄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게 아닐까. 정치인뿐 아니라 국회에 모인 시민들과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켜고 현장을 촬영했다. 계엄군의 복장과 행동 등 작전을 수행하는 움직임이 모두 포착됐다. 유현재 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계엄의 기본은 동원된 사람들의 ‘익명화’”라며 “하지만 지금은 그 ‘익명화’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말했다.
모두가 지켜본다는 걸 아는 상황에선 무력 행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현재 교수는 “계엄이 그나마 성공하려면 (폭력을) 누가 했는지 몰라야 하고 어디로 가는지 몰라야 한다. 구금 장소, 방법 등 당국이 정보 독점을 해야 하는데 정치인들도 그렇고 시민들, 보좌관들이 다 핸드폰을 켜고 찍는다. 미디어의 ‘즉시성’이 보장된 상황에선 계엄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통신망을 끊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통화에서 “망을 끊는 건 국가기관 산업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가 너무 크다”며 “안보 상황 때문이라도 (인터넷을) 끊을 수 없다. 당장 끊기면 한미연합사가 공동작전을 펴는 데 지장이 생긴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국 상황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심영섭 교수는 “증시도 문을 닫게 될 텐데 그러면 사실상 경제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라며 “계엄 자체가 극단적인 상황이니 고려할 순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계속 (정부가) 버틸 수가 있었겠나. 절대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엄군이 통신망을 차단해 이동통신사 영업에 불이익을 준다면, 당장 외국기관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가 입는 손실에 대한 국제소송과 무역분쟁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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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설령 군 통솔이 대통령 의도에 따라 됐다고 하더라도 비상계엄은 미디어 전파로 실패했을 것이란 결론이다. 전문가들은 비상계엄을 주도한 인물들이 2024년의 미디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유현재 교수는 “솔직히 말하면 시뮬레이션을 해봤나 싶을 정도”라며 “그 짧은 시간에 국회에 그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었던 것도 미디어의 힘이다. 일반인들이 더 위에 있는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인데, 이 시스템을 미리 알았다면 계엄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심영섭 교수는 “1980년 언론통제가 가능했을 때와 지금은 언론인 숫자부터가 다르다. 설령 지금 언론을 통제했다 하더라도 유튜브나 틱톡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제할 수 있겠나. 그냥 영상을 올려버리면 끝”이라며 “짧은 숏폼 하나가 수많은 기사보다 파급력이 클 수 있는 세상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군 일부만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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