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이라는 정치권의 공세 이후 자금 지원이 중단된 SNU팩트체크센터가 그간 해오던 다수의 팩트체크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확인됐다. 32개 언론사와 제휴를 맺으며 팩트체크 시스템을 구축해 온 센터의 역할이 축소되면 한국 내 팩트체크 저널리즘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SNU팩트체크 로고
▲ SNU팩트체크 로고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SNU팩트체크센터는 지난 8월말 네이버 지원 중단 이후 △팩트체킹 취재보도 지원 사업 △팩트체크 인턴십 △팩트체크 우수상 및 대상 등의 사업을 더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로부터 매년 1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받던 SNU팩트체크는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후원처를 찾는 중이다.

[관련 기사 : 네이버 ‘SNU팩트체크’ 지원 중단…가짜뉴스 프레임 압박 통했나]

SNU팩트체크센터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32개 언론사들과 협업하는 비영리 팩트체크 플랫폼이다. 언론의 팩트체크 보도를 비교할 수 있고 근거자료를 명시하도록 하는 등 자체적으로 요구 기준을 마련해 한국의 팩트체크 생태계 보장 역할을 해왔다. 각 언론이 제출한 팩트체크 기획취재를 선정해 지원하고, 인턴을 모집해 교육 후 언론사에 배치하는 등 지원 사업도 다수 진행했다.

네이버의 지원 중단으로 센터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한국의 ‘팩트체크 저널리즘’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팩트체크 전문매체 뉴스톱의 김준일 수석에디터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SNU(팩트체크)에서 여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팩트체크 기사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팩트체크가 많이 안 나오면 (센터가) 언론사에 독려도 하고 (팩트체크) 회원사 유지 자격으로 팩트체크를 일정 기간에 몇 개 써야 된다는 규정도 만들었다”며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언론 자율에 맡기면 팩트체크의 양적, 질적 측면 모두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 SNU팩트체크 센터 갈무리. 판정 결과가 전면에 명시돼 있다.
▲ SNU팩트체크 센터 갈무리. 판정 결과가 전면에 명시돼 있다.
▲ 새롭게 바뀐 네이버 팩트체크 페이지. SNU팩트체크 플랫폼을 매개로 해 판정 결과가 명시됐던 과거와 달리 각 언론이 게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새롭게 바뀐 네이버 팩트체크 페이지. SNU팩트체크 플랫폼을 매개로 해 판정 결과가 명시됐던 과거와 달리 각 언론이 게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네이버는 SNU팩트체크 지원 중단에 이어 지난달 26일 네이버 뉴스 섹션 내 SNU팩트체크 서비스 운영도 종료했다. SNU팩트체크는 지금까지 제휴 언론사에 근거자료 명시, 기사 수정 이유·시간 명시, 팩트체크 판단 결과 명시 등의 원칙을 요구해왔다. 제휴 언론이 기준에 못 미치는 팩트체크 기사를 올리면 모니터링 후 규칙 준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 기사만 네이버에 게재될 수 있었지만 이젠 각 언론이 자의적으로 자체 팩트체크 기사를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준일 에디터는 ‘팩트체크 어뷰징’을 말했다. 팩트체크로 인정받지 못하던 내용의 기사들이 무분별하게 게재될 우려다. 김 에디터는 “‘팩트체크’ 타이틀을 달면 더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SNU팩트체크 회원사가 아니더라도 네이버에 올릴 수 있게 됐으니 내용이 부족하더라도 ‘팩트체크’라고 올릴 수 있다”며 “앞으로 팩트체크 기사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SNU팩트체크 제휴 언론사에서 팩트체크 코너를 맡았던 A기자는 “출처 명시, 공신력 있는 취재원 등의 원칙을 안 지키면 팩트체크가 단순 기자의 ‘뇌피셜’로 흐를 위험이 있다. 사실 판단 결과가 없는 가벼운 기사여도 ‘팩트체크’라는 이름을 달 수 있다”며 “그동안 SNU팩트체크가 IFCN(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이 제시한 일련의 과정들을 요구하면서 기자들이 맞추려는 노력을 했다. 그렇게 팩트체크 퀄리티가 유지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 SNU팩트체크 홈페이지에 명시된 제휴 언론사들.
▲ SNU팩트체크 홈페이지에 명시된 제휴 언론사들.

‘팩트체크’란 단어는 일상에서 쉽게 쓰일 정도로 보편화됐다. 하지만 언론에 ‘팩트체크 기사’는 일상적이지 않은 장르다. 팩트 전달을 넘어 언론이 직접 팩트에 대한 ‘판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판정 결과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한 기사에 많은 취재와 까다로운 조건들이 요구되는 이유다. 조회수가 수익과 직결되는 언론 환경상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팩트체크 기사는 언론에게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방송사에서 팩트체크 기사를 담당했던 B기자는 통화에서 “언론사 내부에선 팩트체크 기사를 쓸 요인이 별로 없다”며 “밖에선 팩트체크를 매우 중요하고 저널리즘의 대안이라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언론 현장에선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팩트체크를 부담스러워 한다. 취재도 더 깊게, 시간도 더 많이 들어가는데 그만한 여력이 없는 언론이 많다”고 말했다.

SNU팩트체크센터의 인턴십 등 지원 사업이 끊기면 팩트체크 코너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A기자는 “인턴이 사라지면 팩트체크를 없애는 곳이 무조건 생긴다고 본다”며 “인턴을 (SNU팩트체크에서) 지원해주니까 팩트체크에 관심이 없던 곳도 ‘이것 저것 써보자’는 게 있었다. 더군다나 현재 팩트체크 자체가 편향됐다고 공격받는 상황인데 더더욱 어려운 팩트체크를 쓰려는 노력을 할까”라고 말했다.

‘가짜뉴스’ 잡겠다면서 ‘팩트체크’ 공격하는 국민의힘

▲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은 지난 1월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네이버가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60억 원의 뒷돈을 대고 ‘뉴스 영역’에 판을 깔아준 SNU팩트체크센터, 한국언론학회의 팩트체크 사업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가짜뉴스 선동자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유튜브 캡처
▲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은 지난 1월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네이버가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60억 원의 뒷돈을 대고 ‘뉴스 영역’에 판을 깔아준 SNU팩트체크센터, 한국언론학회의 팩트체크 사업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가짜뉴스 선동자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유튜브 캡처

SNU팩트체크는 2017년 탄생 이후 지속적으로 정치권 압박에 시달렸다. 지난 1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은 “네이버가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60억 원의 뒷돈을 대고 ‘뉴스 영역’에 판을 깔아준 SNU팩트체크센터, 한국언론학회의 팩트체크 사업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가짜뉴스 선동자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은 2017년 ‘SNU팩트체크’가 대선 당시 홍준표 후보의 당선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며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과 윤석민 당시 SNU팩트체크위원회 위원장을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2019년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한국당이 문제 제기한 게시물이 다른 게시물과 마찬가지로 제휴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정했고,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는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소를 기각했다. 형사 사건의 경우 SNU팩트체크센터를 상대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으나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관련 기사 : 자유한국당 "팩트체크로 명예훼손" 소송 나섰다 패소]

갑작스런 네이버의 SNU팩트체크 지원 중단은 정치권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도 윤석열 정부 들어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구성과 운영 방식에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직후 뉴스 제휴평가위원회는 지난 4월 운영을 잠정 중단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방통위 역사상 처음으로 포털 알고리즘 편향성 실태점검 후 사실조사에 착수했다. 국민의힘에선 뉴스타파 김만배 인터뷰 논란을 계기로 포털에 뉴스타파 퇴출을 요구하는 등 압박을 펼치고 있다.

[관련 기사 : 네이버 잡아야 총선 이긴다? 포털 압박의 역사]

[관련 기사 : 방통위, ‘뉴스 알고리즘 변경’ 의혹 네이버 사옥 현장 방문]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 ⓒ연합뉴스

김준일 에디터는 “지원을 중단한 건 네이버의 판단일 테지만 그런 판단을 하게 된 배경엔 포털에 대한 압박과 SNU팩트체크가 ‘좌편향’됐다는 정부 판단들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SNU팩트체크) 회원사 구성을 보면 오히려 보수 성향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다. (SNU팩트체크)의 기원 자체가 저널리즘에 기여한다는 공익적 명분이고 그것을 인정해 네이버도 지원을 시작한 것인데 급작스럽게 이렇게 된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B기자는 “언론 환경이 포털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포털의 의무도 매우 중요해지지 않았나”라며 “누구나 다 팩트체크를 말하는 시대다. 네이버가 지원을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네이버 지원에 한국 팩트체크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걸 알면서도 갑작스럽게 중단을 시키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처사다. 앞으로 오히려 더 허위정보가 더 판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팩트체크 위축’ 우려는 윤석열 정부가 ‘가짜뉴스 전쟁’을 선포하면서 예견됐던 일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각종 공식 석상에서 가짜뉴스 문제를 강조하자 문화체육관광부, 국민통합위원회 등이 가짜뉴스 대응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허위정보를 유포한 매체에 ‘원스트라이크 아웃’ 조치를 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언론진흥재단도 각각 가짜뉴스 심의센터,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운영 중이다.

▲ 지난 7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팩트10' 중 '한국의 팩트체킹 발자취를 조명하다' 세션. 왼쪽부터 최원석 대표, 이경원 기자, 박태인 기자, 정은령 센터장, 황용석 교수.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 지난 7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팩트10' 중 '한국의 팩트체킹 발자취를 조명하다' 세션. 왼쪽부터 최원석 대표, 이경원 기자, 박태인 기자, 정은령 센터장, 황용석 교수. Photo Credit: The Poynter Institute and the IFCN

지난 7월 SNU팩트체크와 IFCN이 주최한 ‘글로벌팩트10’에서 팩트체커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부정하기 위해 가짜뉴스 용어를 사용한 것처럼 윤 정부의 가짜뉴스 규제 흐름이 팩트체크를 ‘정쟁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련 기사 : 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전쟁'에 '위축' 우려하는 팩트체커들]

‘글로벌팩트10’ 세션에서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한 정권이 교체되면 그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재정적으로 독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SNU팩트체크센터는 그간 민사 형사 소송을 다 겪어야 했다. 각각 무혐의 처분과 원고 패소로 끝나기는 했지만, 재판이 끝나기까지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팩트체크를 하는 기관으로서는 이러한 소송들이 활동을 위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어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팩트체크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잘못된 점이 있을 경우 오류를 공개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팩트체크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팩트체크 활동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법적 행정적 규제를 이용할 위험성은 언제나 있다. 이러한 ‘진실판정의 사법화’ 경향은 팩트체크를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김준일 에디터는 통화에서 “정부가 가짜뉴스 대응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 언론의 팩트체크다. SNU팩트체크가 요구한 원칙들은 팩트체크 활성화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국제적으로 검증된 사례”라며 “팩트체크를 불편해하는 분위기, 정파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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