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양대 보도전문채널 YTN·연합뉴스TV가 대격변을 맞이했다. 공적 성격의 기존 최대주주(한전KDN, 마사회, 연합뉴스)가 물러나고, 민간기업·학원이 1대 주주에 오를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양사 노동자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최대주주 변경 심사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방통위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심사를 진행 중이어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YTN·연합뉴스TV 최대주주에 오를 예정인 유진그룹·을지학원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대주주가 어떤 역사가 있고, 경영 방침이 어떠한가에 따라 언론사 성격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호반건설이 최대주주가 된 서울신문은 급격한 논조 변화를 보이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5월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와 함께 서울신문 논조를 분석한 결과, 2021년 말을 기점으로 사설의 보수성이 강화됐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인수한 시점이다. 대주주가 언론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 YTN 사옥(왼쪽)과 유진그룹 본사. ⓒ 연합뉴스
▲ YTN 사옥(왼쪽)과 유진그룹 본사. ⓒ 연합뉴스

YTN 최대주주 신청에 나선 유진이엔티는 유진기업이 51%, 계열사인 동양이 49%를 출자한 특수목적법인이다. 유진그룹의 성장 과정은 방송사업과 거리가 멀다. 유진그룹은 1954년 제과사업을 시작으로 레미콘·건자재 등 건설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8년 서울증권을 인수해 유진증권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1997년 부천·김포·은평 지역을 기반으로 한 케이블방송 드림씨티방송을 운영하고 2005년엔 상장까지 준비했으나 이듬해 대우건설 인수를 이유로 방송사업 지분을 CJ케이블넷에 매각했다. 17년이 지났으니 사실상 방송사업과 관련 없는 회사로 볼 수 있다.

우선 유진이앤티의 현금 창출 능력은 큰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진이앤티가 준비해야 할 YTN 지분 30.95% 매입 대금은 3199억 원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24일 낸 보고서에서 유진기업이 인수대금 마련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재무 부담을 질 수 있으나, 이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유진그룹에 불거진 논란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디어오늘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취재한 결과, 유진기업은 지난 9월 홍성재 노조위원장을 해고했다. 노조 설립 1년 만이다. 해고 사유는 출입기자 개인정보 침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직장 내 괴롭힘 등이며 홍 위원장은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유진기업은 수차례 사실조사를 거쳤고 법률적 정당성·공정성을 갖췄다는 입장이지만, 홍 위원장은 징계 사유가 터무니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에 따르면 유진기업 노조가 지난해 9월 노조설립 소식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홍보팀이 언론사에 삭제 요청을 했다고 한다. 지노위·중노위는 이 같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판단한다고 판단했다. 유진기업은 노사협의회 미설치, 직원 수당 미지급 등으로 행정지도·시정지시도 받았다.

▲한국ESG기준원의 유진기업, 동양 평가 점수.
▲한국ESG기준원의 유진기업, 동양 평가 점수.

오너리스크도 상당하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2014년 유진그룹 내사 무마 대가로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에게 수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방송법에 따르면 방통위는 최대주주가 될 법인·주주의 법령 위반 및 행정처분 내역, 소송 현황 등을 평가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ESG’ 점수도 바닥권이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유진기업과 동양의 ESG 평가점수는 ‘매우 취약’에 해당하는 D등급이다. 유진기업은 사회·지배구조 부문에서 D등급을, 동양은 환경·부문에서 D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매우 취약한 지속가능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체제 개선을 위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상태”를 의미한다.

연합뉴스TV 대주주 등극으로 “재정적 효과” 기대하는 을지학원

기존 연합뉴스TV 2대 주주였던 을지학원은 최근 을지병원·소액주주 주식을 매수해 1대 주주에 등극했다. 을지학원이 확보한 연합뉴스TV 지분은 30.08%로 기존 1대 주주였던 연합뉴스(29.86%)를 뛰어넘었다.

을지학원이 연합뉴스TV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연합뉴스TV 대주주 지위가 을지학원에 유·무형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우 이사(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장)는 이달 10일 열린 을지학원 이사회에서 “최다액 출자자 승인을 받는다면 공정성과 공익성이 우선시되는 방송을 실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법인에 기여하고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을지학원은 현재 연합뉴스TV 지분을 유지한다면 매년 배당수익으로 1~2억 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을지학원 8차 이사회 회의록.
▲을지학원 8차 이사회 회의록.

을지학원은 연합뉴스TV 대주주 지위를 통해 억은 수익으로 학교법인 수익사업을 다각화하고, 을지대학교 법정부담금을 충당하겠다고 했다. 을지학원은 연합뉴스TV가 위탁 운영하는 직업방송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이뤄내겠다고 했지만, 직업방송 사업은 내년 종료될 수 있다. 정부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을지학원은 지난해 연합뉴스TV 경영권을 두고 연합뉴스와 갈등을 벌였다. 을지학원이 주도한 성기홍 대표이사 해임안건은 이사회에서 부결됐으나, 을지학원 등 주주들은 이사 해임·회계장부 열림 가처분을 제기했다. 방통위 심사 결과와 관계없이 연합뉴스TV 경영권을 둔 분쟁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

을지병원 내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차봉은 보건의료노조 을지병원지부장은 2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인력 채용 부분이나 시설 투자를 얘기하면 항상 ‘병원 경영이 어렵다’는 말을 해왔다. 직원들이 감내해 왔는데 (연합뉴스TV 지분 인수)사건이 터지니까 허탈감이 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차봉은 지부장은 을지학원이 연합뉴스TV 대주주로 등극하는 것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11월27일 연합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11월27일 연합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이번 사건의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연합뉴스는 을지학원에 오너리스크를 제기하고 있다. 을지재단 박준영 이사장은 2017년 마약성 진통제 투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박 이사장은 치료 목적으로 약을 투여했다고 밝혔고, 을지재단은 입장문을 내 “이유를 불문하고 보건의료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1심에선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2심·3심에서 무죄가 결정됐다. 연합뉴스는 을지학원이 연합뉴스TV 지분을 인수하자 관련 보도를 냈고, 을지학원 측은 “법적 검토를 의뢰한 상황이고, 실제 질병에 의한 처방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보도전문채널 대주주 변경이 보도 방향과 직결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대주주 변경은 보도에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 소유구조는 편성·콘텐츠와 직결되는 문제”라면서 “뉴스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사의 대주주는 당연히 공공성을 가져가야 한다. 다만 현 정부에선 이 같은 기준들이 무너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재 YTN·연합뉴스TV 최다액 출자자 변경 심사가 전례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최소한 법대로,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미디어오늘에 “언론사를 기업체가 인수하게 됐을 때, 이전보다 좋아지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신문사도 어떤 경영진이 오느냐에 따라 보도가 달라지는데, 준공영 성격을 가진 보도전문채널은 더 큰 우려가 된다”고 했다. 김 소장은 보도전문채널 민영화에 대해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신뢰도가 높은 방송사인 만큼, 민영화가 된다면 공영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일반 공공기관 민영화와 같은 수준의 심각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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