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학원의 연합뉴스TV 대주주 등극 시도가 방송통신위원회의 보류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보도전문채널의 대주주가 변경될 위기가 멈췄지만, 연합뉴스TV 구성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기존 대주주인 연합뉴스의 연합뉴스TV ‘착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합뉴스TV가 연합뉴스로부터 독립하길 원하고 있다.

을지학원이 연합뉴스TV 지분을 추가 매입한 지난달 중순,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 사이 온도 차이가 있었다. 최대주주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연합뉴스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을지학원 박준영 이사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연이어 냈다. ‘자사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음에도 강공에 나선 것이다. 연합뉴스 전략기획실은 지난달 16일 사내 공지를 통해 을지학원이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적대적 인수’에 나섰다고 비난했다.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연합뉴스TV 사옥.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연합뉴스TV 사옥.

반면 연합뉴스TV 구성원들은 즉각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TV 구성원들은 기존 대주주인 연합뉴스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TV가 연합뉴스로부터 독립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 연합뉴스 대표이사가 연합뉴스TV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으며, 주요 임원 역시 연합뉴스 출신인 경우가 상당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TV지부가 행동에 나선 건 지난달 말이다. 연합뉴스TV지부는 투표를 통해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설 것을 결정했고, <연합뉴스TV의 미래는 이제 우리가 결정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을지학원에 대한 비판이 주 내용이었지만, 연합뉴스를 향한 경고도 있었다. 지부는 사태의 1차 책임이 연합뉴스에 있다면서 “을지학원의 자격 미달만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불공정·불합리한 양사 협약 관계를 돌이켜보고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TV지부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보류 결정이 나온 뒤인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이제야 연합뉴스에 종속된 회사가 아닌 관계사 연합뉴스TV로서 불공정·불합리한 협약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양사 간 협약 중 불공정한 부분을 즉시 개정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투명한 경영 체제를 구축하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연합뉴스와의 관계 재정립… “연합, 뼈저리게 반성해야”

이처럼 연합뉴스TV 구성원들은 연합뉴스와의 관계 문제를 ‘을지 사태’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연합뉴스에 대한 불만과 문제점이 이번 을지학원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TV 구성원 A씨는 미디어오늘에 “검증되지 않은 자본 권력이 들어온다는 데 큰 거부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라며 “전반적으로 대주주가 바뀌는 일이 없어 다행스럽다. 하지만 온전히 연합뉴스 편을 들기엔 지금까지의 (연합뉴스) 행태가 너무나 심각했다”고 했다.

연합뉴스는 연합뉴스TV에 매년 ‘협약금’ 명목으로 150~180억 원을 가져간다. A씨는 “이 돈으로 TV 투자를 늘렸어야 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돈을 가져간 건지 지금도 의문”이라며 “을지의 반발도 이 지점에서 이해가 된다. 연합뉴스와 지분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데, 연합뉴스는 돈을 받아 가고 2대 주주는 한 번도 돈을 못 받았던 상황”이라고 했다. A씨는 “자기 배만 불리다가 을지학원이 들어오니 화들짝 놀란 연합뉴스의 행태에 거부감이 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TV 구성원 B씨는 미디어오늘에 “을지라는 민간기업이 보도전문채널 지분 매입을 전격적으로 한 건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면서 “다만 연합뉴스의 연합뉴스TV 착취 구조가 길었던 것은 맞다. 연합뉴스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성기홍 연합뉴스·연합뉴스TV 대표이사는 최근 연합뉴스TV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구성원 처우 개선·독립성 강화를 약속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매번 같은 말만 반복하는데,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처우 개선과 독립성 강화를 약속했다”며 “우리 사장임에도 연합뉴스의 이익을 우선하다 보니 빚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연합뉴스TV를 착취해서 연합뉴스를 유지하거나 키우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했다. B씨 역시 “연합뉴스TV 구성원 대부분은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공염불에 가깝다고 본다. 이제는 구체적인 계획을 보여야 하는데,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합뉴스TV 구성원 C씨는 미디어오늘에 “(사장) 메시지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문제는 이런 글을 쓴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안한 것들이 실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가기 전에 차기 경영진이 약속을 계속 이행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C씨는 “현재는 연합뉴스가 추천한 이가 사장이 되는 구조인데, 연합뉴스 입김을 배제하기 힘들다”며 “미덥지 않아 하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다. 사장 선임에 대한 제도개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기홍 대표이사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연합뉴스TV지부는 4일 구성원에게 공유한 글에서 “(성기홍 대표이사 글은) 구체적인 방안은 없고 원론적인 답변뿐이어서 아쉽다”며 “사측에 엄중히 경고한다. ‘사장의 약속’을 항상 되뇌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맞게 (노사협의회·임금)협상장에 앉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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