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가짜뉴스 규제’를 추진하며 OECD 가짜뉴스 규제 현황 연구에 착수한 가운데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차원에서 이미 현지 출장을 다녀와 해외 규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해외 주요국가에선 정부가 나서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행정적 규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가짜뉴스 규제를 추진하는 현 체제의 방통위·방통심의위가 구성되기 직전에 작성된 보고서로, 현재 추진 중인 가짜뉴스 심의 규제가 내부 논의를 무시한채 이뤄졌고, 과도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미 올해 방통심의위가 작성한 보고서가 있음에도 방통위는 예산을 들여 OECD 가짜뉴스 규제 현황 연구를 시작해 중복 연구를 한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불가피하다. 방통위는 방송통신 관련 규제 업무를 하는 행정기관이고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 내용 심의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다.

▲ 방통심의위 국외출장 보고서 표지 갈무리
▲ 방통심의위 국외출장 보고서 표지 갈무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 받은 출장 보고서 내역을 미디어오늘이 분석했다.

방통심의위 직원들은 지난 6~7월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내용규제 현황 파악 및 유관기관 상호협력 강화를 위한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팀은 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나뉘었으며 각국의 규제기관 등을 방문해 담당자를 인터뷰한 결과 출장보고서를 지난 7~8월 작성해 제출했다. 출장에는 총 8800만 원이 지급됐다.

특히 한국에서 대표적인 가짜뉴스 규제 사례로 꼽는 프랑스와 독일의 현황을 살펴본 결과 가짜뉴스를 심의해 제재하는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프랑스 사례에 관해 보고서는 “국내 일부 언론 또는 보고서에 가짜뉴스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로 위 법률들(프랑스 규제)이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며 “규제기관이 개별 ‘페이크뉴스’를 규제하기 위한 법률이라기 보다는 선거 기간 중 허위정보에 대한 법원의 신속한 가처분 제도를 도입한 내용(정보조작대처법)이거나, 특정 정보를 삭제하는 결과적 접근이 아닌 온라인 사업자의 책임성을 제고하는 과정적 접근(디지털서비스법)이라는 점에서 우리 위원회의 통신심의 제도와는 접근 방향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프랑스의 허위정보 대응이 선진국의 대표적 규제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9월 “세계에서 가장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인 프랑스조차 선거 전 3개월 동안 온라인 플랫폼의 허위정보를 규제하는 정보조작대처법을 만들었다”며 규제를 시사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보조작대처법은 선거 기간 허위정보에 관한 법원 가처분 제도의 일환으로 가짜뉴스 내용을 심의하는 규제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프랑스에선 정보조작대처법이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기도 했다. 보고서에서 프랑스 규제기관인 시청각미디어규제청 관계자는 프랑스의 관련 규제들을 언급하며 “결국 2023년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DSA, Digital Services Act) 시행에 따라 기존의 법률들이 대체됐다”고 했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은 플랫폼 사업자의 책무와 투명성을 강화하는 규제로 정부가 나서서 가짜뉴스를 심의하거나 규제하는 내용은 아니다. 프랑스 규제기관 관계자는 “디지털서비스법에서 규정한 ‘조작’은 다크패턴 등 이용자를 기만하는 정보를 의미하며 페이크뉴스와는 별개의 개념”이라며 “뉴스의 진실성에 대한 판단은 저널리즘의 영역이며 국가가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럽의 기본 입장”이라고 했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9월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20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9월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20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의 허위정보 삭제 등을 강제하는 독일의 네트워크집행법에 관해 보고서는 “파악해본 바에 의하면 네트워크집행법은 허위정보뿐 아니라 혐오표현과 모욕, 아동포르노 등 독일 형법상 불법 콘텐츠에 대한 소셜네트워크 사업자의 콘텐츠 감시 감독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 법은 내용 심의가 아니라는 게 독일 규제기관의 입장이다. 보고서에서 독일 규제기관 관계자는 “기본적인 취지는 내용 규제가 아니라 사업자의 책임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위법적인 내용에 대해 신고를 받으면 사업자가 바로 삭제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는 것이 요지”라고 했다. 

독일 규제기관 관계자는 “국가가 미디어의 내용을 직접 통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홀로코스트 부정에 관한 내용은 위법이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하며, 이처럼 민법 형법상 위반되는 내용은 처벌이 가능하지만, 미디어 내용규제라기보다는 형법 위반 차원의 규제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 규제기관 관계자는 현재 논의 중인 허위정보 관련 논의에 관해 “3가지 요소를 고려하는데 △투명성 △저널리즘 기본원칙(내용에 대해 중립적으로 판단, 취재과정에서 원칙이 지켜졌는지를 판단) △내용에 조작이나 선동요소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며 “이러한 기준으로 정보의 위험성을 판단한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므로 이러한 분석에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다.

▲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가짜뉴스 신속심의를 위한 패스트트랙 순서도.
▲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가짜뉴스 신속심의를 위한 패스트트랙 순서도.

한국 방통위가 벤치마킹한 기구인 미국의 FCC(연방통신위원회)에선 인터넷 심의규제 자체를 하고 있지 않았다. 미국은 케이블방송에 대해선 방송 규제가 약한 점도 특징이다. 실제 개표기 조작 의혹을 부추겨 논란이 된 폭스뉴스의 경우 FCC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보고서에서 FCC 관계자는 “거짓보도하는 경우에 FCC가 물리적인 방법으로 거짓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있으나, 의도성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건물 폭발 (조작 사진) 등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라면 거짓, 사실 여부의 확인이 가능하지만, 의도성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며 “(방송 뉴스의 경우) 의도적으로 왜곡정보를 보도하는 경우에는 FCC가 제재하지만, 그 밖의 의견 등에 대한 보도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방통위와 방통심의위 기관장이 교체되면서 해외에서도 찾기 힘든 가짜뉴스 규제가 시작됐다. 방통심의위는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열고 인터넷신문 등을 대상으로 한 가짜뉴스 신속 심의 제도를 도입했다. 방통위는 가짜뉴스 유포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하겠다며 법 개정을 시사했으며 지난 9월 <가짜뉴스 실태와 대응방안 -OECD 주요 국가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를 발주해 해외 사례 분석에 나섰다. 급작스러운 가짜뉴스 규제 추진에 언론계와 시민단체는 물론 방통심의위 팀장 11명이 이를 우려하는 의견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정문 의원은 “‘가짜뉴스’에 대해 얼마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지 몸소 증명한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목표가 가짜뉴스 선도국이 아닌 이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